<12>종달초등학교

■아침 등굣길 안아주기
지난달 26일 제주시 구좌읍 종달초등학교(교장 강순문)의 등교 시간.
소담한 수국이 가득 핀 골목길을 따라 교문으로 총총걸음을 치던 아이들의 얼굴에 환한 웃음이 번졌다.
강순문 교장이 언제나처럼 교문에 서서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강 교장은 아이들 한 명, 한 명을 꼭 안아주며 다정히 아침 인사를 건넸다.
아이들 스스로가 자신을 ‘소중하고 환영받는 존재’로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등교 환영 인사는 학교 안에서도 계속됐다.
“잘 잤니? 어제 별일 없었어?”
“네. 잘 잤어요.”
종달초 교사들은 복도, 교실 등에서 아이들을 마주칠 때마다 자신의 품에 안아 정겨운 대화를 나눴다.
지난 3월 종달초가 학생 맞이 포옹을 처음 시작했을 때만 해도 대부분의 아이들은 교사와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안길 때에도 어색해하며 등이나 어깨를 앞세워 다가왔다.
그러나 교사들의 꾸준한 노력이 아이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아이들은 이제 교사에게 안겨 눈을 맞추고 자신의 기분을 털어놓는 일이 불편하지가 않다.

■‘하루 열기’와 ‘하루 닫기’
등교 인사가 끝난 뒤 각 교실에서는 관계 맺기 프로그램 ‘하루 열기’가 진행된다.
‘하루 열기’란 학생들과 담임교사가 모여 앉아 자신의 기분, 전날 있었던 일, 하고 싶은 말 등을 나누는 자유 대화 시간이다.
정규수업이 모두 끝난 뒤에는 ‘하루 닫기’ 활동을 진행해 하루 동안 친구에게 서운했던 점. 가장 기억에 남는 일 등을 이야기한다.
‘하루 열기’와 ‘하루 닫기’를 통해 학생들은 타인을 이해하고 문제를 긍정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을 배워나간다. 또, 자신의 생각을 공유하고, 오해가 생긴 친구와 화해하며, 기분이 좋지 않은 친구를 위로함으로써 소통과 공감을 체득한다.

오전 9시30분이 되자 교사들과 전교생이 2층 강당으로 모여들었다. 이날은 2주에 한 번 열리는 전체 다모임 시간이다.
다모임은 학급 다모임과 전체 다모임으로 나뉘는데, 학급 다모임은 학급에서 일어나는 여러 문제를 해결하거나 학급어린이회를 구성해 활동하는 시간이다. 전체 다모임에서는 1~6학년 학생, 전 교직원이 한자리에 모여 마음을 나누고, 학교생활 중에 일어나는 여러 공공의 문제를 풀어 나간다.
이날 다모임은 ‘학교규칙 중 잘 지켜지지 않는 규칙 보완하기’를 주제로 한 시간 동안 진행됐다. 학년별로 잘 지켜지는 규칙과 그렇지 않은 규칙, 그 이유를 발표하고, 둥글게 모여앉아 개선 방법을 토의했다. 종달초 학교규칙은 학기 초 전교생이 전체 다모임 시간을 이용해 함께 상의하고 투표한 끝에 마련됐다.
■마을 주민들과 소통
학생 맞이 포옹과 하루 여닫기, 다모임은 수직적 관계보다 수평적 관계를 지향하는 강 교장의 교육관을 잘 반영하고 있다.
전교생 55명의 종달초는 올해 제주형 혁신학교인 다혼디 배움학교 지정·운영을 시작했다. 강 교장은 혁신학교에 우려의 시선을 보내는 마을 주민, 학부모와 소통하기 위해 올해부터 제주시내 본가를 두고 종달리에 월세 방을 얻어 살고 있다.
강 교장은 “매일 저녁 학부모, 마을주민들을 만나 혁신학교, 교육관, 앞으로의 교육 방향 등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며 “지금도 학교 일과가 끝나면 지역주민들과 소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학기 초 혁신학교 도입에 불만을 제기했던 학부모들은 강 교장의 열정에 걱정을 접고 학교 교육 활동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기 시작했다. 학교에 대한 ‘믿음’이 생긴 것이다.
종달초 교육가족은 협의를 통해 학교 교육과정, 비전 등 교육 혁신의 크고 작은 뼈대를 만들어가고 있다.
학교 교육 비전인 ‘존중하고 배려하며 함께 성장하는 행복한 배움터’도 학부모, 학생, 교사가 다함께 모여 하루 반나절을 고민한 끝에 결정됐다.
교사들도 학교의 변화를 피부로 느끼고 있다. 교사들은 ‘배움이 일어나는 교육’을 연구하기 위해 전문적 학습공동체를 운영, 틈틈이 모여 교육 과정을 논의하며 수업 전문성을 높이고 있다. 교사들에게는 공문을 제외한 다른 업무가 없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아이들 모습서 느끼는 변화 바람
학생들은 학교의 변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6학년 학생들에게 지난 5년과 올해의 차이점을 묻자 “아이들이 확실히 밝아졌어요”라고 대답했다.
(김)환이는 “등교 시간에 선생님들이 안아주는 게 처음엔 어색했는데 지금은 좋아요”라며 “하루 열기, 하루 닫기 때도 친구들과 얘기하고 공감하다보면 좋지 않던 기분이 풀려요”라고 말했다.
(김)소민이는 “많은 아이들이 ‘학교규칙은 다모임 때 우리가 만들었으니까 우리가 지켜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라며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도 선생님이 혼내서 끝내는 게 아니라 학급 다모임 때 친구들과 함께 해결책을 찾기 때문에 더욱 와 닿아요”라고 말했다.
교육 혁신의 바람은 교사와 학생, 학부모, 지역주민들에게까지 닿아 소소하지만 의미있는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다.

강순문 종달초등학교장
“교사와 학생 관계맺기…변화바람 거세”
강순문 종달초등학교장은 “종달초는 겉으로 드러나는 화려한 실적은 없어도 그 내부를 들여다보면 커다란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고 말했다.
강 교장은 “수상 실적이나 특성화 프로그램에 치중하기보다는 교사와 아이들의 관계 맺기에 집중하고 있다”며 “교육공동체가 서로의 변화를 체감할 수 있는 것이 학교 교육이라고 생각한다”고 자신의 교육관을 밝혔다.
이어 “등교시간 교문에서 학생들을 안아주는 일을 계속하고 있다”며 “등교할 때부터 누군가가 자신에게 관심을 갖고 따뜻하게 맞아주면 하루를 긍정적으로 시작하게 된다”고 말했다.
강 교장은 “이는 실적, 지표 등으로 정량화할 수 없는 종달초만의 장점”이라며 “이러한 활동은 가랑비에 옷이 젖듯 아이들의 가슴 속에 스며들어 남을 배려하는 따듯한 사람으로 성장하게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올해부터 80분 동안 수업하고 40분 동안 쉬는 블록제 수업 방식을 도입해 수업 자율성을 높이고 학생들의 놀이 활동 시간을 확보했다”며 “담임교사들은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 외에 주어지는 업무가 없기 때문에 수업 연구에 집중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아직 혁신학교 운영 초기여서 서툴고 다듬어지지 않은 부분이 없지 않지만, 2년여 후 종달초는 획기적인 혁신학교 모델로 평가받을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덧붙였다.

부국환 종달초등학교 운영위원장
“혁신학교 걱정이 지지로 돌아서”
부국환 종달초등학교 운영위원장은 “혁신학교 도입 후 아이들이 학교 가는 것을 좋아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부 위원장은 “처음에 종달초가 혁신학교로 지정된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학부모들은 걱정 반, 기대 반이었다”며 “일반 학교와는 교육과정이나 제도 등이 달라 아이들이 적응할 수 있을지 우려됐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부 위원장은 “그렇지만 강순문 교장과 교사들의 지속적인 노력, 아이들의 긍정적인 변화에 학부모들도 학교를 믿고 전폭적으로 지지하게 됐다”며 “학교 가기 싫어하던 아이들이 학교 생활을 즐거워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부 위원장은 “어머니회 학부모들은 목요일마다 전 학년을 대상으로 책을 읽어주고 있다”며 “자발적 독서지도 활동을 진행하는 학부모 중에는 자녀를 졸업시킨 분들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새로운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시행착오도 많겠지만, 혁신학교가 잘 정착될 수 있었으면 한다”며 “아이들의 ‘배움’을 위한 교육과정이 계속됐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