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직자의 기본이 되는 청렴. 흔히 사람들은 돈과 관련해 비리가 없는 사람을 청렴하다고 한다.
청렴이라는 단어를 볼 때면, 청렴의 참된 실천을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과연 제도적인 장치만으로 청렴을 실행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떨쳐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공직에 있는 이상 ‘남들이 그래서 나도 되는 줄 알았다’는 식의 궁색한 변명 따위는 하지 말아야한다. 우리는 청렴해야한다. 그 이유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 스스로 행복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행복을 위해 살아간다’고 했다. 순간의 쾌락이나 자기 자신만을 위한 이익을 위해 부정부패를 저지르면 ‘참된 사람’, ‘훌륭한 사람’이라고 자기 자신을 평가 할 수 있겠는가? 자기 합리화를 통해 자신을 참되다고 평가할 수는 있겠다. 그러나 결국에는 떳떳하지 못하다는 맹점을 이기지 못한 채, 그간 추구해왔던 행복감은 자아와 함께 스스로 붕괴될 것이다.
둘째, 청렴한 삶은 우리의 사회를 더욱 아름답게 만든다는 것이다. 피겨여왕 김연아를 그 예로 들 수 있다. 김연아 선수는 마지막 경기인 소치 올림픽에서 편파판정의 피해를 받았다. 하지만 피겨여왕의 칭호는 있어야 할 자리를 굳건히 지켰다. 김연아 선수는 자신의 실력으로 만든 명성과 부를 이용해 유니세프 홍보대사를 비롯해 후진 양성 및 불우이웃 돕기 등 여러 사회공헌 활동을 하고 있다.
장자는 ‘범인은 이익을 중히 여기고, 청렴한 선비는 명예를 중히 여기며, 현인은 의지를 숭상하고, 성인은 정신을 귀중히 여긴다’라고 했다. 선비는 관심이 필요한 존재가 아니다. 아무도 그를 알아주지 않아도 상관없다. 그는 다만 옳은 일을 할 뿐이고, 자기 자신에게 떳떳할 뿐이다. 누군가 나에게 청렴이 뭔지 물어본다면 ‘선비의 정신’이라고 대답하고 싶다. 청렴한 ‘선비’는 현대의 세상엔 없다. 하지만 그 ‘선비’의 청렴함의 정신은 보전해야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