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예술계에도 ‘갑’ 의 횡포
특정대기업 공연·영화권력 장악
창조적 예술 활동 방해 가능성
공연예술 산업화엔 이견 없어
결과만 중시하는 풍토 고착 우려
예술가 존중·공존 배려 필요
며칠 전 뉴스에 이탈리아 밀라노의 ‘두오모’ 성당이 나왔다. 600년에 걸쳐 완성된 만큼 특정 종교의 건물이라기보다 지구촌의 문화유산이나 다름없는 걸작인데 그 성당 탑을 무인항공기인 ‘드론’이 충돌한 것이다. 이미 밝혀졌듯이 사고를 낸 드론은 한국 대기업 가운데 하나인 CJ E&M의 용역업체 직원들이 홍보물 촬영차 날린 것이었다.
사전허가가 기각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불법 비행을 감행하는 ‘열정’이 국제적 망신을 초래한 사고로 이어졌다. CJ E&M측은 애써 용역업체 직원이라는 사실과 자율권을 부여해 관리하지 못한 점을 강조했다.
하지만 그대로 믿어지지 않는다. 이 땅에서 감히 어느 용역업체가 ‘갑’의 허락 없이 자율적으로 일을 처리한단 말인가? 대한항공 조현아 전 부사장의 ‘땅콩회항’이 오버랩 되는 건 우연일까?
작금에 ‘갑’의 횡포는 기업을 넘어 문화예술계에도 번지고 있다. 아니, 이미 오래전부터 존재해왔던 행태들이 가뭄에 저수지 바닥이 드러나듯 노출되는 것뿐이다. 정치나 경제에서나 주로 듣던 권력이라는 단어가 예술계에도 자주 들린다.
CJ E&M은 ‘공연권력’과 ‘영화권력’을 장악한지 오래다. 영화에 대한 독점적 지위는 말할 것도 없고 공연부문에서도 2003년 뮤지컬 ‘캣츠’를 수입하며 뮤지컬 시장에 뛰어든 후 거대몸집으로 키워왔다. 불모지와 다름없던 국내 뮤지컬산업을 선도하며 300여편의 대형 라이선스 뮤지컬을 중심으로 연평균 30편 이상의 작품을 제작·투자·마케팅·배급하고 있다고 자사 홈페이지에서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 대한민국 뮤지컬산업을 선도하고 뮤지컬 붐의 중심에 서있는지도 모른다. 공연시장에 기여가 많았음도 인정한다. 그러나 한국경제가 대기업 중심의 성장으로 인해 다양하고 저력 있는 중소기업의 부족을 초래했듯이, 대기업 선도의 공연계가 다양한 예술세계를 추구하는 단체들의 창조적 활동을 방해하지는 않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공연예술이 산업화로 활성화되는 데는 이견이 없다. 다만 그 과정에서 공연을 전부의 삶으로 여기며 선택하고 살아가는 많은 예술가들을 존중하고 공존하는 배려가 필요하다. 기업 논리에 따라 사업으로서만 공연이 성장한다면 결과만을 중시하는 풍토가 자리할 우려가 있다.
예전에 삼성그룹에서 삼성영상사업단을 만들어 공연시장에 뛰어들어 공연계를 한바탕 휘저어 놓고 성과를 내지 못하자 철수한 전례가 있다. 덕분에 한껏 외형을 키웠던 공연계는 한동안 후유증을 앓아야 했다.
또 다시 그런 전철을 밟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다. 공연예술에 종사하는 예술인들은 항상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꿋꿋이 무대를 지켜왔다. 그들의 순수한 열정이 존중받으며 성장해 나가는 공연 풍토의 정착이 문화선진국으로 가는 근간이라 믿는다.
이번 ‘드론’사고는 해프닝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면에 팽배해있는 권력구조를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한국문학계에서도 신경숙의 표절 논란으로 ‘문학권력’이 수면위로 떠올랐다. 소위 메이저 출판사가 베스트셀러 작가 만들기와, 인기작가에 대한 권력 집중으로 문학계를 독점해온 공공연한 비밀이 고발된 것이다.
대형 출판사나 대형 공연 제작사의 출현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불법으로 ‘드론’을 띄우고 표절을 덮으면서 몸집을 키워서는 곤란하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장마가 시작됐다. 장마는 매년 찾아오고 연례행사처럼 겪는 ‘수해’라는 걱정을 동반하는 손님이다. 그러나 올해만큼은 기다렸고, 그만큼 반갑다. 긴 가뭄에 타들어가던 한반도가 목을 축이고 몸을 담근다. 열사 지방의 전염병이 초여름 땡볕을 타고 전국을 누볐고 아직도 떠나지 않고 있다. 전염병 메르스는 습도에 약하다하니 장맛비에 쓸려 내려가길 고대한다.
장마는 인간이 거부 할 수 없는 ‘자연권력’ 이다. 자만하고 무시하면 큰 상처가 남고 순응하며 이용하면 축복이 된다. 책상 너머 창밖으로 비가 뿌린다. 이 장마에 ‘드론’을 띄운 욕심도 ‘표절’을 써내려간 비양심도 씻기 우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