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동의 惡夢’을 다시 되풀이할 건가 <1>
‘탑동의 惡夢’을 다시 되풀이할 건가 <1>
  • 김계춘
  • 승인 2015.06.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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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련한 추억 속의 탑동바다
1980년대 개발 狂風에 밀려
먹돌해안 등 송두리째 파묻혀

道, ‘제주신항 개발계획’ 발표 
공유수면 매립규모 무려 12배
졸속 계획에 ‘악몽’ 다시 떠올라

세상 사람들은 아바나 말레콘 해변을 ‘쿠바의 축복’이라고 말한다. 쿠바에 아바나가 있다면 제주엔 ‘탑동바다’가 있었다. 썰물 때면 드러나던 먹돌 해안의 운치, 여름철 해질녁의 노을  풍경은 석양(夕陽)으로 유명한 아바나를 오히려 능가했다.

그 아름답던 먹돌 해안이 콘크리트에 파묻히기 전만 하더라도 탑동은 칠성로와 더불어 구 도심의 중심지였다. 젊음과 낭만의 분출구이자, 내일을 꿈꿨던 곳도 바로 탑동 바닷가였다.

세월이 흘러 쿠바의 아바나 해변은 지금도 존재하지만, 우리들 마음 속 제주의 탑동바다는 사라지고 없다. 단지 아련한 추억의 편린들로 옛 일을 반추할 뿐이다.

제주시 탑동에 본격적인 개발 광풍(狂風)이 불기 시작한 것은 지난 1980년대 중반이었다. 당시 5공(共)이란 거대한 권력을 등에 업은 범양건영은 탑동해안 공유수면(16만5400㎡·약 5만평) 매립(2차)을 몰아붙였다. 환경오염과 어민 보상문제 등으로 격렬한 반발이 있었으나 철저하게 묵살됐으며 불법매립도 마다하지 않았다.

업자와 개발론자들은 빗발치는 반대 여론을 무마하기 위해 개발이익의 지역환수를 명분(名分)으로 내세웠다. 복개와 장학금, 구(舊)제주상권 부활 등의 감언과 회유였다. 하지만 그 결과는 ‘병문천 복개’라는 악순환으로 이어졌고, 그토록 강조했던 옛 도심 활성화 역시 공염불이 됐다. 그 와중에 가장 아름답던 먹돌 해안은 송두리째 파괴됐다.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한 행정당국과 토건(土建)세력이 결탁해 빚어낸 최악의 결과였다.

이후에도 탑동 바다를 매립하기 위한 ‘유혹과 도전’은 계속됐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 5월, 원희룡 도정(道政)이 그 ‘원대한 구상’을 드러냈다. 이름하여 ‘더 큰 제주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제주신항 기본계획’이 바로 그것이다.

현재 밝혀진 제주신항(新港) 개발계획의 윤곽은 이렇다. 오는 2030년까지 국비 1조 1120억원과 민자(民資) 7850억원 등 총 사업비 2조 4670억원을 투입해 22만톤급 초대형 크루즈선 접안시설과 비즈니스호텔, 워터프론트 등을 조성한다는 것. 또 기존 내항은 마리나시설과 위락시설, 컨벤션 및 면세점 등을 갖춘 해양친수문화지구로 만들고 제주외항은 물류복합지구로 조성한다는 구상이다.

물론 기대효과도 내놨다. 제주신항이 개발되면 배후도시 형성으로 제주시 구도심 공동화(空洞化) 문제 해결과 함께 크루즈 관광 활성화로 인한 지역경제 파급효과도 매우 클 것이란 ‘장밋빛 전망’이다. 고질적인 물류문제도 해결된다고 덧붙였다.

이를 위해 제주자치도는 항만 및 배후부지 131만4000㎡ 등 모두 211만3000㎡(약 64만여평)의 공유수면을 매립키로 했다. 이는 먹돌 해안을 일거에 없애버린 1980년대 2차 매립(16만5400㎡)때와 견줘 무려 12.8배나 넓은 실로 어머어마한 규모다.

도는 이를 의식한 듯 제주도사회협약위원회(3기)에서도 제주신항 개발을 ‘동의’했다고 강조했다. 불과 2년 전인 2013년 탑동 앞바다를 매립(31만8500㎡)해 항만을 개발하려던 계획과 관련 환경파괴 우려 등을 들어 반대했던 사회협약위와는 달라도 너무나 다른 위원회임이 분명하다.

필자가 제주신항 개발의 필요성을 전면 부정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이번 제주자치도의 개발계획은 많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지금까지 본란을 통해 거론한 것은 드러난 윤곽 속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원희룡 지사는 공론화(公論化) 누락 과정에 대해 ‘미흡했다’고 인정하면서도 “다만 계획 자체가 졸속이거나 의견 수렴을 하지 않고 밀어붙이려는 생각은 없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는 군색한 변명일 뿐이다.

도는 5월 22일의 보도자료를 통해 ‘제주신항 개발구상’은 작년 12월부터 검토하여 왔다고 밝힌 바 있다. 무려 2조 4000억원이란 막대한 돈이 투입될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의 초대형 사업을, 그 흔한 용역 한번 없이 단 5개월 만에 수립해서 정부에 제출하겠다는 것이 졸속(拙速)이 아니면 무엇이 졸속인가.

 크루즈가 지역에 미칠 경제적 소득은? 신항만 개발되면 원도심의 선진화 및 활성화는 저절로 이뤄지는가? 제주신항과 관련 숱한 의문들이 꼬리를 물지만 지면 관계로 나머지는 다음 주로 미룬다. 다시는 ‘탑동의 악몽(惡夢)’이 되풀이되지 말아야 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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