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의원과 박근혜 대통령
박근혜 의원과 박근혜 대통령
  • 김철웅
  • 승인 2015.06.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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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 공포 확산 일로
애초 안이한 대처가 화 키워
사망자.확진자 계속 발생

대한민국 ‘메르스 민폐국’ 전락
대통령 ‘유체이탈화법’ 실망
국민의 신뢰 상실이 더 심각


이건 공포다.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시선이다. 정부는 그 정도 심각하지 않다고 여기는 것 같으나 국민들은 아니다. 메르스 공포는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공포의 근원은 치사율이 40%에 달하고 확산도 빠르다는 데 마땅한 치료제가 없다는 점이다. 예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의 치사율이 10%대였음을 감안하면 메르스의 치사율은 정말 ‘살인적’이다.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벌써 관련 사망자가 3명이다. 이들 모두 지병을 갖고 있었고, 건강한 사람의 메르스 치사율은 중병 환자들보다 훨씬 낮다고 하더라도 큰 위안은 되지 못하고 있다. 확산속도와 양상이 심상치 않다. 격리관찰자의 경우 지난 2일 791명에서 3일엔 갑절 수준인 1364명까지 급증했다. 환자도 이날 3차 감염자인 대형병원 의사 1명을 포함해 5명이 추가되며 35명으로 늘었다.

공포를 키운 것은 정부다. 초동대처가 너무 안이했다.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 책임자를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격상시키는 데도 메르스 확진 후 2주나 걸렸다. 사스가 발생했던 지난 2003년 노무현 정부 시절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당시 참여정부는 중국에서 사스가 번지자 전국에 사스방역 강화지침을 내리고 총리실 산하에 종합상황실을 설치했다. 국내 환자가 사스 판정을 받기도 전이었다.

당시 컨트롤타워 역할을 수행했던 고건 전 총리는 “사스 방역을 전쟁처럼 치렀다”고 회고했다. ‘전쟁’인 만큼 국방부· 행정자치부 등에서 군의관과 군 간호 인력까지 투입됐다. 그 결과 전 세계에서 810여명이 숨졌지만 국내에선 3명이 앓았을 뿐이다. 그해 우리나라를 세계보건기구(WHO)로부터 사스 예방 모범국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12년이 지난 2015년 대한민국은 ‘메르스 민폐국’으로 전락, 눈총을 받고 있다. 국내 메르스 첫 번째 환자의 아들인 K씨가 지난달 26일 홍콩을 거쳐 중국으로 들어갔는데 메르스 양성판정이 나온 것이다. 중국과 홍콩에선 비상이 걸렸다. K씨와 접촉한 91명이 격리 조치됐다. 허술한 국가방역시스템에 대해 중국 누리꾼들은 “빵즈(한국을 비하하는 중국 표현)는 지구에서 떠나라” 등의 원색적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대통령은 남 탓이다. 책임을 가장 무겁게 느껴야할 주체임에도 특유의 유체이탈화법으로 남의 일 얘기하듯 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메르스 초기 대응에 미흡한 점이 있었다”고 했다. 환자 발생 열흘 만에 비상대책회의를 열어서는 사과도 해명도 없이 ‘지적’만 해댔다.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의원은 3일 페이스북을 통해 “오바마 대통령은 에볼라 환자 발생 즉시 긴급 대책회의인데 박근혜 대통령은 메르스 사망 환자 발생에도 침묵”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대통령은 구름 위 선녀 아니고 국가 리더이며 유체이탈화법으로 지적만 하는 자리가 아니라 책임 따르는 자리”라고 일갈했다.

대통령이 이러니 장관도 미덥지 않다. 말 따로 행동 따로 양상이다. 대책본부장인 문형표 장관은 2일 “(메르스는 공기 감염이 되지 않으므로) 굳이 마스크를 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는데, 마스크를 ‘단단히’ 착용하고 인천공항검역소에서 메르스 대응상황을 점검한 사실이 밝혀졌다. 네티즌들은 “본인도 마스크를 쓰면서” “나만 살면 된다는 생각인가”라고 노골적인 불쾌감과 불신을 표출했다.

지금 메르스보다 더 심각한 건 국민의 안전 정책에 대해 신뢰를 받아야할 정부가 국민들의 의심을 받고 있다는 점일 지도 모른다. 지난해 세월호 침몰 때 “최후의 한 사람까지 구하겠다”고 대통령이 공언했음에도 304명의 생명이 스러져가는 상황을 속절없이 지켜봐야 했던 우리 국민들이다. 대한민국 정부가 ‘양치기 소년’이 돼 버렸다. 그것도 메르스 공포가 확산되는 상황에서.

지난 2004년 7월 당시 야당의 ‘박근혜 의원’은 김선일씨가 이라크 무장단체에 피살되자 “국가가 가장 기본적인 임무인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 하지도 못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들은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에 분노하며, 국가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를 갖게 됐다”고 말했다. 이제 국민들은 이 말을 ‘박근혜 대통령’에게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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