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퓰리처상을 수상한 세계적 석학으로 캘리포니아 주립대(UCLA) 교수인 재레드 다이아몬드(Jared Diamond)는 저서 ‘총, 균, 쇠’에서 문명 발달에 있어 지역적으로 차이가 나는 것은 환경 조건이 지역마다 서로 다르기 때문이며, 그 저변에 경제적 논리가 깔려있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정주생활이나 농경생활이 이주생활이나 수렵생활보다 경제적으로 유리해야만 비로소 그러한 생활로 변화해 간다는 것이다.
실로 공감이 가는 해석이다. 이런 생각과 함께 문득 곶자왈이 떠올랐다. 곶자왈 또한 제주에 살았던 우리 선조들의 경제 행위의 산물이 아닐까. 경제적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제주 곶자왈은 육지부 숲과 매 한가지인 것이다.
육지부 숲의 경우 오랜 침식에 의해 지형 경사가 급하거나 암반이 노출된 지대가 농지로 활용되지 못하고 숲이 된 것이다. 그럼 제주 곶자왈은 어떠한가. 비교적 생성시기가 오래지 않은 제주도는 화산활동에 의한 용암이 넓게 분포하고, 이를 덮은 토양이 빈약해 암석만으로 뒤덮인 지대가 발달한다. 바로 이들 암석지대가 농지로 개간되지 못하고 자연숲, 즉 곶자왈로 남은 것이다.
단지 다르다면 육지부와는 다른 기후·토질·배수환경 등으로 인한 식물상에 차이가 있을 뿐일 것이다. 결국 육지부 숲과 제주 곶자왈 모두 인간의 경제 행위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나무와 덩굴 따위가 마구 엉클어져 수풀같이 어수선하게 된 곳’이라는 곶자왈의 단순 명료한 정의처럼 인간의 경제행위를 피해 남은 식생이 밀집된 부분이면 곶자왈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곶자왈에 대한 연구는 생태 가치를 높이는데 주력해 왔다. 제주의 허파, 지하수 함양역, 생태계의 보고라는 것이 곶자왈의 타이틀이다. 정작 곶자왈 형성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여겨지는 경제적 관점에서의 곶자왈 연구는 매우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지금 제주는 농업이 제주 산업의 근간을 이루던 시기와 달리 관광 등 3차산업이 제주 경제의 약 80%를 차지하는 시대가 됐다. 제주 곶자왈은 펜션·골프장·복합문화단지 등 대규모 경제행위의 직접적인 대상이 되고 있다. 한편에서는 곶자왈 보존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다른 한편에서는 개발을 하려하고 있는 것이다. 농사를 지을 수 없는 땅, 보호지역이라는 인식 등으로 인해 단위면적당 가격이 상대적으로 낮은 곶자왈이 투자와 개발의 직접적인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언제까지 생물종다양성, 독특한 식생 및 지질적 특징을 운운하며 도민들이 곶자왈 보존에 동참할 것이라고 바라고만 있을 것인가. 현실적이고 냉철하게 곶자왈의 현 위치를 바라보아야 할 때이다. 경제적 관점에서 곶자왈에 대한 다각적 가치 환산과 평가를 통해 급격히 변화하는 경제적 여건 하에서 곶자왈의 미래 가치와 보존 타당성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해 나가는 것이야 말로, 보전을 넘어 합리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다.
비록 현재 곶자왈의 경제적 가치는 우리가 기대했던 것보다 작을 수 있다. 이것은 현재의 경제적 수준과 관점에서 바라본 가치인 것이다. 하지만 미래지향적 관점에서의 경제적 가치에 대해 심도 있게 평가한다면, 곶자왈의 미래가치는 상상하는 이상의 것이 될 수도 있다.
지금 우리는 바로 앞에 놓인 경제적 이익만을 추구하고 있다. 최근 30여년 사이에 곶자왈을 비롯한 제주의 보물인 자연과 문화유산은 빠른 속도로 훼손되고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우리 세대가 관광개발을 빌미로 한 파괴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미래 세대가 경제적인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기회의 공간을 남겨 놓는 것이 중요하다. 소위 말하는 지속가능한 개발에 대한 심각한 고민이 필요한 시기다. 제주의 미래를 담보할 가치는 무엇인가. 곶자왈을 경제적 관점에서 냉철히 바라봐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