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선구자’ 崔貞淑을 다시 생각한다
‘시대의 선구자’ 崔貞淑을 다시 생각한다
  • 김계춘
  • 승인 2015.05.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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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헌신적 교육자 등
‘시대를 이끈 先覺者’ 최정숙
역사 속에 갇힌 인물로 남아
 
‘도전과 실천의 시대정신’으로
제주 여성의 강인함 내외 과시
오늘에 되살려 후세 모범으로

항일 독립운동가, 문맹퇴치 교육운동가 겸 사회운동가, 현대의학 여의사, 전국 최초의 여성교육감…. ‘시대를 이끈 여성 선각자’ 최정숙(崔貞淑, 1902~1977)이 걸어온 족적이다.

그러나 오늘에 이르러 ‘최정숙’을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제주의 학생들도, 대부분의 어른들도 마찬가지다. 조선시대 김만덕은 알지만 제주의 근·현대사를 선도해 온 최정숙은 잘 모른다. 바깥보다 우리 안의 사람들을 조명하는데 인색한 제주의 정서를 감안한다 하더라도 이는 뭔가 크게 잘못됐다.
지난 15일 설문대여성문화센터에서 열린 ‘시대를 선도한 제주여성 최정숙’ 학술세미나는 이를 자각하고 반성하는 자리였다. 이 같은 세미나가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역사 속에 박제(剝製)되고 갇혀진 인물들을 되살려 후세를 일깨우는 전환점이 되기를 바라는 것은 비단 필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최정숙 선생은 평생 여성교육에 헌신한 교육자요, 여성운동가였다. 일제(日帝) 강점기 땐 독립운동에 투신하였고, 해방 이후엔 여성교육에 매진하여 부녀회를 조직하는 등 여성들의 의식개혁에 힘썼다. 또한 신성여중·고 교장과 초대 제주교육감을 역임하며 여성인재를 양성하는데 혼신(渾身)의 힘을 기울였다.

시인이자 언론인인 허영선(제주대 강사)은 이날 세미나 주제발표를 통해 최정숙의 삶을 ‘도전과 실천의 시대정신’으로 함축(含蓄)했다. 허영선의 분석대로 그의 도전은 끝이 없었다.

첫 번째 도전은 척박했던 물 막힌 섬 제주를 떠나 서울 유학길에 오른 것이다. 부모의 반대가 극심했지만 꿈을 이루기 위한 그의 염원은 간절했고 결국 뜻을 이뤘다.

두 번째 도전은 독립투사로의 변신이다. 경성관립여자고등보통학교(경기여고 전신) 사범과 학생이던 최정숙은 1919년 삼일운동이 일어나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파고다공원에서의 만세운동대열에 참여하여 독립을 외쳤다. 당시 18세의 나이로 8개월여의 옥고(獄苦)까지 치렀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줄곧 민족교육 및 인재양성에 몸을 아끼지 않았다.

그의 세 번째 도전은 제주의 문맹(文盲)퇴치 운동이었다. 학교 동기인 강평국과 함께 1920년 ‘여수원’을 설립하고 글자를 모르던 제주시내 여성들을 가르쳤다. 배움을 통해 알아야 남녀 차별에서 벗어나고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다는 교육나눔 운동의 실천이었다.

당시로선 아주 늦깍이 나이인 37살에 의사의 길에 들어선 것이 네 번째 도전이다. 이는 후에 의술을 통한 박애(博愛)의 실천과 여성운동으로 꽃을 피우게 된다. 다섯 번째 도전은 제주여성들을 위한 교육활동이다. 해방정국에서 최정숙은 일제에 의해 문이 닫혔던 신성여학원을 개설하고, 신성여중고 교장과 초대 교육감을 역임하면서 여성교육의 선구자(先驅者) 역할을 했다.

이처럼 그의 도전엔 실천이 꼭 뒤따랐다. 그리고 그의 전 생애를 관통한 것은 ‘이타행(利他行·남에게 공덕과 이익을 베품)’의 실현이었다. 그 저변엔 가톨릭 신앙이 밑바탕이 된 청빈과 무욕의 정신이 있었다.

 최정숙은 은퇴 후 정리한 <내가 걸어온 길>에서 “결국 나는 반의사, 반수녀, 반교육자 등 모든 것이 미완성(未完成)으로 남았다”고 회고한 바 있다. 그가 도전하고 개척한 길은 크고 넓었으나 정작 자신의 업적을 올리는 데는 너무나 겸손했던 면모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암울했던 시대, 외유내강(外柔內剛)의 리더십을 발휘하며 제주여성의 부드러움과 강인함을 대내외에 알리고 역사의 새로운 줄기를 썼던 최정숙. 그러기에 주제발표에 나선 허영선은 “최정숙의 경우 제주 속 여성사의 인물이 아니라 국가적인 인물, 역사의 인물로 당당하게 재조명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제주의 현실은 이런 기대와는 정반대로 나아가고 있다. 최근 들어 제주지역에서 원도심 문화살리기 운동이 전개되고 있지만 그 어디에도 ‘최정숙의 길’은 보이지 않는다. 일선 학교에서의 향토사 교육에서도 최정숙의 이름은 찾아볼 수가 없다.

‘시대를 선도한 제주여성’(원희룡 도지사)이나 ‘제주교육의 선구자’(이석문 교육감) 등의 찬사가 일회성 격려사 및 축사에 머물러선 안 된다. 도전(挑戰)과 실천(實踐)이란 ‘최정숙의 시대정신’을 오늘에 되살려 후세의 모범으로 삼는 것은 우리 모두의 몫이며 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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