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野 4·29재보선 참패 후 갈등
최고위원 싸움판에 노래까지
‘봉숭아 학당·콩가루…’ 조롱 자초
與 초단명 이완구 총리 ‘불상사’
‘완벽한 정치인’ 극찬한 인물
잘못된 선택에 대한 사과 없어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백설희가 1954년 발표한 ‘봄날은 간다’는 이렇게 시작한다. 가락은 한민족(韓民族)의 한(恨)을 담은 듯 애잔하다. 그러다 “실없는 그 기약에 봄날은 간다”로 끝난다. 영원할 듯했지만 결국은 누구도 피하지 못하고, 사랑했던 누군가와도 ‘영원한’ 이별을 해야만 하는 우리네 삶을 노래하는 것 같아 진한 여운이 남는다.
이 ‘좋은’ 노래가 황당한 경우를 당했다. 지난 8일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회의 ‘싸움판’에서다. 당이 ‘4·29 재보궐선거’ 참패 이후 책임론을 놓고 지도부가 갈등을 보이다 이날 주승용·정청래 최고위원이 충돌, 주 최고위원이 퇴장한 직후였다. 유승희 최고위원은 “어버이날이다. 어제 경로당에서 노래 한 자락 불러드리고 왔다”며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하며 노래를 시작했다. 이를 두고 “황당하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새누리당에서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하태경 의원은 곧바로 “정청래 의원, 밉상 입방정에 주승용 최고위원의 전격 사퇴. 이 상황에서 노래 한 소절 뽑는 최고위원까지. 마치 봉숭아학당을 보는 것 같군요”라고 비아냥을 쏟아냈다. 봉숭아학당은 주인공인 ‘바보’ 맹구와 다소 모자란 듯한 캐릭터로 분한 개그맨들이 출연해 1990년대를 풍미했던 코미디다. 새정치민주연합을 두고 ‘콩가루 집안’이라는 조롱까지 나왔다.
사태의 발단은 4·29재보선 참패다. 주 최고위원은 재보선 참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자신을 비롯한 문재인 대표 등 지도부의 총사퇴를 주장해왔다. 그런데 지난 8일 정청래 최고위원이 “사퇴할 것처럼 해놓고 공갈치는 게 더 문제”라며 주 최고위원을 긁었다. 그래서 폭발한 것이다.
그리고 사흘 후 문재인 대표는 ‘봉숭아학당’ 사태를 사과했다. 그는 “민망한 모습을 보였다. 당을 대표해 깊이 사과드린다”며 고개를 숙였다. 이어 친노·비노·친노패권주의라는 분열의 프레임을 벗어내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사과의 진정성은 물음표인 것 같다. 칩거 후 국회에 돌아온 주 의원은 지난 12일 “문 대표가 패권주의 청산에 대한 방법과 의지를 정말 진정성 있게 행동으로 보여줘야 할 때”라고 촉구했다. 말로만 하지 말라는 일침이다. 제1야당의 ‘봉숭아학당’과 ‘콩가루 집안’ 사태, ‘웃픈(웃기면서도 슬픈)’ 현실이다.
이러한 상황을 즐기는 ‘상대편’도 나을 건 없어 보인다. 여당인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거쳐 소속당의 찬사 속에 취임한 이완구 국무총리가 2개월여만에 낙마했다. 단명(短命)도 문제지만 직격탄이 된 이른바 ‘성완종 게이트’ 의혹은 엄청난 사건이다. 총리 지명 이후 부동산투기와 병역면제 등 각종 의혹으로 청문회 이후 여론조사에서 총리로서 ‘부적합 41%·적합 29%’로 부정적 의견이 높았던 국민들, 그리고 야권과는 달리 여권은 최고라고 평가한 인물이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이완구 국무총리 내정자에 대해 “탁월한 능력을 가진 완벽한 정치인”이라고 치켜세웠다. 이어 “대통령께서 좋은 선택을 해 감사드린다”는 극찬도 서슴지 않았다. 김 대표는 이렇게 ‘완벽한’ 정치인의 총리 임명을 위해 인사청문회는 물론 국회 표결을 지휘했다.
그런데 이완구 총리는 한방에 갔다. 버텼지만 든든한 후원군이었던 새누리당에서 사퇴론이 터져나오자 ‘항복’해야 했다. 핵심 당직자들은 물론 중진·초선 의원들까지 ‘사퇴 불가피’를 주장했다. 극찬의 주인공 김무성 대표마저 등을 돌렸다.
그리곤 거기까지였다. 반성문이 없다. 최고라고 치켜세우며 총리로 ‘모신’ 인물이 불명예스럽게 낙마했으면 호도한 여론과 잘못한 선택에 대한 사과가 있어야 한다. 동네 반장도 아니고 사실상 행정부의 수장인 국무총리를 뽑는 일이었다.
재보선 참패에 ‘과감한’ 책임을 지지 못해 ‘봉숭아학당’ 조롱을 받는 새정치민주연합 지도부나, 최고라며 임명을 주도했던 총리가 ‘70일짜리’로 초단명하는 불상사가 발생했으나 사과 한마디 없는 새누리당 지도부 모두 너무 무책임하다. 시쳇말로 ‘도찐개찐’이다.
대한민국을 이끄는 여야 정당의 모습이 이러니 국민들은 웃프다. 아니 슬프다. 가는 봄날보다 대한민국의 오늘이 더욱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