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희망·열정이자 상서로움·권력의 상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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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주매일
  • 승인 2015.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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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호동의 차이나 스토리
<9>중국인들의 영혼 '붉은색'
▲ 붉은 색은 중국인들에게 절대적인 긍정의 색으로 생명과 희망, 열정이고 희열이며 기쁨과 상서로움을 상징하는 것으로 중국을 나타내는 정체성으로 여겨진다. <사진=주한중국문화원>

붉은색은 중국인들에게 절대적인 긍정의 색으로서 거의 흠결을 갖지 않는다. 생명이고 희망이며 열정이고 희열의 의미와 함께 기쁨과 상서로움의 상징도 있다. 생활 속에서 중국인들이 붉은색과 특별한 인연을 가지게 된 이유는 태양의 색이자, 음양오행 중 불(火)의 색으로 세상의 여러 색깔 중에서 인간의 생활에 미치는 의미가 가장 깊고 크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우주의 이치까지 다 보듬어 담아낸 깊은 뜻을 가져서인지 중국인들은 출생부터 붉은색과 함께 한다. 붉은색으로 물들인 계란으로 출생의 기쁜 소식을 이웃들에게 알리고 출생 후 한 달째 치러지는 만월(滿月)의식에선 붉은 실을 아이의 목에 감아 축복하기도 한다.

붉은색의 절정은 결혼식이다. 결혼식은 붉은색의 초대로 시작되는 잔치다. 요즈음에는 축의금에 대한 부담감으로 ‘홍색 폭탄’이라고도 불리는 붉은색의 청첩장은 지폐 중 가장 고액권인 붉은색 바탕의 100위안 짜리를 넣은 붉은 봉투 ‘홍빠오(紅包)’로 답을 받고, 예복이며 온갖 장식품도 다 붉은색이다. 특히 온갖 붉은 것들이 사방에 내 걸리는 춘지에(春節)에는 온 세상이 붉어진 듯, 그 과장됨에 이방인들은 홍색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붉은색은 생활 속에서 남성보다는 여성들과 더 가까운 색이라 할 수 있다. 고대로부터 여인들이 즐겨 사용했던 연지(烟脂)는 중국 전국시대 연나라로부터 시작됐다는 것이 정설이다. 꽃이나 석류를 원료로 만든 안료(顔料)를 그림이나 여인들의 얼굴이나 입술에 바르는 화장품으로도 사용됐는데 양귀비가 살았던 시절에 매우 유행했다. 연지의 현대판인 립스틱은 붉은 입술을 연상케 하는 커우홍(口紅)이라 이름 붙여졌다.

중국인들은 왜 생활 속에서 특정의 한 색깔에 몰입하게 됐을까? 왜 유독 붉은색을 그리 좋아하고 친근할까? 중국인들은 고대로부터 ‘적(赤)’이며 ‘자(紫)’, ‘홍(紅)’과 ‘주(朱)’에 ‘단(丹)’까지 모두 붉음의 색을 칭하고 그 담농(淡濃)을 구별하고 애호했다.

옛날 중국인들 중에 정말 영웅호걸이 많았던 것처럼 느끼게 하는 모종의 환상을 보게 하는 듯한 소설 ‘삼국연의’ 속에서 홍안(紅顔)의 관우가 탔던 적토마(赤土馬)나 자금성(紫金城)과 오성홍기(五星紅旗)며 부적에 쓰이는 주사(朱沙)와 단풍(丹楓)들은 문자와 사물과의 조화에 따라 서로 다르게 느껴지기는 하지만 모두 붉음을 원류로 한다.

문자로서의 ‘홍(紅)’은 붉은색을 의미하는 외에도 긍정적인 의미를 듬뿍 담고 있다. 현대적 의미로 해석해 보면 인기가 있다든지 사업이 잘 되거나 유명해지거나 하는 의미들을 ‘홍’이라는 글자가 담고 있다. 게다가 이익이 남는다는 뜻까지 가지고 있으니 충분히 좋아할만한 뜻을 가진 글자인 것이다.

특히 혁명의 의미까지 더해지면서 사회주의 국가 중국에 있어 붉은색의 의미는 더욱 깊어졌다. ‘홍군(紅軍)’이라 칭해진 마오의 군대는 혁명의 노래인 홍가(紅歌)를 부르며 고난의 대장정을 지나 마침내 대륙의 승리자가 된다. 천안문에 오성홍기를 내걸며 100여 년간 끔찍했던 침략의 흑백시대를 마감하며 붉은색으로 치장된 채색의 중국 시대를 시작한다.

마오의 시대가 이어지는 1949년부터 1978년까지의 혁명 시기를 ‘홍색연대(紅色年代)’라 부른다. 붉은 완장을 찬 어린 ‘홍위병’들이 세상을 지배하다시피 하며 혁명의 이름으로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박해를 받고 처형당했던 정말 ‘붉은 시간’이었다.

‘모택동선집’은 붉은 보석과 같은 책이라는 의미를 지닌 ‘홍바오수(紅寶書)’로 불리며 유일하게 배급표 없이 살 수 있는 물건이었다. 무려 50억권이 발행돼 20세기 최다 독자를 가진 책이 되기도 한다.

공산당 창당 90주년을 전후로 해서는 ‘홍색문화’도 유행한다. 중국의 혁명가들이 현재의 중국을 세운 과정에서 남겼던 흔적들을 찾는 것이다. 공산당과 관련된 홍가(紅歌)·홍극(紅劇)·홍서(紅書) 등이나 대장정의 흔적을 찾는 홍색여행과 같은 것들로 대표되는 홍색문화가 인민들에서 자발적으로 일어나는 것이라는데, 집정하고 있는 공산당으로서는 여간 고무할만한 일이 아닐 것이다.

붉은색은 또 권력을 상징하기도 하다. 모든 공문서에 찍히는 붉은 직인은 위엄과 권위를 나타내며 힘의 상징이 되고자 한다. 중국에서 오랫동안 접했던 붉은색 제목으로 시작되는 갖가지 공문들은 늘 여기가 중국임을 번뜩 확인하게 한다. 붉고 커다랗게 쓰인 제목들은 퇴색할 것 같지 않고 앞으로만 향하는 아주 힘 있는 권한을 상징하는 느낌을 준다.

하지만 서양에서 붉은색은 의미가 영 달리진다. 앞으로 전진해야만 할 것같은 교차로 등에서 붉은색에 멈춰서야 하는 신호등이 주는 의미가 대표적일 것이다. 위험과 경고·금지 등의 영 다른 의미를 담았다. 그러나 세계적인 문화를 공유해야 하는 입장에서 어쩔 수 없는 예외는 있는 것이다. 중국인들의 붉은색 의미도 세월과 함께 복잡해졌다는 것이다. 그래도 성탄절도 즐기게 된 중국인들에게 있어 산타가 입는 옷이 붉은색임은 다행스런 일이다.

중국인들이 이웃 민족의 홍색 열풍을 본 적이 있다. 2002년 한·일월드컵 때 붉은색으로 뒤 덮인 우리 한국인들의 응원 문화에 중국인들은 부러워하기도 했고 놀라기도 했다. 오래됐지만 그 때의 붉은 응원 축제는 아직까지 한국인들이 ‘특별히 역동적인 민족’이라 기억하는 계기가 됐다.

그런데 가끔씩 중국인들과 일하면서 차이 큰 문화가 있음을 확연히 느낄 때가 있는데 같은 색을 보는 안목의 차이도 그 중 하나 대표적인 것이다. 외국인들의 눈에는 전시나 디스플레이를 함에 있어 사방팔방 붉은색이 부담스럽기도 하고 덜 세련되고 낙후돼 보이기도 하고 선정적인 느낌도 들지만 중국인들은 전혀 아니다. 붉은색에 대한 전혀 다른 눈과 정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고 편안하며 품위 있게 느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중국 땅의 주인이 중국인들이니 늘 논의하며 조화롭게 일을 진행하긴 하지만 수십 년을 더 거주한다 해도 절대로 같은 눈을 가지게 될 것 같지는 않은 다름에 대한 인정과 이해가 필요한 다른 문화라 느낀다.

중국인들이 붉은색을 좋아한다고 붉은색으로 온갖 단장을 하고 장사할 필요는 없다. 외국은 외국다워야 중국인들도 느낌을 가지고 좋아할 일이다. 그러니 제주가 굳이 붉은색 단장을 늘려 갈 필요는 없다. 어느 음식점이나 매장에서도 환영한다는 정성 담긴 붉은 메시지 하나 잘 보이는 입구에 붙여 두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중국인들의 자본이 뿌려내는 붉은색 열기가 지구촌 곳곳에 번지는 느낌이다. 따스하기만 하면 좋은데 언제부터인지 자꾸 뜨거워지는 것이 예사롭지가 않다. 붉은색이 가진 긍정의 의미만을 중국인들과 적절하게 같이 느끼며 오랫동안 상생할 수 있도록 진지한 고민을 계속해야 할 분위기다.

 

 

‘황제의 색’은 의미 변질…‘백성의 색’은 영속성 유지

 

오행에서 흙을 나타내는 노란색(黃色)도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대표적인 색이다. 중국 전통 사회에서 밝은 황색은 황제만이 쓸 있는 색이었다. 황금을 연상케 하는 짙은 황색은 재물을 상징하는 색으로서 존중 받는다.

그런데 붉은색의 ‘반란’이 일어났다. ‘황제의 색’인 황색에 버금하여 존중받기 시작한 것이다. 그때가 농민 쭈위엔짱(朱元璋)이 새 나라 명(明)을 세우고 황제가 되고 난 이후부터다.

어찌 보면 주(朱)씨 성을 가진 사람이 ‘붉은 두건’인 홍건(紅巾)의 혁명을 통해 황제가 됐으니 붉은 색을 좋아했음은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후 청(淸)을 건국, 중국 대륙을 지배한 몽고족은 특별히 좋아하는 색을 가지지 않았으나 한족들이 위주였던 민간에서는 여전히 붉은 색을 숭상하며 지금까지 이어진 것이다.

그리고 ‘황제의 색깔’의 굴욕은 계속됐다. 중국인들의 사랑이 여전한 붉은색에 반해 노란색은 지금 엉뚱하게도 음란을 의미하는 색상이 돼 버렸다. 황색 소설·황색영화·황색유머, 그리고 중국에서 암표상이나 암표(黃牛·黃票)를 뜻하는 단어에도 쓰이고 있다.

노란색이 이런 저런 반사회적인 의미를 함유하게 된 것은 1800년대 말 영국의 한 잡지 이름에서 유래된 것이 중국에도 전파됐다는 것 외에는 이유를 찾기 어려운 재미있는 일이기도 하다. 붉은색이 그런 반(反)함의 의미 없이 거의 예외 없는 긍정의 뜻만을 내포하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중국인들에게 있어 황제의 색은 그 의미가 이렇게 변질됐는데 백성들의 색은 영속성을 가진 듯해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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