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흥순 감독 베니스서 ‘낭보’
세계3대 비엔날레서 은사자상
여성노동자 다큐 ‘위로공단’
4·3영화 찬사속 흥행 실패 감독
작품 위한 노력에 존경과 찬사
이번엔 흥행도 성공했으면
우리 ‘아트스페이스 씨’에선 오는 25일까지 김옥선 사진전 ‘빛나는 것들’이 열리고 있다. 그런데 지난 9일 특별프로그램을 진행한 이영욱 평론가(전주대 교수)와 서울서 내려왔던 몇몇 작가들은 제주도 관람객들의 진지한 참여 분위기와 질문 등에 무척 놀라워했다. 전시를 기획하는 일이 그리 만만치는 않지만, 작가들의 작품을 깊이 있게 만나면서 삶에 대한 흥미로운 시각 혹은 감흥을 매번 새롭게 경험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
더욱이 관람객들이 찾아와 눈을 반짝이며 작품과 소통하는 모습을 만나면 새로운 에너지를 공급 받게 된다. 게다가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했는데 중요한 전시에서 인정받기라도 하는 날에는 정말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날 저녁 “저희 은사자상 받았어요. 다 덕분이에요. 지금 시상식 중”이란 문자를 받았다. 임흥순 감독의 ‘위로공단’이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 본전시에 초대받았는데, 개막식 시상식장에서 김민경 PD가 소식을 전해온 것이다. ‘다 덕분’이라는 말을 들을 만큼 기여한 건 없지만 관심을 가지고 지지했던 작품이고 감독이었기에 감흥은 남달랐다.
임흥순은 제주4·3에 대한 시적 다큐멘터리 ‘비념’으로도 여러 중요한 영화제에서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지난해 미국 소노마카운티 뮤지엄에서 제주4·3전시를 할 때도 상영해 찬사를 받았었다. 애월읍 납읍리에 사는 김민경의 외할머니와 4·3 때 돌아가신 외할아버지의 희생을 꺼내면서 제주도민들이 겪었던 4·3의 고통을 예술적으로 표현한 그의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지는 못했다. 시적 다큐멘터리라는 영화적 표현에 익숙하지 못한 대중들을 탓할 수만은 없어 참으로 안타까웠다. 그렇지만 소외된 아시아 여성노동자에 대한 그의 예술적 접근 방식을 베니스비엔날레에서 알아보고 초대하여 은사자상까지 수상했으니, 관심을 가진 지지자로선 더할 수 없는 기쁨이었다.
영화 ‘위로공단’은 한국과 동남아의 의류공장·삼성전자 반도체·항공사 승무원·서울시 다산콜센터 등에서 일하는 여성노동자 60여명을 지난 2년간 인터뷰해서 만들었다. 산업화 시대와 신자본주의 시대에 경제 역군으로 가족과 국가를 책임졌고 여전히 책임지고 있는 여성들이다.
이 여성 노동자들은 곧 그의 어머니이고 그의 누이였다. 감독은 “40년 넘게 봉제공장 ‘시다’ 생활을 해 오신 어머니와 백화점 의류매장·냉동식품 매장에서 일 해온 여동생의 삶으로부터 영감 받은 작품”이며 “삶과 일터에서 신념을 가지고 살아오신 많은 여성분들께 감사드린다” 고 했다.
베니스 비엔날레는 세계 3대 비엔날레에 속하는 최정상급의 대규모 현대미술축제다. 한국 작가로는 6년 만의 본전시 초청이다. 심사위원단이 임흥순의 ‘위로공단’을 선택한 이유에서 “아시아 여성들의 노동 조건과 관계된 불안정성의 본질을 섬세하게 살펴보는 다큐멘터리 작품으로 그 인물들과 그들의 근로 조건을 직접적으로 대면한다”고 언급했다고 한다. 장편다큐를 미술전시장에서 그대로 상영하고, 35세 미만의 젊은 작가를 선정하는 관례마저 깨고 46세의 임 감독에게 은사자상을 수여한 것은 파격이다.
임 감독의 작품들은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애정에서 시작된다. 그들의 개인사를 작품에 담아내는 사이에 그 사회의 역사적·사회적·정치적 문제들을 작가의 예술적 방식으로 자연스럽게 끌어내어 관람객들이 경험하게 만든다.
인터뷰와 상징적 장면들을 섞어내는 사이에 출연자들이 겪었던 그리고 겪고 있는 내면과 시대적 문제들을 자연스럽게 감성적으로 느끼게 만든다. 물론 상황에 대한 친절한 설명은 없다. 그러나 감성적인 울림으로 삶에서 부딪히는 현실 속 타자의 고통에 대한 공감과 위로를 긴 떨림으로 전하고 느끼게 만들며 그것이 예술의 힘 중 하나라고 믿는다.
노동자와 정치권력의 문제를 다룬 영화들에 대한 탄압이 만만치 않은 우리 현실에서 여성노동자에 대한 영화를 만든 임흥순 감독과 김민경 PD의 땀과 능력에 깊은 존경과 찬사를 보낸다. 올 하반기 개봉 예정이라니 흥행에도 성공할 수 있도록 많은 관심과 애정을 기울여 주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