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치 혀(三寸舌)의 역사
세치 혀(三寸舌)의 역사
  • 김계춘
  • 승인 2015.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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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지와 책략 어우러지면
위기  극복 강력한 힘 발휘
링컨 ‘진정성 있는 말’로…
 
이완구 ‘가벼운 세치 혀’로 몰락
정청래 ‘毒說’… 새정치련 곤욕
“혀는 제 몸을 베는 칼”되새겨야

삼촌지설(三寸之舌), 세치의 짧은 혀라는 뜻이다. 고작 세치(약 10㎝) 밖에 되지 않는 혀의 위력이 대단하다는 의미를 지닌다. 사마천의 사기(史記) ‘평원군열전’에서 유래됐다.

중국의 전국시대에 강력한 진(秦)나라의 공격으로 풍전등화의 처지가 된 조(趙)나라 평원군 조승은 초(楚)나라를 찾아 구원병을 요청했다. 수십명의 신하(군사)가 교섭을 벌였지만 동맹은 이뤄지지 않았다. 아무런 성과도 없이 돌아서야 할 판에 누군가가 나섰다. 볼품도 없는데다 평소 뛰어남도 없었기에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평원군의 식객 모수(毛遂)였다.

그는 조금도 굴하지 않고 초나라 효열왕과 당당하게 맞섰다. “초나라는 대국입니다. 그런데도 한 번 겨뤄보지도 않고 진나라를 섬긴다면 세상이 비웃습니다. 지금 이렇게 제후국간의 합종책(合從策)을 권하는 것도 초나라를 위해서 입니다” 조금은 자존심을 건드리는 모수의 언변에 탄복한 초왕이 군사를 내줌으로써 조나라는 멸망의 위기를 넘기게 되었다.

이에 평원군은 “모선생의 세치 혀가 백만 명의 군사보다 더 강한 힘을 발휘하였다(毛先生以三寸之舌 强于百萬之師)”라고 그를 높이 평가하며 이후 중용하기에 이른다. 초패왕 항우에 비해 지극히 불리했던 유방이 천하를 제패하고 한(漢)나라를 건국한 것도, 책략과 말솜씨가 뛰어난 장량(張良)이란 군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세치 혀(말)의 중요성은 동서고금(東西古今)을 막론하고 대동소이하다. 앞서의 성공 사례가 주로 기지와 책략에 의한 것이었다면, 미국 제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은 ‘진정성 있는 말’로 승리한 경우다.

링컨이 1860년 대통령 선거에서 숙명의 정치적 라이벌인 스티븐 더글러스와 맞붙었을 때의 일이다. 당시 더글러스는 부와 명성을 한 몸에 지닌 인물이었다. 그는 선거유세를 통해 “링컨이라는 시골뜨기에게 귀족의 맛을 보여주겠다”고 호언장담했다.

링컨의 화답은 이랬다. “더글러스는 토지장관과 내무장관 등을 역임한 큰 인물입니다. 반면에 제가 대통령이 될 수 있다고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저의 재산이 얼마인지 물어봅니다. 저에게는 아내와 아들 하나밖에 없지만, 그들은 값을 매길 수 없는 보배입니다. 게다가 저는 의지할 데도 없습니다. 유일하게 의지할 곳은 오직 여러분들 뿐입니다” 치열한 선거전이 끝나고 결과는 링컨의 압도적 승리로 나타났다.

세치 혀에서 나온 말은 약(藥)이 될 수도, 독(毒)이 될 수도 있다. 혀를 잘 놀려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가 하면, 혀를 잘못 놀려 힘들게 쌓아 올린 공든 탑이 하루 아침에 무너지기도 한다.

말이 많다 보면 실수하거나 앞뒤가 다를 때가 있기 마련이다. 특히 우리의 정치인들이 자주 구설(口舌)을 겪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최근 들어선 이완구 전 국무총리와 정청래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이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우선 이 전 총리의 경우 참을 수 없는 ‘세치 혀의 가벼움’이 문제가 됐다. 그는 총리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자신의 말 한마디로 방송 출연자를 교체할 수도 있고, 기자들의 인사마저 좌지우지할 수 있다고 호기를 뽐냈다가 큰 곤욕을 치렀다. 천신만고(千辛萬苦) 끝에 총리에 취임해서도 그 ‘가벼움’은 없어지지 않았다. 결국 ‘성완종 리스트’에 덜미가 잡힌 채 잦은 말바꾸기로 국민적 신망을 완전히 잃고 ‘패가망신’의 길로 들어섰다.

이완구 전 총리가 궁지에 몰려 혀가 마르고 입술이 타는 ‘설건순초(舌乾脣焦)’ 형이라면, 정청래 최고위원은 혀가 칼이 되고 입술이 창이 되는 ‘설검순창(舌劍脣槍)’ 형이다.

그는 지난 8일의 최고위원회의에서 주승용 최고위원을 향해 “정작 사퇴 하지도 않으면서 사퇴할 듯 ‘공갈’을 친다”는 발언을 해 큰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그렇지 않아도 재보선 패배로 내홍(內訌)에 휩싸인 새정치련 내부에 걷잡을 수 없는 거센 풍파를 일으킨 것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정 최고위원을 가리켜 ‘새누리당의 X맨’이란 비아냥도 나온다.

 ‘입은 재앙이 들어오는 문이고 혀는 제 몸을 베는 칼이다’라고 했다. 유머와 위트가 곁들여진 독설(毒舌)은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는 풍자(諷刺)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게 배제된 독설이나 막말은 결국 스스로를 해치는 부메랑(칼)이 되어 돌아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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