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원과 봉사도 역지사지 마음으로
후원과 봉사도 역지사지 마음으로
  • 제주매일
  • 승인 2015.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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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현수 제주장애인인권포럼 상임대표

사회복지현장에 후원자와 자원봉사자들의 발길이 많은 시기는 5월과 12월이다. 5월은 ‘가정의 달’이고 12월은 세밑이기에 관심의 정도가 다른 듯하다. 고마운 일이다. 많은 자원봉사자들과 후원자들의 덕으로 이만큼이라도 사회의 건강성이 유지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가끔은 받는 입장에 있더라도 후원자와 자원봉사자의 동기와 행동이 오히려 마음을 안 좋게 하는 경우가 있다. 어느 아동시설의 예다. 어떤 이가 상당량의 옷을 기부하겠다고 해서 기쁜 마음으로 받아 보니 모두가 유행이 한참 지났거나 철지난 옷들이었다고 한다. 시설 측에서는 난감했지만 옷의 액수에 맞게 현물 후원영수증을 끊어 줬다. 또 다른 예는 필자의 경우인데 식료품 대리점을 운영하는 지인으로부터 식료품을 후원 할 테니 후원금 영수증을 부탁받았다. 문제는 유통기간이 바로 목전이었다는 점이다. 이런 경우 솔직히 불쾌감마저 든다.

이런 사례가 적지 않아 보건복지부는 기부식품운영지침을 제정, 유통기간이 도래했거나 넘은 식료품은 기부를 금지하고 있다. 도내에 저소득층과 소외계층에게 식품을 무료로 제공하는 푸드뱅크에서는 당일 팔다가 남은 빵과 같은 즉석식품을 후원하겠다는 사업체의 부탁에 곤혹스러워 한다.

우리 기관은 동료상담 프로그램을 하고 있다. 같은 처지의 중증장애인들 간의 상담을 통해 사회적 자립을 지원하고 촉진하는 서비스의 일환이다. 이 과정을 통해 자립에 성공한 경도의 지적장애를 갖고 있는 장애인이 계신다. 그 분은 상담 중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거주시설에 생활했을 때 자주 오는 자원봉사자가 있는데 입소자(장애인들)를 ‘천사님’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날개도 없는데 어떻게 자기가 천사냐고 나에게 반문했다.

페이스북에서 소통하는 한 분은 시설에 정례적으로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듯한데 “천사들을 위해 식사봉사를 했다”며 첨부한 사진에는 시설 거주인들이 얼굴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몇 회 반복되길래 시설 거주인들은 천사가 아니고 사람인데 사람으로 존중했으면 좋겠고 사진은 동의를 받으셨는지 댓글로 물었는데 반응이 없었다.

동의 없는 사진은 초상권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천사님’이라는 호칭은 유독 지적장애인들을 통상적으로 표현하는 것 같다. 지나치게 미화하고 과한 어휘 선택이라 생각한다. 철지난 옷과 유통기한이 다 돼가는 식료품을 기부한 이들은 혹시 자기이익을 위해 폐품 처리하듯 하지 않았는지, 시설이용객을 천사들이라고 호칭하는 이들은 지나치게 동정의 대상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사실 자원봉사나 후원은 쉽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 사회가 너무도 건조하고 타인에 대한 공감과 배려부족이 오죽했으면 학생 평점에 자원봉사점수까지 도입했겠는가. 요즈음은 회사취업에도 인성평가를 중요시 한다고 하니 많은 이들이 학점과 스펙관리 차원에서 자원봉사를 활용하는 경우도 있다.

이게 잘못이라는 것은 아니다. 그 동기가 자기이익이라도 공동선을 추구하는 것이라면 나무랄 이유는 없다. 오히려 장려돼야 마땅하다. 하지만 받는 처지에 있다고 해도 그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받게 했다면 안한 만 못한 것이다.

상처는 사람으로서 존중받지 못할 때 생긴다. 그렇기에 후원이나 자원봉사는 이타심(利他心)으로 행해야 한다고 한다. 사람의 이기심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후원과 자원봉사가 이기심을 버리고 이타심을 갖기 위한 연습이 아닐까 싶다.

일부의 그릇된 행동 때문에 다수의 선한 이들의 진정성이 폄훼돼서는 안 될 일이다. 그럼에도 이런 문제를 생각해봤으면 하는 이유는 약하고 소외된 이들이 받는 마음의 상처는 생각보다 더 크기 때문이다. 많은 자원봉사와 후원을 하는 이들의 동기가 선하더라도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다가서길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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