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과 영화의 추억
극장과 영화의 추억
  • 제주매일
  • 승인 2015.05.0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고영림 ㈔제주국제문화교류협회장

제주시 동문로터리에 영화관이 하나 있다. 시장에 큰 불이 난 후 1965년에 준공된 동문시장 건물 동쪽에 옛 동양극장이다. 거대한 선박처럼 지어진 이 건물 2층에 들어선 이 극장은 큰 돛을 펼친 형상이다. 금방이라도 바다로 항해할 것 같은 위용은 시드니 오페라하우스보다 더 멋진 모습이다.

중장년 세대의 제주도민 중 아마 이 극장에서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 또한 어린 시절에 부모의 손잡고 설레는 마음으로 영화를 보러가곤 했다. 학교에서는 시험이 끝나는 날 단체관람을 하곤 했다. 친구들과 재잘대면서 동양극장 계단을 오르던 장면이 눈에 선하다. 지금은 영화관람이라고 말하지만 그때는 극장구경이라고 했다.

산지천 쪽 입구로 칠성로에 들어서면 이제는 흑백 사진에서만 만날 수 있는 제일극장이 있었다. 칠성로 중간 지점에는 중앙극장으로 시작된 후 이름이 바뀌었던 아세아극장이 있었다. 이 극장은 중앙로에서 탑동으로 연결되는 큰 길이 생기면서 철거됐고 극장의 흔적은 북쪽으로 난 샛길에서 간신히 찾을 수 있을 뿐이다.

탑동 방향으로 가다보면 옛 코리아극장이 있는데 신축된 후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현재는 무료상영관인 영화문화예술센터가 돼 도민들에게 훌륭한 공공재 역할을 하고 있다. 관덕정 방향으로 칠성로를 나온 후 길을 건너면 제주의 최초 극장인 제주극장이 옛 모습 그대로 서 있다. 일제강점기 당시 목조건물이었던 조일구락부가 있던 자리에 해방 후 현재의 콘크리트 건물로 신축됐다.

현대극장으로 이름이 바뀌었지만 반세기가 넘는 시간의 흐름을 고스란히 느낄 수 제주극장 앞에 서면 숙연해지기까지 한다. 육지에서 무성영화가 들어오면 변사도 함께 와서 관객들을 웃기고 울리고 했던 제주극장은 마치 오래된 옛이야기를 들려주는 할머니 같은 모습이다.

이제는 영화를 상영하지 않는 원도심의 극장 또는 극장터를 지날 때마다 나는 추억에 잠기기도 하고 마음이 축축해지도 한다. ‘사운드 오브 뮤직’은 결코 잊을 수 없는 영화다. 여주인공 마리아역을 맡은 쥴리 앤드류스가 아이들과 함께 부른 ‘도레미송’, 폰 트랩 대령 식구들이 부른 ‘에델바이스’는 몇 십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즐겨 부르는 노래다.

오드리 헵번과 그레고리 펙이 주연을 맡은 ‘로마의 휴일’은 나의 헤어스타일을 바꿔버린 영화다. 초등학생이었던 나를 데리고 이 영화를 본 엄마가 영화관을 나서자마자 미장원으로 가서 내 머리를 헵번스타일 즉 숏커트로 만들어달라고 요청했다. 미장원의 거울 속 내 모습은 사내아이가 돼버렸고 크게 울음을 터뜨렸던 그 순간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그랬던 내가 청년이 돼 프랑스로 유학 간 후 로마를 찾아간 이유는 바로 ‘로마의 휴일’ 속으로 들어가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오드리 헵번이 상큼한 쇼커트 머리로 변신한 후 스페인광장의 계단을 내려오던 그 장면을 나도 연출하고 싶었다. 트레비분수를 등지고 서서 동전을 어깨너머로 던지고 싶었다.

한국영화 ‘저 하늘에도 슬픔이’는 전 국민을 눈물바다로 만들었다. 이순신 장군을 소재로 한 영화는 여러 편이나 봤는데 이순신 장군의 갑옷과 장화 등 소품들을 꼼꼼히 봤던 기억이 난다. 지역민의 희노애락을 함께 해줬던 대중매체인 영화는 요즘처럼 다양한 문화 장르를 향유할 수 없었던 시대에 일상에서 매우 중요한 오락적·교육적 기능을 담당했다.

올해는 동문시장 건물 즉 동양극장이 준공된 지 50년이 되는 해다. 동양극장을 비롯한 여러 극장들의 추억을 공유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것 같다. ‘시네마 천국’의 주인공 토토 아니 ‘제주의 토토’들을 찾습니다. 극장의 추억, 영화로 행복했던 이야기를 들려주실 분들을 찾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