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둥번개 소리에 움찔하며 창밖의 폭우를 가만히 바라봅니다. 그리곤 넘쳐나는 에너지를 어쩌지 못해 결국 선생님의 잔소리를 이끌어내는 우리 반 ‘말썽장이’들에게 눈을 돌립니다.
아이들이 본격적으로 놀아볼 모양입니다. 그저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함께 할 놀이를 정하기 위해 의견을 묻고 찬반을 확인하는 역할의 반장이 있긴 하지만 그 아이를 리더 혹은 주도자로 받아들일 지는 각각의 몫입니다.
놀이 중에는 아이들 본연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선생님 앞이기에 아이들은 더욱 서로가 평등하다고 느끼고 더 자유롭게 자신을 표현하는지도 모릅니다. 놀이를 제대로 즐겨보려고 서로 맞춰가며 애를 쓰기도 합니다. 다함께 박수치고 아쉬워하며 다음 놀이를 준비하는 모습이 참 대견하고 사랑스럽습니다.
애들이 놀이하는 모습을 보는 재미가 정말 좋습니다. 그런데 장면은 낯설고 신선하며 해석의 여지가 있습니다. 놀이 시간을 통해 자기 자신을 온전히 꺼내어 놓습니다. 그리곤 제각각 자신만의 이야기를 쌓아갑니다. 추억입니다. 주인공은 ‘나’입니다. 그 속에는 교과서나 문제지의 지문이나 핵심내용 같은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집단에서 자신을 들어내는 지혜와 나름대로의 생존 방법이 곁들여져 있기도 합니다.
이 시대 최고의 화두는 단연 행복입니다. “행복하려면 어릴 때 하고 싶었던 일을 하라!” 정신분석학자 프로이드의 말입니다. 만약 학급이 조금의 자유가 주어진다면 종종 “놀아요!”라는 합창소리가 나오기 마련입니다.
아이들은 하고 싶어 하는 일을 하면서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경험을 합니다. 자기가 갖고 있던 에너지를 원 없이 쏟아내는 경험도 합니다. 즐겁게 웃는 아이, 기진맥진해서 당장이라도 책상에 엎드릴 것 같은 아이, 분이 풀리지 않아서 씩씩거리는 아이 등 표정이 다양합니다. 그래도 놀이후의 결론은 즐거움입니다.
2013년 기준 우리나라 아동 삶의 만족도가 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꼴찌라고 합니다. 슬프지만 현실입니다. 일상의 많은 시간을 보내는 학교는 우리 아이들에게 매우 특별합니다. 우리 기성세대에게도 특별합니다.우리의 가장 큰 재산인 인재가 길러지는 곳입니다.
하지만 아이들의 입에서 “학교 오기 싫어요.”라는 말이 들리고 공휴일을 맞는 아이들의 환호성이 들린다면 학교의 위기입니다. 현재의 교육은 지식을 수입하고 전달합니다. 이 역시 꽤 의미 있고 필요한 일이지만 이 과정에서 구조화된 지식이 전체적인 교육의 흐름을 지배하고 있다고 느껴집니다.
사회적으로 파급효과도 커 사람들은 이상적으로 구조화된 공장의 기계처럼 규칙적인 일상에 매몰돼 삶의 의미와 즐거움, 행복의 가치와 그 느낌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학교의 어원은 ‘여가’입니다. 아인슈타인의 성공의 법칙에는 ‘생활을 즐길 것’, ‘한가한 시간을 만들 것’, 스티브잡스의 스탠포드 연설에는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모든 것이 분명하게 보입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다가오는 시대의 학교는 단기적이고 구조화된 목표에서 벗어나 학생 개개인이 스스로가 추구하는 가치에 기대어 100년의 삶을 보살필 수 있는 능력을 기를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놀이는 구조화와 비구조화, 조직과 생산의 과거와, 창조와 생명의 미래를 연결지어주는 도구로서 매우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국가차원의 변화가 필요하고 이를 실천하기 위한 노력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어제 전국 시도교육감협의회가 국회에서 선포한 ‘어린이 놀이헌장’은 학생의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학생들에게 이양하는 뜻 깊은 자리였습니다. 학생들의 행복을 위해 어른들이 적극적이고 지속적으로 책임을 다하는 시발점이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