⑩덩굴식물 ‘유으름’과 ‘멍’

먹을 것이 귀하던 시절, 특정지역이나 계절에 따라 얻을 수 있는 다양한 천연 먹거리 식물에 대한 추억들이 있을 것이다. 조금씩 차이는 있겠지만 마을 주변의 자왈이나 빌레에서 손이 모자랄 정도로 한웅큼씩 산열매를 따먹던 기억들은 모든 것이 풍부한 요즘과는 분명히 다른, 자연과 같이 하나가 되었던 느낌 일 것이다.
“유으름”과 “멍”이라는 식물이 있다. 아주 친숙한 식물이지만 연배에 따라서는 다소 생소한 식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유으름은 으름덩굴의 제주어이다. 지역에 따라서는 갱이, 종겡이, 존곙이 등으로 불리기도 하며 쓰임새가 많은 줄기는 존곙이-줄로 불린다. 멍은 멀꿀의 제주어로 두 종류는 이름만 들어도 즐거워지는 대표적인 식용식물이며 덩굴식물이다. 우리가 자연에서 식용할 수 있는 덩굴식물로는 으름덩굴과 멀꿀 외에도 흑오미자, 섬다래, 다래, 머루 등이 있으며, 그 외에도 으아리, 사위질빵, 푼지나무, 남오미자 같은 다양한 약용 덩굴식물이 있다. 이런 덩굴식물들은 오랜 세월 소중한 천연의 먹거리가 되어 주기도 하고, 생활 속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농자재이기도 하다.
■줄기나 뿌리·씨앗 약용으로 이용
대부분 식물이 그러하지만 덩굴식물도 살아가기 위해서는 빛이 필요하고 후손을 퍼트리기 위해 다른 식물보다 높은 곳을 찾아 노력해야 건 마찬가지이다. 다른 식물과 차이가 있다면 그게 식물이든 식물이 아니든 다른 물체에 의지하며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담쟁이덩굴의 흡착근이나 송악 등의 기근, 환삼덩굴의 가시, 콩과식물의 덩굴손 같은 독특한 구조를 가져야 한다. 특히, 안정된 정착을 위해서는 다른 식물이나 물체를 감고 오르기 위해 나선상의 회전을 하며 자라기 때문에 다른 식물에서는 필요 없는 유연성도 가져야 한다. 이런 덩굴식물의 유연함은 오래전부터 물건을 결박하고 묶을 수 있는 훌륭한 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었던 이유가 돼왔다.
으름덩굴은 일본과 중국에도 분포하며, 국내에는 제주도를 비롯하여 강원도 지역을 제외한 한반도의 서부지역에 주로 분포하는 특징이 있다. 멀꿀은 일본, 대만에도 분포하며, 제주도와 주로 남해안의 도서지역에 자라는데 서해안 도서지역에도 드물게 자란다. 아무래도 낙엽성인 으름덩굴이 상록성인 멀꿀보다 전국적으로 분포하고 있으며, 으름덩굴은 줄기나 뿌리, 씨앗(燕覆子)을 약용식물로 많이 이용되고 있다. 특히 으름덩굴의 오래된 줄기는 세월의 흔적들이 독특하게 묻어나 다양한 가공품의 소재로 활용되기도 한다.
으름덩굴과 멀꿀은 으름덩굴과(科)의 식물이다. 두 식물의 차이를 살펴보면 으름덩굴은 낙엽성이면서 꽃받침이 3장이고 수술이 각각 떨어져 있으며, 이에 반해 멀꿀은 상록성이며 꽃받침은 6개이고 수술은 뭉쳐나는 특징이 있다. 일반적으로 쌍자엽식물의 경우는 꽃잎 등의 수가 4-5개이지만 으름덩굴과는 3수성이라 독특한 면을 가지고 있다. 꽃은 4-5월까지 서로 비슷한 시기에 피는데 으름덩굴은 고목나무에서 꽃이 피듯 굵은 줄기에서 잎이 뭉쳐 나오고 엷은 자색의 꽃이 피는 경우도 있어 보다 운치가 있으며, 암꽃과 수꽃이 한그루에 피는 특징이 있다. 멀꿀은 상록성이라 초록색 잎에 하얀색 꽃이 주렁주렁 달려 나름 화려해 보이는 특징이 있고 일가화이지만 으름덩굴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 든다.
이런 식물들의 잎은 복엽으로 작은 소엽들이 여러개 모여 한 장의 잎을 구성하는데, 멀꿀의 잎은 3-7장의 소엽으로 구성되며, 으름덩굴은 5개의 소엽으로 구성되고 뒷면은 다소 흰빛을 띠기도 한다. 식물도감을 보다보면 으름덩굴의 경우는 잎의 수가 간혹 6-9개가 있는 경우가 있어 이런 경우를 “여덟잎으름”이라는 품종으로 불리는 경우도 있지만 개체변이로 취급하는 학자들도 있다.

■‘열매’ 으름 벌어지나 멀꿀은 아니
열매형태는 송편과(골돌)의 형태지만 다 익었을 때 으름덩굴은 열매가 벌어지지만, 멀꿀은 벌어지지 않는 차이점이 있다. 과실에는 100개 내 외의 씨앗이 들어 있고, 주로 조류에 의해 전파되는 특성상 숲 가장자리 군락과 내부에서도 다수의 개체들이 많이 확인되는 이유 중 하나이다.
제주지역에서 자라는 환경을 보면 으름덩굴은 난대상록활엽수림에서 온대 활엽수림까지 넓은 지역에 자라며, 낙엽성이지만 상록성처럼 자라는 경우도 흔하게 볼 수 있다. 반면 멀꿀은 난대 상록활엽수림지역과 주변 도서지역에 주로 자라 차이가 있다. 특히 저지대의 곶자왈이나 하천변에서 흔하게 만날 수 있으며, 멀꿀의 경우는 가정집 대문위에나 담벼락에 올려 키우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다. 두 종류는 식생요소로 보면 숲의 내부까지 자라기는 하지만 덩굴식물의 특성상 임연군락(숲가장자리 군락)에 주로 확인된다. 이런 덩굴식물의 어린개체들이 처음부터 굵은 나무나 물체를 휘감고 올라가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숲가장자리에서 비교적 어린나무나 주변 물체를 발판삼아 더 큰 나무로 올라가는 과정을 밟게 된다. 덩굴식물이라 쉽게 다른 나무를 감싸 자라서 큰 댓가를 지불하지 않는 것처럼 느낄 수도 있지만, 오랜 진화나 학습과정에서 특유의 유연성과 대처능력을 가져온 것이다.
우리가 흔히 식물은 스스로 움직임이 없는 것처럼 느낄 수 있지만 덩굴식물은 하루가 다르게 이곳에서 저곳으로 옮겨 다녀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것처럼 보여 질 수도 있다. 마치 스프링처럼 탄성과 유연성을 유지하는 것은 덩굴식물의 특징 중 하나로 의미 없고 막연한 기댐이나 의존이 아닌 스스로 해결하고 대처할 수 있는 식물의 또 다른 능력이다. 목표를 향하여 정확하고 유연하게 움직이는 덩굴식물들의 모습은 우리 일상에도 시사하는 것들이 많다고 생각된다.
세계유산한라산연구원 녹지연구사 김대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