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 살아가는 아이들을 위해
더불어 살아가는 아이들을 위해
  • 김은석
  • 승인 2015.05.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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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는 어른 먼저 ‘장유유서’
지금은 거꾸로 ‘유장유서’ 양상
“내 자식만 잘되면”이 문제
 
자식 강박관념에 사회 패닉화
아이들 외로움의 희생자일 수도
‘함께’의 가치 나누는 5월 기대

‘오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오늘은 어린이 날/ 우리들 세상’인 어린이날이 내일이다. 우리 어린이들은 미래의 주인이자 나라의 기둥이라고 한다. 너무 진부한 느낌이다. 따지고 보면 오늘날 어린이들은 미래의 주인공이기에 앞서 이미 현재의 주인공이다. 주변을 돌아보면 어린이 날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1년 사시사철 온통 어린이날로 도배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조선시대 어린이들은 다른 대접을 받았던 것 같다. 실학자 이덕무는 그의 책 ‘사소절’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아이들은 어른보다 나중에 자고 어른보다 먼저 일어나야 하며, 어른이 나가고 들어오고 할 때는 반드시 일어서고, 어른이 훈계하면 반드시 두 손을 마주잡아야 한다.”

장유유서(長幼有序)가 사회적 운영 원리로 통용되던 조선시대 어린이가 지켜야 할 도리였다. 그런데 ‘장유유서’ 대신 ‘유장유서(幼長有序)’라고나 할까. 오늘날은 앞뒤가 완전히 뒤바뀌고 말았다.

이제 부모는 자식보다 나중에 자고 자식보다 먼저 일어나야 한다. 빚을 내서라도, 내 자식만큼은 제대로 키워보고 싶다는 강박관념이 사회를 거의 패닉상태로 몰아가고 있다. 요즘 서울 대치동 엄마들의 유별난 교육습관 30가지라는 게 있는 모양이다.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온가족이 책을 읽고 역할극을 한다. 여행에 책을 반드시 갖고 다닌다. 정기적으로 가족신문을 만든다. 등등’ 이런 30가지의 내용 앞에서 나는 30년 전으로 돌아가 아이를 다시 키우라하면 두 손 들 수밖에 없다.

이러한 교육열이 있었기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됐다는 데 딱히 사족을 달 생각은 없다. 사실 유럽인들이 코리아와 콩고를 구분하지 못하던 시절, 그 가난했던 나라가 한강의 기적을 일구는 데는 세계가 부러워하는 교육열이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방향이 자꾸 이상한 곳으로 흘러간다는 데 있다. 내 자식만 좋은 교육을 받으면, 내 자식만 좋은 직장 들어가면 된다는 부모들의 이기적인 강박증이 문제다.

외국생활 할 때의 일이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학교에서는 학부모들에게 10달러 미만의 선물을 준비해 달라고 한다. 산타클로스를 통해 부모가 준비한 선물을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려는 것이다.

그런데 상당히 고가의 선물을 사서 보내 교사들과 다른 아이들을 당황하게 하는 사람들이 한국인들이다. 우리는 왜 그리도 유별나야 하는 것일까? 아이들을 식당에 데려와서는 여기저기 뛰어다녀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부모들, 음식 하나 먹으며 뭐 그리 속박하느냐, 돈 내고 먹는 동안 내 자식 발육발달에 지장을 주어서는 안 된다면 딱히 할 말은 없다.

그러나 생각해 보자. 내 자식만 돋보이려는 교육열 속에서 자란 아이들의 미래는 과연 어떻게 될까? 오직 나만 아는 아이로 자란 그들이 만들어갈 대한민국은 ‘한강의 기적’이 아니라 ‘한강의 악몽’이 되지는 않을까. 오늘날의 가족이 가족애를 강화시킨 대신에 이를 유지시키기 위해 이웃과 담을 쌓아버린 폐쇄적인 공간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날마다 아이들을 왕자와 공주처럼 입히고 먹여야 하는 아버지, 일류학교를 보내고 최고의 과외를 시켜야 하는 어머니, 그러한 부모의 기쁨의 원천이 되어야 하는 어린이, 가족은 이 세 꼭지점에 갇히고 말았다. 그래서 하늘같은 기대만큼이나 서로의 삶을 구속하고, 그 기대가 무너지면 모든 것이 함께 무너지고 만다.

이웃을 돌아보고 함께 걸어가는 교육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장거리를 뛰는 마라토너를 생각해보자. 선두를 달리는 것은 골인 지점에서 맞이하게 될 영광에 앞서 참으로 외롭다는 느낌이 클 수밖에 없다. 우리는 아이들을 남보다 뭔가 다르도록 내몰아가지만 사실 그 아이들은 외로운 레이스에 희생이 되고 있을 지도 모를 일이다.

1등으로 달리기 보다는 같이 함께 뛰어간다는 것에서 출발, 노력 끝에 최고가 됐을 때야 비로소 최고의 참다운 가치를 자신의 것으로 가질 수가 있다. 어린이날은 물론 가정의 달 5월을 이웃과 함께 나누는 그런 날들이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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