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의 욕망과 닮은 ‘분수’
결국 극점에서 꺾여 떨어진다
플라톤 ‘부족’ 안고가라 권유
‘문명의 욕심’ 질타한 호세 무히카
“욕망의 노예가 빈곤한 사람”
단칸방 가옥서 기거한 대통령
아랍 에미리트 사막 한 가운데 우뚝한 두바이의 명물은 828m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 부르즈 칼리파일 것이다. 그리고 인공호수 부르즈 칼리파의 분수쇼도 명물 가운데 하나다. 세계 최대 규모로 길이가 275m에 달하는 거대분수가 음악에 맞춰 물기둥을 152.4m까지 쏘아 올린다.
두바이 분수는 정말로 장관이다. 포말과 함께 건물 50층 높이로 물을 뿜어내는 에너지도 대단하다. 그러나 분수는 ‘오를 수 있는 그 지점에서 언제나 승복하여 주저 않는 물줄기’라고 어느 시인이 노래했다. 기기묘묘한 연출일지라도 한 순간 스치는 눈의 쾌락일 뿐, 치솟던 물보라는 공중의 어느 극점에서 꺾이어 떨어지고 만다.
플라톤은 인생의 5가지 행복을 이렇게 말했다. “먹고 입고 살고 싶은 수준에서 조금 부족한 듯한 재산. 모든 사람이 칭찬하기에는 약간 부족한 용모. 스스로 자만하는 만큼에서 절반정도의 명예. 세 사람과 겨루어서 한사람을 이길 정도의 체력. 강연을 했을 때 청중 절반 정도의 박수를 받을 수 있는 말솜씨.”
객관적 입장에서는 외모·재산·능력·명예까지 완벽하게 갖춘 사람이 혹 있을 수 있더라도 풍족하고 완벽한 채움에서가 아니라 부족하고 모자란 상태를 행복의 조건으로 내세우고 있는 철학자의 통찰에 미소가 떠올랐다. 사람은 욕망이 멈추지 않는 한 내면의 욕구 때문에 불행을 자초하며 사는 존재다. 근심·불안·걱정으로 팽팽히 긴장하여 어느 선까지 오르지만 필연적으로 꺾이어 주저 않고 만다.
조금씩 모자라더라도 그 부족을 안고 가라는 플라톤의 권유가 새삼 반가웠다. 허욕과 사치가 일상으로 자리 잡아 소비 지상주의에 함몰돼 가는 근심스러운 세상이기 때문이다.
남미에서는 부자나라, 축구 강국이기도 한 우루과이 전직 대통령 호세 무히카씨는 2012년 6월 유엔의 ‘지속 가능 발전 정상회의’에서 의미심장한 발언을 했다. “인간은 개발을 위해 태어난 게 아니라 행복을 위해 태어났다. 현재 잘사는 나라의 소비 모델을 따라간다면 지구가 3개나 더 필요할 것이다. 빈곤한 사람이란 조금만 가진 자가 아니라 끝없는 욕망의 노예가 되어 만족을 모르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시장경제가 신이 되어 인간을 통제하는 사회는 희망이 없다. 인류는 합심하여 무한 소비 위주의 생활 형태를 바꾸지 않으면 안된다. 정치가 이를 해결하려는 위기의식을 가져야만 한다. 개발과 발전이 인간의 행복에 방해가 된다면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사실 정치야 말로 인간의 제도 중에 가장 우위에 있다. 정치가 비틀거리는 국가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
2400년 전에 살았던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의 행복 지침서가 문명의 극점을 달리고 있는 현대 사회의 무히카 대통령의 발언과 겹치는 아침은 내게 신선한 위안이 되었다. 역사 속에는 만족을 모르는 인간의 욕구에 경종을 울리던 현자와 석학들이 적지 않았지만 엄청난 진보를 이루어낸 문명에도 불구하고 미래는 밝아 보이지 않는다.
소비를 끝도 없이 부추기는 사회, 소비가 멈추면 경제가 마비되고, 경제가 마비되면 불황이라는 괴물이 우리 앞에 나타나는, 그렇기 때문에 상품의 수명을 단축시켜서라도 소비를 창출해내려는 시장 경제의 악순환 속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이다. 이 모순을 뒤엎겠다고 나서는 극좌파의 선동은 그럴듯하지만 그 이념으로 성공한 나라는 이 지상에 아직은 없다.
전 고려대 총학생회장으로 주사파의 선두에 섰던 이종철 씨는 최근 인터뷰에서 “이념이 화석화된다는 건 무서운 일이며 혁명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정치적 도덕성”이라고 말했다. 무히카씨는 우루과이 군부 독재와 싸운 좌파 운동가였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실수와 패배로부터 배워야 한다고 선언하며 온건 노선을 택해 우루과이를 부강한 나라로 만들었다.
그뿐이 아니다. 자신의 급여의 90%를 빈민주택자금으로 기부하고 대통령궁은 노숙자 쉼터로 내주었다. 자기는 방 한 칸짜리 전통 가옥에서 28년을 타고 다닌 폭스바겐을 몰았다.
그의 별칭은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이다” 부럽기 그지없다. 세계가 존경해 마지않는 그의 노년이 평화롭기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