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의 융합된 문화 창조는 수 천년동안 동서양 각자의 나름대로 문화를 만들어 생활단위 별로 누려오다가 적극적으로 교류하기 시작 한 것은, 아마 르네상스 이후 계몽주의 학자들에서부터 동서양문화가 충돌되고, 그 과정에서 동양의 폭넓은 인간주의 문화와 서양의 합리성, 정직성문화가 하나로 융합된 문화가 창조되고 있는 것 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도 그 궤도를 벗어 날수 없는 게 당연한 것이다. 같은 동 아시아 권에서도 일본이나 중국보다는 가장 뒤늦게 서양 문명을 수용하였지만 , 현재는 외국 선진국보다도 더 산업화 문화를 열광적으로 수용하여 우리 사회의 미풍양속이었고 삶의 기본 가치인 충효사상이 잠식되고, 생활의 편리성과 낭비 없는 삶의 효율을 추구함에 따라 우리 삶의 문화가 급속히 변하고 있다.
한 예로 부모님의 노인성 병으로 다른 사람의 간호나 돌봄이 필요할 시는 유료양로원으로 보내어지고 있다.
나는 어제 저녁 지인인 언론인과 30대 주부와 저녁식사를 하였다, 식사 중에 우연히 노부모를 유료양로원으로 보내지는 것에 대하여, 젊은 부인은 지금은 과거의 농경사회가 아니고 시시각각 빠른 템포로 움직이는 산업사회인데, 누가 24시간 부모 요양을 하느냐, 당연히 양로원으로 보내어 져야 한다는 의견이었다.
나는 대체적으로 수긍하면서도 옛날 우리나라 고려장을 생각하면서… 나도 이제 나이 60인데 생의 마무리를 어떻게 해야 하나? 인력으로 되는 것도 아니고, 나도 사회문화가 변하는 그 길로 달려가고 있는데…라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웠다.
우리 집안에도 80이 넘으신 숙모님 벌 되는 친족이 제주시 정실동에 있는 “우지원”이라는 양로원에 입원하고 있어서, 아내와 같이 문안 인사차 다녀온 기억이 떠오른다. 요양소에 가보니 무료요양원과 유료 요양원이 나란히 한 울타리 안에서 운영되고 있었다. 무료 양로원은 자식이 없는 노인들이라고 한다. 나는 친족이 있는 유료양로원에 가기위해 무료양로원을 지나쳐 가면서 입원한 무료양로원 노인들을 보았다. 모두 건강하게 보였다. 그러나 유로 양로원에 가서 보니 거의 노인들은 환자들이었다.
입원실에 찾아 갔는데 직원들이 입원 환자들에게 알약을 먹이고 있었다. 뭐냐고 물어보니까 진통제 약이란다. 나는 또 한번 가슴 속으로 울지 않을 수 없었다. “인생의 말로는 이런 것이구나. ” …노력으로 어쩔 수 없는 것을 … 여러 노인들을 보면서 나의 가슴과 마음에는 만감이 스쳤다.
나는 아내와 같이 가슴앓이를 하면서 , 아아! 이것이 현대판 고려장이 구나 하는 생각에 미치게 되었다. 인생의 종착역은 고행의 역이라 생각하며, 이 역을 고행으로 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아내와 나는 입원한 친족이 몸을 주물러드릴 여고 하는데, 하지 못하고 한참 말을 잃고 멍하니 서 있는 자신들을 한참 후에 알았다.
우리부모님들의 세대에는 전통적 미풍양속으로 내려오는 효도문화는 윗사람을 중심으로 생활하였고, 삶의 근본이었다. 이 문화가 산업사회의 급속한 변화의 물결에 휩쓸려 사라져가고, 먼 옛날, 고려시대 행하여지던 고려장 문화로 거슬러 가는 것만 같아서 마음이 어둡고 무거웠다.
고려시대에 행해지던 고려장이 없어지게 된 기로전설(棄老傳說)에 의하면, 70세 된 노인을 풍습지대로 지계에 지고 산중에 버리고 돌아오는데 , 함께 갔던 손자가 그 지계를 다시 가져오려고 하자 아버지가 그 이유를 물으니 , 아버지도 70세가 되면 이 지계로 지어 와서 버리겠다는 것이다. 이 말을 들은 아버지는 느끼는 바가 있어, 다시 아버지를 지계에 지고 집에 돌아와서 공양 하였으며 이후로 노인을 내다 버리는 풍습이 없어졌다고 전한다. 이 말은 어디까지나 전설이다. 그리고 젊은이의 깨달음으로 해결 될 일이 아닌 것만 같아서 더욱 안타깝다. 이유는 부모에게만 신경 쓰면서 살 수 없는 이 세상이 문제인 것이다.
세상이 급변하고 있다. 부모님 공양도. 장례문화도, 제사 의식도, 그 형태가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수명도 길어 졌다. 2020년대이면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15%를 넘는다는 것이다. 우리사회는 고령사회로 진입하고 있는 것이다. 국가적으로 죽음의 문화에 대하여 전반적으로 연구와 투자가 있어야 할 것 것이다. 젊었을 때 자신들이 재원을 부담하는 “가칭-노인요양(임종)보험법“ 같은 법을 재정해서라도 인생의 마지막으로 가는 길목에서, 있는 자와 떠나는 자 모두가 해어질 때만이라도 슬픔을 덜어야만 할 것 같다. 그리고 부모를 공양하는 자식들의 입장에서도 자신들도 멋진 삶과 멋진 죽음을 위해서는, 슬픔을 뒤로하고 초연히 가시도록 하는데 인색하지 않아야 한다. 이것은 후대의 맑은 사회가 되는 기초과제이며. 자기 자신의 마음의 행복해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김 찬 집<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