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독한 황사에 덮여 쾌청한 하늘 한 번 보기 힘든 요즘, 웬일로 한 발 일찍 찾아온 봄날이 또 새로운 변덕을 부리나싶다. 그러다 문득 모래바람 뒤로 햇빛이 보이는 날이면 사람들은 쏟아져 나와 쫓기듯 봄을 즐긴다.
지겨운 겨울이 가고 마침내 찾아온 봄을 제대로 즐기지 못해 답답한 마음은 모두들 매한가지인 모양이다. 이렇듯 아껴놓은 간식마냥 소중한 이 계절이 어쩌면 가장 위험한 계절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얼마나 명심하고 있을까?
제주 시민들에겐 한라산과 오름처럼 즐거운 봄 소풍 장소가 없을 것이다. 산뜻해진 날씨만큼 가벼운 마음으로 너도나도 산으로 향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산의 입장에선 이들만큼 두려운 존재도 없을 것이다.
전열기구 등 누전으로 인한 실내화재가 대부분인 겨울철과 달리 봄철 화재는 산과 야초지에서 많이 발생한다.
게다가 1년 중 순간의 실수로 인한 화재가 가장 잦은 것도 봄철임을 고려하면 생동하는 새싹을 태우는 실질적 원인은 봄을 즐기러 나온 시민들의 가벼운 마음 때문인 셈이다.
귀로는 들어 알면서도 해마다 산과 들이 타오르는 것을 멈추지 못하는 것을 보면 많은 사람들이 들은 만큼 실감하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해마다 추위가 가실 즈음이면 봄꽃만큼이나 다양한 불조심·안전사고 예방 포스터가 눈에 띈다.
햇살에 취해있자면 잔소리 같은 경계심은 아무렴 어떤가 싶고, 이리저리 나부끼는 포스터도 정물처럼 보일 것이다. 하지만 명심해야 한다. 작은 경각심이지만 지겹다고 한 편에 치워두는 순간 무서운 불씨가 돼 당신의 봄을 불쏘시개로 만들어 버릴 수 있음을 말이다.
사소한 것을 사소하게 여기지 않을 때 당신의 봄은 비로소 안전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