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눈물과 회한의 임진왜란 기록
무능한 왕조·國論 분열 주원인
결국 피해는 백성들 몫으로…
오늘 우리의 상황과 매우 흡사
나라 위기인데도 政爭 일삼아
‘징비록 교훈’ 올바로 되새겨야
‘징비록(懲毖錄)’은 서애(西厓) 류성룡이 임진왜란 7년을 온몸으로 겪은 후 눈물과 회한으로 쓴 전란(戰亂)의 기록이다. ‘징비’란 책 제목에서 보듯이 ‘미리 경계하여 환란을 막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후세에 전하고자 집필했다.
임진왜란 당시 국정 최고의 요직에 있으면서 전란의 현장에서 백척간두(百尺竿頭)의 조선을 이끌었던 류성룡. ‘징비록’의 첫 장을 보면 수많은 인명을 앗아가고 비옥한 강토를 피폐하게 만든 참혹했던 전화(戰禍)를 회고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다시는 이 같은 전란을 겪지 않도록 지난날 있었던 조정의 여러 실책들을 반성하며 앞날에 대비할 것을 당부한다.
‘징비록’에는 전황에 대한 경과뿐만 아니라 전란 발생의 원인과 조정의 대응에서 드러난 문제점도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전란의 조짐은 이미 감지되고 있었으나 조선은 명나라의 심기불편 등을 우려하여 파장 축소에만 초점을 맞췄다.
국란이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는데도 지배층 내부의 당파(黨派) 싸움으로 인해 조정의 국론은 분열되고 민심 또한 동요된다. 그 결과는 너무나 뻔했다. 파죽지세(破竹之勢)의 왜군에 조선은 손 한번 제대로 못 써보고 당한 것이다.
하지만 그 와중에서도 류성룡은 인재 천거 등 나름의 계책을 마련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정읍현감이던 이순신을 전라좌수사에, 형조정랑 권율을 의주목사로 천거한 게 대표적이다. 그리고 이는 임진왜란을 극복하고 이겨낸 커다란 요인이 됐다.
류성룡은 한 나라의 지도자가 갖춰야할 조건을 두루 갖춘 인물이었다. 우선 국가의 안위를 살피는 ‘찰(察)’이 있었다. 유능한 인재를 적재적소에 중용하는 ‘배(配)’가 있었으며, 임금에게 충언하는 ‘간(諫)’과 주변 사람들에게 믿음을 주는 ‘신(信)’이 있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사망으로 7년간의 길고도 힘든 전쟁은 끝났다. 허나 공허한 승리 뒤에 남은 것은 폐허로 변한 금수강산과 온갖 상처로 얼룩진 처참함 뿐이었다.
이에 류성룡은 “어지러운 난리를 겪을 때 중요한 책임을 맡아서, 그 위태로운 판국을 바로잡지도 못하고 넘어지는 형세를 붙들지도 못하였다”고 눈물과 회한으로 스스로를 책망하며 ‘징비록’을 남긴다.
그러나 그의 간곡한 경고에도 근본적인 원인을 치유하지 못한 조선은 또다시 청나라의 침략에 힘없이 무릎을 꿇고 만다. 인조가 청나라에 굴욕적인 항복을 한 1637년은 임진왜란이 막을 내린 지 40여년, 류성룡이 세상을 떠난 지 30년이 되는 해였다.
오늘 우리나라가 처한 상황은 어떤가. ‘징비록’ 속의 조선과 빼닮았다고 하면 지나친 비약이라고 할런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를 둘러싼 환경을 둘러보자. 대외적으론 북핵(北核)을 머리에 이고 있는 가운데 미?일?중 등 강대국의 힘겨루기에 이리저리 눈치만 살피고 있다.
대내적으론 더욱 복잡 다단하다. 지난해 ‘세월호 참사(慘事)’ 이후 국론은 분열되다시피 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내세운 ‘국가 개조론’은 허울 좋은 구호로 끝나버렸고, 공무원연금개혁 등 각종 개혁(改革)은 더 이상의 진척 없이 지지부진한 상태다.
최근 들어선 ‘성완종 리스트’에 정치권은 물론 온 나라가 시끄럽다. 정치가, 나라가 위기인데도 여?야는 자성과 근원적인 대책 마련은 커녕 정쟁(政爭)에만 몰두한 채 제살길 찾기에만 여념이 없다.
지금 우리들을 분노케 하는 것은 다른데 있지 않다. 아무리 상황이 어렵더라도 국민들에게 희망을 줘야 하는 게 정부와 정치권의 의무이자 도리다. 그러나 누구 하나 책임지고 나서는 이가 없다.
류성룡의 ‘징비록’에는 왜란을 맞아 몽진(蒙塵, 임금의 피난)하는 왕조에 대한 백성의 적대감, 난리 통에도 사회지도층의 의무를 외면한 양반층, 그리고 대안을 둘러싼 조정의 갈등 등이 적나라하게 그려져 있다. 과연 지금의 우리 상황과 무엇이 다른가. 오죽하면 이완구 총리가 물러나는 것보다 그 이후 국무총리에 오르거나 나설 사람이 있을 것인가 걱정 아닌 걱정을 하고 있는 것이 이 나라의 국민들이다.
썩은 환부(患部)는 깨끗하게 도려내야 새 살이 돋는다. 그런데 그 썩은 환부를 도려낼 의사를 찾는 일이 마뜩치 않다는 게 우리 대한민국의 가장 큰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