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하얀 천에 ‘알록달록’ 색깔을 수놓다
새하얀 천에 ‘알록달록’ 색깔을 수놓다
  • 윤승빈 기자
  • 승인 2015.04.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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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의 기쁨' 취미 세계
<5>천연염색
▲ 동호회 맏언니 이미애씨가 붓을 사용해 옷감에 물을 들이고 있다.

새하얀 천을 감물이 채워진 대야에 넣는다. 감물을 입힌 천을 꺼내 펼친 뒤 문양을 잡을 부분을 접는다. 문양은 줄무늬, 꽃 등 다양하다. 붓이나 주사기를 이용해 천 문양에 노란 염료를 바른다. 천 나머지 부분은 다른 색깔의 염료로 물들인다.

이것으로 옷감 염색 1차 공정이 끝났다. 염색한 옷감은 빨래 널 듯 줄에 걸어 햇볕에 말린다. 옷감이 마르면 솥에 찐다. 마지막으로 물에 세척해 이물질을 제거하면 하얀천이 알록달록 형형색색의 옷감으로 재탄생한다.

지난 11일 오전 10시 제주시 노형동의 한 창고. 제주천연염색동호회(회장 김순란)의 천연 염색 작업 현장을 찾았다. 2011년에 구성된 제주천연염색동호회는 도내 유일의 천연염색 관련 동호회다.

회원들은 모두 제주관광문화산업진흥원의 ‘천연염색 교육과정’을 수료한 이들로, 취미로 염색을 즐기는 회원부터 옷가게, 이불가게 등을 운영하는 회원들로 구성됐다.

이날은 이런 회원들이 한 달에 한번 모여 서로의 염색 노하우를 공유하는 날이다.

▲ 김효열씨(사진 왼쪽 네번째)가 회원들에게 주사기 기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전체 회원 45명 중 30여명이 참여한 이날 염색 작업은 김효열(60·여)씨가 주도했다. 김씨는 천연 재료로 염료를 만드는 법과 ‘주사기 기법’의 염색 노하우를 회원들에게 선보였다.

천연염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염료 만들기’다. 염료는 분말형태의 천연 재료를 물 또는 알코올에 넣고 끓여 만든다. 재료의 배합에 따라 염료의 색 농도 등이 달라지기 때문에 세심한 주의력이 요구된다.

회원들은 김씨의 지시에 따라 솥에 불을 지피고, 염료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날 사용된 염료 재료는 치자(노랑), 감(주황), 쪽(파랑), 찹쌀풀(연보라), 락(빨강·락크패각충이 배출하는 물질) 등 모두 5가지. 재료는 회비(1만원)를 걷어 마련한다.

회원들은 노란 염료를 보며 만족스럽다는 표정을 짓는가 하면, 파란 염료를 국자로 한번 떠보더니 고개를 갸우뚱하며 분말을 추가로 넣었다. 분말을 더 넣을수록 염료의 색은 진해지고 걸쭉해졌다.

김씨는 플라스틱 주사기에 염료를 담아 천에 색을 입히기 시작했다. “화려한 색을 좋아하면 많이, 수수한 색을 좋아하면 조금씩… ”이라고 상세하게 설명한다.

김씨는 “연한 색에서 진한 순으로 염료를 입혀야 완성 됐을 때 예쁘다”며 “주사기 기법을 이용하면 염색 작업을 편하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회원들은 원하는 색의 염료를 골라, 자신의 천을 물들였다. 동호회 가입 1년차 조은숙(49·여)씨는 아직 주사기 기법이 익숙치 않은 듯, 평소 사용하는 붓을 사용했다.

조씨는 “천연염색에 관심이 많았는데, 주먹구구식으로 배우다가 지난해부터 동호회에 가입해 활동하고 있다”며 “감물만 들일 줄 알았던 나에게 발전의 기회가 됐다”고 자랑했다.

회원들이 염료가 칠해진 천을 햇볕에 말리고, 찐 뒤 물로 세척하고 나니 예쁜 빛깔의 옷감이 됐다. 회원들은 옷감을 이리저리 살피며 뿌듯해 한다. 스카프, 원피스, 티셔츠 등 다양한 의류를 만들 기대에 벌써 설레는 모습을 보였다.

동호회의 맏언니 이미애(62·여)씨는 “염색이 생각했던 것보다 만족스럽다”며 “이 옷감으로 원피스를 만들어 올 여름에 입고 다닐 것”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이씨와 같이 ‘자신만의 의류’를 만든 회원들은 일 년에 한번 전시회를 열어 각자의 실력을 뽐내기도 한다.

▲제주천연염색동호회원들이 작업을 끝낸 후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김순란 제주천연염색동호회 회장

"제주 천연염색재료 관광상품화 추진"

▲동호회는 어떻게 해서 만들어졌나
=천연염색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을 위해 제주관광문화산업진흥원이 교육 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강의가 끝나도 수료생들 대부분은 천연염색에 대해 더 배우고 싶어 하는 마음이 강했다. 하지만 강사를 초빙하는데 있어서 금전적인 문제에 부딪혔다.
이에 대한 해법으로 1~3기 수료생들이 모여 서로 알고 있는 염색 기술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이 모임이 점차 커져 동호회가 된 것이다.
▲가입조건이 까다로운데.
=물론 까다롭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전문가’들이 모여 기술을 공유하는 자리다. 취미로 천연염색을 배우는 회원들도 있지만, 염색 전문 직업을 갖고 있는 회원들도 있다.
기술 유출 방지를 위해서라도, 가입 조건을 까다롭게 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닫힌 동호회’라는 인식을 주지 않기 위해 수료생이 아니더라도 천연염색에 이해도가 높은 사람들을 회원으로 받기도 한다.
▲천연염색의 매력은 뭔가.
=천연 염료를 이용한 염색은 손이 많이 간다. 자신이 원하는 색을 얻기 위해서는 염료 배합과정에서 재료의 양을 조절할 줄 아는 섬세함이 필요하다. 여기서 시행착오가 많이 발생한다.
하지만 시행착오 끝에 옷감 염색이 완료되면, 곧 자신만의 ‘레시피’가 된다. 또, 자신이 염색한 옷감으로 직접 옷을 지어 입을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앞으로 포부는.
=염색으로 ‘제주’를 알리는 일을 하고 싶다. 제주 사람이라면 다들 ‘감옷’을 알 것이다. 제주는 ‘떙감’으로 감물을 들이는데, 벌레가 꼬이지 않고 땀 냄새도 잘 배이지 않는다.
이런 제주만의 천연염색 재료를 관광 상품화하기 위한 천연염색협회 창립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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