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도 안타깝고 무기력한 1년
그러나 아무것도 달리진 게 없다
국가 대응 능력 이래도 되나
그나마 유족 어루만져준 교황
세월호 참사 사회적 고립 안돼
치유에 국민 참여 필요
세월호 참사로 304명의 고귀한 생명이 수장되는 장면을, 국민들은 손 한 번 제대로 써보지 못한 채 발을 동동 구르며 지켜봐야 했다. 학생의 최초 신고로부터 배가 침몰하기까지 88분 동안. 그리고 생존 가능성이 있는 72시간 동안 무기력과 우왕좌왕 그대로였다.
아이들이 죽어갈 때 언론은 확인도 안 된 발표를 그대로 내보내 국민들에게 신뢰를 잃었다. 그러는 사이 304명의 고귀한 생명들은 배 속에 갇힌 채 숨져갔다. 선박 내부 수색으로는 단 1명의 목숨도 살리지 못했다.
가족들과 국민의 마음은 팽목항을 떠날 수 없다. 아직은 하나의 기억으로 머물러서는 결코 안 될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안타깝고 무기력했던 1년, 그러나 아무 것도 달라진 것이 없다.
국가가 사고 대응에 이렇게 무기력해도 되는 것일까. 크레인선이 세월호 침몰 속도를 늦출 수 있었는데도 승인이 나지 않아 움직이지 못했다. 미군 함정이 구조 헬기를 보냈지만 승인을 하지 않아 되돌아갔다.
또 ‘언딘’이라는 기업이 UDT와 같은 군 정예요원의 구조작업보다도 먼저였다. 그리고 얼빠진 상황 대응으로 국민들의 공분을 사기도 했다. 119상황실은 “유관기관들이 팽목항으로 집결하고 있다”며 “구조한 사람들을 그곳으로 보내라”고 요구했다가 “지금 사람을 구조하는 게 급선무이고 배는 침몰했다. 구조하는 게 우선이기 때문에 가까운 섬에 내려놓고 구조하러 가야 한다”는 해경의 항의를 받기도 했다.
세월호 참사 과정은 ‘보도 참사’이기도 하다. 탑승자 수와 구조자 수가 여러 차례 바뀌고 피해자 가족들을 비난하고 훈계하는 보도, 시선 돌리기 보도 행태가 자행되었다. ‘대대적인 수색’ ‘잠수인력 500여 명 투입’ 등 정부가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부풀림을 그대로 국민에게 알렸다.
KBS 내부에서는 신입 기자들 30여 명이 사내 망에 “현장에서 KBS 기자는 ‘기레기(속어·기자+쓰레기)’ 중의 기레기입니다”라며 자괴했다. MBC 기자들도 “참담하고 부끄럽다”고 고개를 숙였다. 대학 교수들은 ‘슬픔을 안고 공동체 회복의 실천으로’라는 성명서에서 “침몰하는 세월호에서 우리가 목격한 것은 국가라는 제도와 책임의식이라는 윤리와 양심의 침몰이었다.”고 눈물을 흘렸다.
세월호 참사의 아픔을 어루만져준 것은 8월14일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이었다. 교황은 노란 리본을 달고 유가족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었다. 미사에서는 세월호 참사를 언급하며 유가족을 위로했다.
교황이 한국을 떠나며 말한 “세월호 유족의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 없었다”라는 말은 우리들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중립을 지킬 수 없었다’라는 말에는 ‘고통과의 만남이냐, 외면이냐’의 갈등이 많았음을, 아니 갈등하게 만들었음을 의미하는 말이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모른 체 외면하게 하려는 시도가 얼마나 부끄러운 짓인가를 알아야 한다.
국민들을 분노케 한 것은 사고가 인재, 참사로 이어지는 과정이다.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 부풀린 발표, 언론의 무검증 속보 경쟁이 우리들을 더욱 분노케 했다. 우리들은 이번 사건을 찬찬히 되짚어 봐야 한다. 어느 외국 기자가 한국에서 대형사고가 나면 “장관만 바뀌고 문제는 남더라”라는 말처럼, 진실이 두려운 병든 사회가 되어서는 결코 안 된다.
유족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잊혀지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가 사회적으로 고립되어서는 결코 안 된다. 그건 치유가 아니라 더 큰 상처로 우리들 앞에 또 다시 나타날 수 있다. 우리 스스로 상처와 고통을 치유하는 길은 ‘이 슬픔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슬픔은 안고 가야한다. 외면하려 할수록 발을 빼려 할수록 그 상처는 언젠가 우리들 가슴을 향한 화살이 되어 돌아올 것이다.
우리 모두 어머니의 심정으로 돌아가 유가족들의 몸부림이 헛된 기다림만은 아니었음을 약속하자. 그들의 삶을 나의 삶처럼 깊이 나눌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