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빔밥’ 그 조화의 맛과 멋
‘비빔밥’ 그 조화의 맛과 멋
  • 이종일
  • 승인 2015.04.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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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재료 수용하는 큰 그릇됨
고추장 매개로 조화로운 맛 연출
공연도 ‘비빔밥’ 서로 존중·조화

자신만 우선하는 은밀한 소통
화창한 봄날의 ‘황사’처럼 갑갑
비로 먼지 씻어낸 봄날 고대


어느덧 4월, 봄의 한복판이다. 제주에서 시작된 꽃물결이 전국을 뒤덮었다. 산으로 들와 꽃구경을 떠나고 덩달아 입도 호강한다. 봄 음식은 단연 신선한 재료로 조리된 것들이 주인공이다. 햇볕에서 막 속아낸 야채와 푸른 바다에서 건져 올린 해산물은 생기 넘치게 만든다. 그 중에도 비빔밥이라는 형식을 통해 구현된 각종 비빔밥은 봄에 제격이다.

해외 공연 등으로 장시간의 비행기 여행이 잦은 필자로선 기내에서 제공되는 음식을 자주 접하게 된다. 기내식 메뉴 중 국내 항공사에서만 만날 수 있는 비빔밥은 단비와도 같다. 어느 항공사나 패스트푸드처럼 대동소이해 보이는 식단에서 비빔밥의 매력은 재료의 신선함이다. 어떤 형태의 비빔밥이든 야채가 들어가고, 어떠한 야채든 생으로 넣든 데쳐서 넣든 식감이 상큼하다.

그리고 비빔밥에는 마치 고향과 같은 우리만의 ‘정’이 녹아 있다. 그래서 이 땅을 떠나면서 당분간 자주 맛보지 못할 우리 맛에 대한 아쉬움으로, 돌아오면서는 그리웠던 우리의 맛을 되찾는 즐거움에 항공기 좌석에 앉아 열심히 비빈다. 어느새 기내는 참기름과 고추장이 어우러져내는 향기로 가득하고 입가엔 침이 고인다.

우리에게는 참으로 많은 비빔밥이 존재한다. 지방의 특색을 딴 전주비빔밥, 해주비빔밥, 통영비빔밥, 진주비빔밥 등 고장마다 특징을 자랑한다. 재료에 따른 분류도 다양해서 육회, 콩나물, 새싹, 멍게, 성게비빔밥, 그리고 회덮밥, 헛제사밥 돌솥비빔밥 등 무궁무진하다.

비빔밥에도 또한 우리 민족의 창의성이 엿보인다. 하나의 재료로 하나의 음식 만들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재료를 섞어 전혀 ‘새로운’ 음식을 탄생시킨 것이다. 육류하면 스테이크만 떠오르는 서양의 레시피와 달리 우리는 갈비 등 구이에서 탕, 찌개, 심지어 잘게 썰어 육회비빔밥을 하기도 하고, 아니면 볶아서 먹기도 한다.

특히 비빔밥은 거의 모든 재료를 가리지 않고 수용하는 이 형식의 큰 그릇됨에 새삼 놀랍다. 나른한 오후 냉장고에 남아있는 반찬을 모아 커다란 양푼에 담고 고추장에 비벼 숟가락 하나씩 둘러앉아 먹는 풍경은 우리 민족의 정서를 대변한다. 예전에 어떤 분이 비빔밥에 대해 논하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한 가지 메뉴를 시종일관 먹는 것은 너무도 단순하고 다양성이 떨어진다는 지론을 토로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개성 넘치는 각자의 재료들이 고추장을 매개체로 조화로운 맛을 연출하는 것이다.

공연 행위도 비빔밥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개성 넘치는 각 분야의 전문 스태프들과 출연진들이 무대라는 큰 그릇에 모여 조화를 이루면서 감동의 맛을 창출해내는 형식이 닮은꼴이다. 어느 한 분야의 재료가 넘치거나 모자라도 제 맛을 내기 힘든 것처럼 자신의 분수를 지키며 서로를 존중하는 무대 작업이 진정한 비빔밥의 효과를 낼 수 있는 것이다.

연출은 비빔밥의 고추장 같이 여러 분야의 입장을 조율하고 뒷바라지 하는 일이다. 결코 자기가 우선이 되고 나서려 하면 재료의 특성이 뭉개지고 고추장 맛만 남게 되는 것이다.

비빔밥이 주는 교훈이 어찌 공연뿐이겠는가! 세월호의 참사가 일어난 일도 벌써 1년이 되었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각종 안전사고가 이어지고 있다.

안전의 최대 적은 무관심이다. 그리고 불통이다. 기술적 결함이나 불가항력적인 사고도 평소 소통하고 관심 갖는다면 예방할 수 있고 피해 또한 최소화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 정부나 사회는 서로에게 무관심하고 소통하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자신의 주변에만 관심이 집중되고 이익을 우선으로 하는 은밀한 소통이 만연해 있는 지금의 모습은 화창한 봄날의 황사처럼 갑갑하고 답답하다. 봄비가 한바탕 내리고 바람이 불어 먼지를 날리고 쾌청한 봄을 맞이하길 고대한다. 1년 전 그 아이들이 무사히 제주도에 도착했더라면 초록의 한라산을 등지고 푸른 바다를 마주하며 바다 향 가득한 미역국에 해초 비빔밥이나 성게 비빔밥을 먹을 수 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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