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폐 가치·국내 물가 상승 탓 해외 ‘싹쓸이 쇼핑’
인민폐 가치·국내 물가 상승 탓 해외 ‘싹쓸이 쇼핑’
  • 제주매일
  • 승인 2015.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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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호동의 차이나스토리
<7>절대적 위력의 인민폐

중국인들의 돈 ‘인민폐’의 위력이 정말 대단하다. 대한민국 번화한 곳이면 어디를 가도 넘쳐나는 중국인 쇼핑객들을 보는 것도 일상이 된지 오래다. 중국인들의 왕성한 소비가 보탬이 된다는 느낌도 들지만 뭔가 묵직한 감을 떨칠 수 없는 것은 갑자기 커져 버린 위세가 부담스럽기도 탓이다.

그런데 아직 한국에 와 보지도 않은 엄청난 중국 인구를 생각해 보면 이 기세가 이제 시작에 불과한지라, 마음의 준비 단단히 하고 ‘대를 이을’ 오랜 장사를 준비해야 할 듯도 하다. 중국인들에게는 과연 어떤 변화 속에서 무슨 일이 있어났던 것일까? 문을 닫고 조용히 살던 사람들이 갑자기 세상 밖으로 쏟아져 나와 모든 것을 다 사 들이려 하는 듯 한 최근의 분위기다. 불과 20여년 전과는 달라도 너무도 달라진 중국이다.

1988년 한국이 올림픽이라는 큰 행사를 치르느라 분주했던 그 해, 중국인들은 유래가 없던 물건 사 재기로 한 동안 법석을 치렀다. 오랫동안 국가가 인민들에게 저가로 일용품을 공급하던 배급식 제도를 폐지하고 수요공급에 따른 시장의 원리로 물가가 책정되는 새로운 정책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물가가 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 상하이 같은 대도시에서 생필품 가격이 20~30%씩 급등하기 시작하니, 돈 있는 사람들은 물론 여유 없는 사람들도 그들대로 소형가전 제품에서 일용품까지 무차별 구입하는 소동이 한 바탕 벌어졌다. 소금이며 간장에 성냥까지 족히 1년 이상은 쓸 수 있는 양의 물건들을 구입하는 상황이라 은행마다 예금을 인출하는 사람들로 넘쳐 났다.

배급제식 구매 제도가 완전히 폐지된 때가 1993년이니 불과 20여년 사이에 중국인들은 거대한 나라를 완전히 바꿔놓아 버렸다. ‘짧은 시간’의 변화치고는 정말 크고 주변 국가들까지 미치는 영향력도 엄청 커졌다. 배급제 시절의 ‘피아오(票)’ 이후 정말 힘이 세진 중국인들의 돈 이야기다.

국가가 직장을 안배하고 저렴하게 일용품을 공급하던 ‘표(票)의 시대’가 막을 내리자 중국인들은 모든 게 스스로에게 맡겨진 세상 속에 서게 됐다.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진 새로운 방식의 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자신들의 능력으로 일자리를 만들고 그 소득에 의해 살아가야 하는 자립의 시대에 서서 생존은 오로지 마오(毛澤東)가 모델인 화폐에 의지해야만 가능한 삶으로 변했다.

구원이자 구속이기도 했던 표가 없어진 세상이 되니 돈만 있으면 얼마든지 가지고 쌓고 누릴 수 있는 세상도 된 것이다. 갑자기 찾아온 듯한 이 변곡점이 바로 중국인들이 돈에 대해 유난히 집착하고 몰입하는 철학을 가지게 된 배경이 됐을 것이다.

그리고 모두 오로지 인민폐를 향해서 전진했다. 이 모든 것들이 지금 왕성한 소비력을 보이고 있는 40대 이상의 중국인들이 경험하며 살아 왔고 살아가는 시대다. 소비 의식의 변화와 배금의 가치관 등을 생성시킨 생활사이기도 하다. 표가 없어진 세상에서 돈은 절대 가치를 가지게 되었고, 얼마 후 중국인들의 돈은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중국인들이 지금처럼 해외에서 신나게 돈을 쓸 수 있는 시대가 이렇게 빨리 오리라고는 짐작하기 어려웠다.

1996년 베이징 생활을 시작할 무렵, 한국돈 100원 정도면 중국 돈 1위안을 맞바꿀 수 있었는데, 지금은 180원 이상을 주어야 1위안을 살 수 있다. 미국 달러에 대한 가치 역시 20년 사이 약 30%의 절상이 있었다. 중국 내에서는 인민폐의 실제적인 사용 가치가 물가 상승으로 인해 10년 전에 비해 약 50% 정도로 하락해 있지만 원화나 달러 외 기타 외환에 대비해서는 크게 가치가 올라간 것이다.

소득의 증대와 외화에 대한 인민폐 가치 상승에다가 국내 물가의 지속 상승이라는 요인들은 중국인들이 해외에서 거의 무차별 쇼핑을 하게 만드는 배경이 됐다. 장시간 불안하고 궁핍했던 사회 분위기 속에 억눌렸던 욕망을 자극하는 상승 매개들이 되어 과감한 소비 행위라는 결과를 만들어 낸 것이다. 시간이 갈수록 저축 잘하고 돈 쓰는데 어느 민족보다도 신중한 중국인들의 소비 의식도, 돈에 대한 가치도 많이 바뀌어졌다. 중국인들에게 있어 해외여행은 자신들의 화폐 가치를 체험하는 좋은 기회이고, 체험은 쉽사리 구매로 이어진다.

구매를 자극하는 다른 이유 하나로, 중국내에서 소비자로서의 중국인이 놓인 억울한 시장 상황이다. 세계의 공장이자 시장인 중국의 모순이다. 운동화든 핸드폰이든 중국에서 생산된 제품이 미국에서 판매되는 가격은 그리 높지 않은데, 이것이 다시 중국으로 역수출되면서 관세에 부가세․소비세까지 붙어 거의 2배로 가격 형성이 되는 것이다. 자국에서 만든 같은 제품이지만 해외에서는 훨씬 싼 글로벌 브랜드의 구매, 중국인들의 해외 소비를 자극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중국인들은 어느 새 ‘생산하는 노동자에서, 소비하는 도시민으로, 또 다시 세계시장의 소비 주역’으로 변모해 가면서 절제하지 않는 ‘지존의 구매력’ 만큼은 세계 곳곳에서 환영 받게 된다. 물론 국내에만 머무를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게는, 해외에서 인민폐 가치가 커지는 것과 관계없이 국내 물가는 계속 오르기만 하니 인민폐가 주는 양면성이 야속하고 해외로 가는 사람들을 보는 것이 배 아플 뿐이다. 아직 못 떠난 사람들이 해외로 가고 싶은 또 하나 이유이기도 하다.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인 중국과 그 화폐가 세계 시장에서 가지는 위상이 걸맞지 않다는 의견들도 많지만 한편에선 조만간 인민폐가 국제화폐로서 단단히 자리를 잡고 2030년경에는 세계인들이 투자하고 저축하는 가치를 가진 화폐로서의 위치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그렇다면 인민폐가 언젠가 가장 가까워진 제주에서 홍콩․마카오처럼 통용될지도 모를 일이고 그 가치 또한 높아진다 하니 경제적 관점에서 한껏 관심을 가져 볼만 하겠다. 아직 요원해 보이는 일로 보이기는 하지만 중국 인민폐와 미국 달러 간에 한 판 승부가 있을 것 같은 분위기도 있다. 지금부터라도 무엇이 이로운지 손해 보지 않도록 조심해 가며 관전할 일이다.

 

▲ 중국 투자자들이 주식 현황판 앞에 놓여있는 컴퓨터 모니터를 주시하고 있다. 표의 시대가 끝나면서 중국인들은 화폐에 의존해야만 삶이 가능한 현실 속에 놓이게 됐다. [연합뉴스 DB]

배급 구매제 폐지과정서 물가 급등

1970년대 이전 출생한 중국인들은 아직도 또렷이 식량을 비롯한 각종 일용품을 구매할 수 있는 ‘제2의화폐’로 불리기도 했던 ‘피아오(票)’에 의해 생활하던 시대를 기억한다. ‘피아오 제도’는 제한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분배함으로써 모두의 생활을 보장하고자 했던 일종의 인민 생존 전략이었다. 정부가 저렴하게 일괄 구입한 생필품들을 인민들이 다시 저렴하게 구매 할 수 있도록 한 정책이다.

표(票)가 없으면 양식을 구할 수 없었으니 어떤 의미에서는 돈보다 더 중요한 생명줄이었다. 식량(糧票)이나 식용유(油票)․계란과 고기 등 농축산물은 물론 옷감이며 비누․손목시계․재봉틀 등 공산품까지 수요에 맞춰진 각종 표들은 연령과 직업에 따라 100여 개 등급으로 나눠져 지급이 됐다.

표는 일상에서 과일과 채소에 가구나 신발까지 구매할 수 있는 교환 가치의 용도를 지니며 제2의화폐 역할을 하기도 했다. 집집마다 저울을 놓고 매끼 계량해서 밥을 지어 먹거나 멀리 남의 집을 갈 때도 양표(糧票)를 지참해야 했을 만큼 생활을 제한시키기도 했다.

중국의 개혁개방이 성과를 내기 시작한 1980년대 중반부터 배급과 배급외 자유 구매를 병행하는 과도기가 있었다. 1993년 들어 38년이나 지속돼 오던 표(票)의 제도는 완전히 폐지된다.

곤궁과 배급의 시대를 넘어 식량 자급률 100%를 달성, 14억 인구가 적어도 생존을 위한 걱정을 하지 않게 된 괄목할만한 발전과 자신감의 표현일 수도 있다. 배급표를 들고 길게 늘어선 줄이 혹시 내 앞에서 끊길까 걱정하며 양식이나 일용품 구입을 기다리던 인민들의 모습들이 1980년대부터 서서히 줄어들다가 결국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그러나 바로 이 시간들 속에서, 기회와 경쟁․자립․해고와 취업 등의 단어들이 중국인들의 생활 속 깊숙하게 자리잡으며 과거와는 다른 방식으로 살아야만 살아질 수 있는 새로운 삶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배급제식 구매제도를 폐지하고 새로운 경제체제가 도입되는 과정에서 물가의 급상승이라는 진통을 겪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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