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늑대다” 거짓말 장난 2번이나
주민들 ‘진짜’ 3번째 외침 외면
‘넉대’도 ‘늑대’로 오해 극단 처벌
제주도 보광그룹에 한번 당한 셈
또 국공유지 매입 추진 ‘의혹’ 자초
‘전력’ 때문 도민 외면당할 수도
양치기소년은 매일 양들이 풀을 뜯는 모습만 보고 있으려니 너무 무료했다. 돌멩이를 얼마나 멀리 던질 수 있는지 시험도 해보고 하늘의 구름 속에서 온갖 동물의 모습을 찾아보아도 무료함을 달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기발한’ 아이디어를 냈다. 늑대였다. 마을사람들의 ‘절실함’을 노렸다. 그들에게 양털과 우유, 즉 의식(衣食)을 제공하는 양들을 호시탐탐 노리는 늑대가 나타났다고 하면 만사를 제쳐두고 달려오리란 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그래서 외쳤다. “늑대다. 늑대다. 도와주세요.” 예상은 적중했다. 외침을 들은 마을 사람들이 쇠스랑과 몽둥이를 들고 달려왔다. 당연히 늑대는 없었다. 마을 사람들은 고약한 장난을 “다시는 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소년은 다시 “늑대다. 늑대다.” 외쳤고 마을 사람들은 달려왔다. 역시 늑대는 없었다.
문제는 다음날. 진짜로 늑대가 나타났다. 소년은 다급하게 소리를 질렀다. “늑대다. 늑대다.” 마을사람들은 “다시 놀리려 한다”며 소년의 외침을 외면했다. 결국 소년은 양들이 늑대에게 죽임을 당하는 모습을 지켜봐야만 했다.
이솝우화 ‘양치기 소년과 늑대’ 이야기다. 거짓말로 신뢰를 잃고 상대방의 절심함을 이용해 장난을 치다가 결국은 스스로의 꾀에 큰 봉변을 당한다는 교훈이다.
업그레이드 버전도 있다. 소년이 ‘반성문’을 쓰고 다시 양치기 일을 하다 “또 거짓말을 했다”는 이유로 맞아죽었다는 것이다.
늑대 거짓말로 혼이 난 소년은 다시 하늘을 보며 구름에서 동물 찾기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파란 하늘을 가르며 비행기 4대가 지나가는 것이 아닌가. 소년은 신이 나서 “넉대다. 넉대.”라고 외쳤다. 그런데 마을 사람들이 득달같이 달려온 것이다.
이번엔 소년이 억울한 상황이다. 단지 비행기가 ‘넉대’라고 외쳤을 뿐이었다. 하지만 소년의 거짓말 전력(前歷)이 화근이었다. 말과 행동을 조심해야 했다. 그런데 오얏나무 아래에선 갓끈을 매다 배 도둑으로 오해를 받았던 어느 선비처럼, 소년은 말을 조심하지 못해 화를 자초한 셈이다. 자신의 ‘전과’ 때문에 “넉대다”가 “늑대다”로 들릴 수 있음을 간과한 것이다. 업그레이드 버전의 교훈은 과거의 잘못이 현재의 정당한 행동의 발목을 잡을 수 도 있다는 점이다.
누구나 알고 있는 얘기를 주절주절한 것은 제주도에 ‘양치기 소년’으로 의심을 받고 있는 기업이 있기 때문이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 ㈜보광그룹의 자회사인 ㈜보광제주가 당사자다.
보광제주는 당초 2003~2011년 성산읍 섭지코지 일대 65만3851m²에 각종 해양관광시설을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당시 성산포해양관광단지 개발이 절실했던 제주도는 2006년8월 특혜의혹과 반대여론에도 불구, 보광제주에게 국공유지 15만7971m²를 매각해줬다.
그런데 보광제주는 계획과 달리 빌라형 콘도 등 숙박시설 위주로만 투자를 했다. 그리곤 지난해 3월 국공유지 2만9228m²가 포함된 미개발 토지 3만7829m²를 중국계 투자기업에 되팔아 46억여원의 시체차익을 챙겼다. 대기업의 ‘땅 장사’ 논란과 함께 도덕성에 큰 비난이 일었다.
그런데 최근 보광제주는 중국자본에 매각한 것과 비슷한 규모인 3만7850m² 매입을 골자로 하는 성산포해양관광단지 투자진흥지구 변경계획안을 제출, ‘양치기 소년’ 의혹을 자초했다. 특히 매입 대상 토지에는 또 국공유지 2만5200m²가 포함돼 있다.
“이거 무슨 수작인가?” “공유지 되팔아 큰 돈 벌어 재미 들였나? 다시 땅을 팔라니 무슨 소리냐?” 대다수 도민들의 시각이다. 보광제주는 “단 1번 뿐이었다”는 등 나름대로 할 말이 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도민들은 그것도 분하다. 제주도 제1의 절경인 섭지코지가 사유화되는 것도 모자라 중국자본에 넘어갔다고 개탄이다.
㈜보광에 양치기 소년의 교훈을 전한다. 업그레이드 버전에선 정당하게 “넉대다”고 외쳤음에도 “늑대다”로 오해를 받아 맞아죽었다. 전력(前歷)이 죄다. 반성하고 조심해야 한다. 언제 제주도민들이 ㈜보광제주를 외면하고 진실마저 오해할지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