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호국운동과 3·1정신
제주의 호국운동과 3·1정신
  • 제주매일
  • 승인 2015.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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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용해 제주특별자치도보훈청장

3월은 만물이 소생하듯 우리의 기운도 다시금 소생하는 달이다. 또한 3월은 나라의 운명과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사건들이 있다. 역사적인 3·1운동이 있고, 영원한 대한국인 안중근 의사의 순국일(3월 26일)이 있다.

1919년 일어난 3·1운동은 ‘대한민국’을 탄생시킨 날이었다. 고종황제의 국장일(3월3일)을 이틀 앞둔 날, 일제 치하에서 신음하던 동포들이 한 목소리로 대한독립만세를 외쳐 ‘민국’의 개념을 각인시켰고, 4월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돼 국호 ‘대한민국’을 탄생시켰다.

우리나라가 자랑스러운 것은, 이와 같은 숭고한 항일독립운동과 선열들이 있고, 그로부터 민주주의의 뿌리가 더욱 깊어졌기 때문이다.

당시 ‘물건너 땅’ 제주도에서도 국내 어느 곳 못지않게 항일독립운동이 활발했다. 1909년 기유의병항쟁으로부터 무오법정사항쟁, 조천독립만세운동, 해녀항일운동 등 항일독립운동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전국 대비 인구 비율이 1%이며 지리적으로 격리된 제주가 전국의 독립유공 포상자 1만3930명 가운데 161명이나 배출한 것은 놀라운 일이다.

또 6·25전쟁 때는 우리나라 호국인물 100인 중 4인이 탄생했을 정도로 제주도는 강한 호국정신을 보여줬다. 인천상륙작전과 서울수복작전 때는 제주의 청년학도들로만 구성된 3000명의 해병 3기와 4기가 중심 역할을 했다. 이렇게 많은 제주의 청년들이 최전선에 나가 싸워 나라를 지켜낸 일은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며, 제주인의 위업으로 길이 기록될 것이다.

올해 3·1절에 뵌 제주 유일의 생존 애국지사 강태선 선생은 아흔을 넘긴 연세(92세)에도 강고한 풍모였다. 제주의 대표적 6·25 전쟁영웅인 고 강승우 중위는 해방 직후 일본 유학파였던 강태선 선생이 돌아오자, 수시로 선생을 찾아 나라 도울 일과 신지식에 관해 토론을 벌였다 한다. 이러한 인연을 생각해 볼 때, 애국지사의 높은 뜻과 기상이 고스란히 애국청년 강승우에게 전해지고, 백마고지에서 영웅적으로 승화된 것으로 생각된다.

한말 이래 이렇게 제주인의 호국정신의 토양은 굳게 형성돼 왔다. 제주의 호국정신은 3·1운동 이후 일제시대와 6·25전쟁 시기를 관통해 오늘날까지 면면히 이어져 왔고, 앞으로도 한라의 높은 기상을 지닌 호국영웅의 후예들이 끊임없이 배출될 것이다. 이는 우선적으로 사람의 가치를 키우고자 하는 제주의 미래를 위해서도 커다란 희망이다.

한편 개인이나 국가나 남에게 감사할 줄 알아야 하고, 또 자기가 아픈 만큼 남의 아픔에도 슬퍼할 줄 알아야 한다. 나와 너 서로에게 정직하고, 세계에 정직하면 통할 것이다. 이것이 인륜이요, 도덕국가의 자격이다.

자기에게 정직하면 남을 설득할 수 있고, 제3자도 공감할 것이다. 최근 일본을 방문한 독일 메르켈 수상의 따끔한 충고와 비판은, 아직도 ‘왜구(倭寇)근성’을 벗지 못하고 있는 일본을 향한 선진 우방국가로서의 냉정하고도 준엄한 경고였다.

우리는 우선 내부로부터 강력한 도덕국가를 지향해야 한다. 국력이 비록 약할지라도, 늘 필요한 것은 도덕국가로서의 덕목이기 때문이다. 순국선열과 전사자, 애국지사와 국가유공자를 받들고, 그 유족과 해외의 참전용사들에게까지도 응당 위로와 감사를 보내야 할 도덕적 명분이 있다. 나라를 수호한 호국인물을 추앙하고 선양해야 할 명분도 존재한다.

주변 외세의 힘이 늘 존재하는 한, 일제침략과 6·25와 같은 국난이 언제 또 닥칠지 모른다. 도덕적으로 강한 나라가 되는 것 자체가 국력이 될 뿐더러, 선진국으로 가는 첩경이다. 이러한 도덕국가로서의 덕목을 실천하고 국력을 기르는 것이 바로 보훈이며, 이것이 3·1운동의 정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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