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동산 거대한 아치 세워져
공공미술 조형물의 ‘폭력적’ 사례
스케일 아닌 어울림의 문제 간과
재료도 아늑한 거리와 이질감
고유성 부족 지명에 집착한 ‘착오’
제작과정 논의?감독 필요성
웰링턴아치,마블아치, 이탈리아 여러 왕들이 축조한 다양한 개선문은 익숙한 아치 조형물을 대표한다. 영국의 웰링턴아치의 대리석 윗부분에는 전쟁에서 노획한 무기들을 녹여서 제작한 조형물이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통치자는 백성에게 이러한 이미지 강화를 통치방법으로 활용했다. 제국은 거대한 승전물로 거리를 채웠다. 그들의 문화는 스며들지 않고 드러내는 문화다.
우리의 정서로는 공간을 분할해 주기 위한 방법 정도의 기능으로 아치를 활용했다. 방어를 위한 성곽의 입구와 출구의 모습이 그러하다. 우리 시대의 아치조형물들은 대회 홍보나 군부대 진입로, 시장 진입로 등 구획을 설정하거나 알리는 문패 같은 역할을 해주었다.
서귀포 솔동산 진입로에 거대한 활모양의 아치가 올해 세워졌다. 공공미술이 지향하는 것은 ‘소통하는 삶’이다. 하지만 공공미술 조형물이 ‘폭력’이 될 수도 있다는 적절한 사례를 솔동산에서 보여준다.
서구의 문화처럼 광장문화가 존재하는 거리에서의 조형물은 넓은 곳에서도 잘 보이는 시각의 확보가 중요하다. 조형물이 작은 것은 어울림의 문제이지 스케일의 문제로 봐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그다지 크지 않아야 어울리는 거리가 서귀포 거리다. 압도하는 문화가 아니라 스며드는 친화적인 거리문화를 지향한다.
일본은 나무로 만든 다양한 풍토와 전통을 중요시 여겼다. 화산지형인 일본에서의 가시적인 영원함이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형의 전통을 더 중요하게 여겼던 이러한 풍토가 일본의 문화적인 힘이 됐다.
우리나라는 나무를 잘 다룸은 물론 그보다 돌과 흙을 빼어나게 잘 다루는 민족이다. 석공들이 돌을 매만졌던 거친 돌의 역사는 장대하다. 드러내고 압도하고 표현방식은 우리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거침없이 올라가는 고층건물이 낯설고 당황스러운 오늘의 현실에 솔동산 조형물로 이제는 ‘막 해도 되는 거리’가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사방으로 조화로워야 하는 것이 조형작품이다. 재료 그 고유의 감수성과 작품과 장소와의 특별한 어울림은 중요하다. 솔동산 조형물 재료는 아늑한 거리에 스며들 수 없는 이질감을 드러낸다. 심지어 커다란 덩치와는 상관없이 눈 안에 들어오지 않았다. 솔동산의 역사를 호전적으로 해석한 의미 이전에 최소한 조형성을 따랐어야 했다. 행복감을 느끼게 하지는 못할망정 불안감을 느끼게 해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대나무와 꽃가지로 얼기설기 엮어 만든 잔칫집 입구 아치는 20년 이전에는 제주에선 흔히 보는 정겨운 풍경이었다. 집 올래 돌담에 피어있는 꽃이나 잎을 따서 듬성듬성 꽃아 놓았던 대나무 장대다. 대나무 아치에서 흔들리는 신랑 신부의 이름 석 자는 바람에 흔들리면서도 집 올래 낮은 돌담과도 어울렸다.
덜하지도 더하지도 않은 조화다. 우리의 정서는 이렇게 우리의 자연물과 어우러졌을 때 마음을 움직이게 했다. 솔동산 공사 이후 입구에 앉아있던 돌하르방 역시 흔적을 찾을 수 없다. 거리의 아름드리 제주 먼나무도 갈아치워 새로운 나무로 바뀌어 있다. 새 것만 존재하는 서귀포 옛것을 살피는 자존이 허물어진다.
도내 솔동산은 필자가 알고 있는 곳만 3군데나 된다. 유수암 그리고 표선에 솔동산이라는 지명이 있다. 당오름, 민오름이 여럿 있는 것처럼 중복되는 고유 제주지명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울창한 소나무 숲으로 우거진 거대한 숲이 지천이었던 곳은 이와 같은 아름다운 이름을 지어 불렀다. 그리고 푸른 솔 향이 가득한 이곳에 붉은 둥근 과녁을 만들어 세워 제주를 지켜내고자 하였으리라.
하지만 이런 과녁이 있던 자리, 화살 터의 의미 보다 푸른 숲이었다는 해석이 삭막해져가는 이 도시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은 아닐지 생각해 볼 일이다. 장소적 고유성이 떨어진 지명에 집착하여 지나치게 드러난 형태만을 따른 것이 착오는 아니었을까? 현재의 사람들이 지향하는 삶의 모습을 담아내는 제작과정의 심도 있는 논의와 관리감독이 필요했었음을 반성해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