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집행부·도의회 예산 마무리
구성지 의장 ‘결단’이 큰 역할
양보가 원활한 소통의 근원
조건 없이 도민위한 ‘양보’ 기대
대가 바란다면 그것은 ‘검은’ 거래
집행부 ‘예산원칙’ 준수해야
2005년9월 영국의 중부도시 코번트리(Coventry) 골목의 양쪽 입구에 자동차 2대가 마주했다. 영국도 주차난이 심해 골목에선 한쪽이 양보해야 한다. 맞은 편 차가 전조등을 깜빡인다. 이 쪽엔 ‘영국 초보’인 필자다. “신사의 나라라는 영국 운전 매너가 뭐야”라며 기분이 상했다. “양보 말고 버틸까”하다가 “여긴 영국이지”라는 현실을 직시하고 기다렸다.
그런데 앞차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곤 다시 깜빡인다. 얼마를 기다리다 “에이 뭐야”하며 먼저 골목으로 들어갔다. 내 차가 옆을 빠져나갈 때까지 기다리던 앞차 운전자는 잘 가라는 듯 미소까지 던졌다. 그랬다. 영국에서 깜빡거리는 전조등은 양보의 표시였다. 영국은 운전석만 아니라 ‘자동차 언어’도 우리와 정반대였다. 지역 언론에 20년 가까이 근무한 ‘공’을 인정받아 영국외무성 장학생에 선발, MBA 공부를 시작할 때 일이다.
문화적 충격이었다. 일단 자동차 머리를 집어놓고, 내가 먼저 가겠다며 연신 전조등을 깜빡이는 우리나라와는 천지차이였다. 하지만 우리도 이젠 많이 달라졌다. 초보 운전자를 배려하고 끼어들려고 하면 서행하며 간격을 넓혀주는 운전자들이 많다.
그러면 앞차는 비상등을 깜빡인다. 감사의 표시다. 양보한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고, 앞으로 만날 일이 없으니 그냥 가도 그만이지만 비상등으로 감사의 표시를 한다. 조건 없는 양보와 배려, 그리고 그것에 대한 감사, 사람다운 모습이고 원활한 소통의 근원이다.
10년이 지난 일을 떠올리는 것은 4개월간의 ‘예산전쟁’을 끝낸 제주특별자치도와 도의회의 모습과 오버래핑 되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양 측은 사실상 골목길 양쪽에서 마주했다. 원희룡 지사는 2015년도 예산안을 의회에 제출하며 ‘예산개혁’을 위한 원칙을 강조했다. 자치단체장의 동의 없는 증액과 비용항목 신설 금지다. 그런데 도의회는 예결위를 통해 408억300만원을 삭감하고 ‘맘대로’ 증액 또는 비목을 신설해버렸다. 도의원들이 주머니 돈처럼 주물럭대던 이른바 ‘의원재량사업비’에 대한 의혹을 사기에 충분했다.
이에 집행부는 ‘잘못된’ 관행을 바로 잡기 위해 부동의 입장을 피력하자 의회가 선제적으로 부결시켜버렸다. 이어 집행부가 다시 예산안을 제출하자 도의회는 3조8194억원 가운데 사상 최대인 1636억원을 대거 삭감하는 ‘치졸한’ 복수전을 전개했다. 이로인해 고통을 받은 최대 피해자는 집행부가 아니라 취약계층 등 도민이었다.
그리곤 집행부와 도의회는 사사건건 부딪혔다. 제주도는 “낡은 관행을 바꾸자는 것”이라고 도의회를 개혁의 대상으로 지목하며 ‘여론전’을 전개했다. 이에 구성지 의장은 “언론을 통해 자꾸 분란을 일으킨다”며 예산 갈등의 원인을 원 지사에게 돌렸다. 치열한 설전(舌戰)은 그야말로 “우리가 먼저”라며 ‘자동차 머리 집어넣기’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접점이 없을 것 같던 사태의 해결은 구 의장의 ‘결단’에서 비롯됐다. 예산 갈등의 후유증을 우려하며 지사에게 조기 추경을 제안한 것이다. 이후 다소 시일이 걸리기는 했지만 12일 2015년도 제1차 추경안이 도의회 예산결산위원회를 통과함으로써 집행부와 도의회간의 예산전쟁은 사실상 종료됐다. 그것도 극적인 종전(終戰)이다.
도의회의 양보가 컸다. 막다른 골목길에서 2015년도 예산이 통과할 수 있었던 것은 도의회의 양보운전 덕이다. 민생이라는 대의를 위해 도의회의 ‘자존심’을 내려놓은 결단을 존중한다.
그래서 당부한다. 이번 양보가 조건 없이 도민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도민들은 내부유보금으로 돌려놓은 예산 198억원을 주시하고 있다. 조만간 2차 추경을 통해 ‘의원재량사업비’ 등으로 노리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노파심이다. 만일 도의회가 대가를 노리고 양보를 했다면 그것은 도민들을 우롱하는 ‘검은’ 거래에 다름 아니다.
집행부는 자치단체장의 동의 없는 증액 금지 등 도민들에게 천명했던 예산원칙을 지켜나갈 것을 촉구한다. 그렇지 않으면 대규모 예산삭감 사태이후 도민들이 겪은 ‘고통’이 덧없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선 안된다. 집행부나 도의회나 양보운전을 하면서 ‘원칙’이라는 차선을 지키지 않거나 역주행을 시도한다
면 어불성설임을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