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가슴에 새봄이길 바란다”
“모두의 가슴에 새봄이길 바란다”
  • 제주매일
  • 승인 2015.03.1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김용범 제주특별자치도의회 의원

착각이었나 보다.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꽃들의 풍경에 봄이 오는가 싶어 겨울 외투를 벗었더니 매운바람이다. 겨울이 끝나지 않았음을 알리기라도 하듯이 세차게 불어댔다. 지난 며칠 우리는 ‘꽃샘추위’를 제대로 경험했다.

그래서 봄인가 보다. 쉽게 다가오지 않고 몇 번의 기다림으로 다가오기에 봄의 이름에는 큰 그리움이 묻어나는 것 같다.

얼마 전 어머님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자주 전화 통화를 하지만 자식 걱정과 손녀 걱정으로 마음을 건네시는 다른 날과는 달리 머뭇거리셨다. 그러다 “내가 늙어 가는가 보다. 방 도배를 다시 하고 싶어. 낡아진 것은 아니지만 고운 색깔의 도배지로 바뀌었으면 좋겠어. 이게 봄 탓인가 보다”라는 말씀을 전하시는 것이었다.

크나큰 자책이 마음 속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다. 20평도 되지 않은 집에 네 식구가 산다며 자식의 부담감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고자 고향에서 혼자 사시는 어머니의 작은 소망을 미처 깨닫지 못한 못난 마음이 너무나 죄송스러웠다.

어머니는 자식들이 직접 어머니의 방을 도배를 하시는 걸 좋아 하신다. 도배사들이 하는 것이 더 정교하고 운치가 있을 테지만 아들이 해준 도배에 “내 새끼들의 손길과 사랑이 묻어 있어 행복하다”고 하신다.

이번 주말에는 어머니 댁을 찾아가려 한다. 화사한 봄기운이 느껴질 수 있도록 파릇한 도배지를 골라 어머니의 방에 봄을 담아두고 와야겠다.

살아가는 것이 바쁘다는 이유로 자주 못 만났다. 만나면 마음의 문을 활짝 열며 정겨운 미소와 옛 추억으로 돌아가는 넉넉한 시간이 기다리고 있는데도 그 친구를 만난 것은 6개월만인 지난 주였다. 그 친구는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함께 자라 ‘우리만의 전설’을 함께 만들고 자라온 막역지우였다.

친구는 만나자마자 딸 얘기를 한다. 큰 딸의 대학 입학식에 갔다 왔다한다. 흐뭇함도 들고 걱정도 하며 딸이 잘 자라기를 바라는 아빠의 사랑을 가슴 깊이 느낄 수 있다.

용돈을 아껴서 대학생 딸에게 연두색 정장을 선물했다고 했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난 우리 딸이 연두빛 그 색깔처럼 은은하면서도 푸르게 이 세상을 살아갔으면 싶어. 봄을 알리는 연두색처럼 자신의 꿈을 이루길 바라는 아빠의 미음을 그 옷에 담았지.”

친구의 말을 들으며 나도 두 딸의 모습이 떠올랐다. 경찰행정직인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청춘의 낭만도 제대로 느끼지 못하며 공부하는 큰 딸과 언제나 애교스런 웃음으로 나에게 큰 힘이 돼주는 작은 딸이 너무나 보고 싶었다.

이 아이들이 겨울을 이겨내고 꽃을 피우는 봄나무처럼 험한 세상의 길에서 자신이 바라는 소망을 이루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이런 게 자식을 둔 이 세상 모든 아빠의 마음이 아닐까 한다.

봄이 오고 있다. 아니 꽃샘추위에 주춤하기는 했지만 3월 중순이니 이미 봄은 왔다. 다른 계절과는 달리 봄에는 꼭 새라는 관형어가 붙어야 그 의미가 살아난다. 그렇다. 새 봄이다. 1월이 새해의 시작이라면, 계절의 시작은 봄이다.

꽃을 피우고 햇살이 따스하게 머무는 봄의 시간처럼 세상을 살아가야겠다. 이기면서도 지는 독단의 큰 목소리보다는 지면서도 이기는 소통의 화합의 낮은 목소리가 필요한 시간이다. 머릿속 논리보다는 사람과 만나며 가슴 속 울림을 들어야 할 시간이다.

우리의 새 봄은 푸른 희망보다는 어두운 절망으로 다가 온 시간이 너무 많았다. 세월호 참사로 그 많은 어린 생명들이 덧없이 떠나 간 것도 지난 해 봄이었다.

새 봄이길 바란다. 어제보다는 나은 세상의 빛이 펼쳐져 아이들이 꿈을 키우고, 가정에는 엄마들의 근심거리가 조금은 덜해지고, 반목에서 벗어나 화합할 수 있는 희망의 새 봄이 모두의 가슴에 자리하길 기원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