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왜 올레 425㎞를 다 걸었나”
“그들은 왜 올레 425㎞를 다 걸었나”
  • 안은주
  • 승인 2015.03.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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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번 듣느니 한번 걷는 게 낫다
올레 26개 코스 완주자 670명
저마다 사연도 각양각색

84세 할머니는 자신감을 찾고
암 진단 환자는 삶의 희망을 보고
모두 제주를 사랑하는 마음들

백문이불여일보(百聞而不如一步). 백번 듣는 것보다 한번 걸어보는 것이 낫다는 이야기인데, 제주올레를 소개할 때 가장 자주 쓰는 표현이다. 제주올레 26개 코스, 425㎞를 걸은 완주자가 670여명이다.

부부가 함께 완주한 이도 있고, 부녀지간, 모자지간에 함께 완주한 이도 있지만 혼자 완주한 이들이 가장 많다. 한 달에 몰아서 완주한 이도 있고, 몇 년에 걸쳐 조금씩 완주한 이들도 있다.

제주올레는 ‘제주올레 패스포트’에 각 코스 시작·중간·종점의 스탬프를 찍어오는 도보여행객에 대해 제주국제공항안내소와 제주올레 사무국 등에서 완주증과 완주 메달을 발급해주고 있다. 제주올레 완주자, 그들은 그 긴 길을 왜 걸었을까.

지난 2월 ‘제주올레 완주자클럽’ (cafe.daum.net/jejuolle2006)이 발족했다. 제주올레 전 코스를 완주한 70명이 지난 달 1박2일로 제주를 찾아 ‘제주올레 완주자 클럽’ 발대식 행사를 진행했다.

완주자들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유와 사연이 제 각각이다. 올해 84세가 된 장예숙씨는 부산에 산다. 2년 동안 제주와 부산을 오가며 425㎞를 완주했다. 제주올레를 모두 완주한 아들의 권유를 받아 시작했다고 한다. 근데 나이가 있다 보니 하루에 5㎞씩 걷는 것을 목표로 했다. 장예숙씨는 “처음에는 겁도 났고, 자신도 없었는데 한 코스 한 코스 걷다 보니 완주하게 됐다. 이 나이에도 제주올레를 완주할 수 있었다는 것이 너무 감사하고 뿌듯했다. 앞으로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을 얻었다.”라고 말했다. 그녀는 아들과 함께 ‘역올레(같은 코스를 역방향으로 걷기)’ 완주를 목표로 다시 제주를 걷고 있다.

어떤 이는 제주올레 전 코스를 4번, 5번이나 완주했다. 굳이 여러번 완주한 이유는 ‘계절마다 주는 풍광이 사뭇 달라서’란다. 봄의 파릇한 기운, 여름의 미칠 듯 숨막히는 생명력, 가을의 들꽃과 억새, 겨울의 스잔함…. 창원의 시인 강신형씨는 제주올레를 완주하면서 코스마다 시를 읊었고, 그 시를 엮어 시집 ‘꿈꾸는 섬’을 출간했다.

암 진단을 받은 또 다른 완주자는 삶을 다 포기하다시피한 채 제주에 내려왔다. 죽기 전에 제주 바다나 보자고 나섰던 여행이었다. 숙소 주인의 권유로 제주올레 1코스를 걷게 된 그는 광치기 해변에 서서 대성통곡했다고 한다. 그는 “암 진단 후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1코스를 완주한 나를 보면서 자신감을 얻었다. 혼자의 힘으로 이 길을 다 걸었는데, 못할 것이 무엇 있나 싶었다. 죽으러 왔던 제주에서 새로 태어난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시작한 제주올레 여행은 그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 놓았고, 그는 완주 메달을 목에 걸 수 있었다.      

제주올레 완주자들은 ‘마음의 휴식이 필요해서’ ‘건강을 위해서’ ‘제주의 아름다움을 느끼려고’ 제주올레를 찾는다고 답한다. 한국 사회가 유독 스트레스가 심한 편이니 심신의 건강을 위해 제주올레를 걷는 사람이 많은 것이다. 제주올레 완주자중 ‘수도권 중년 남성’이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제주올레 완주자 670명 가운데 남성이 67.9%며 40대가 21.5%로 가장 많았다. 50대(18.3%), 30대·60대(17.6%), 20대(7.5%) 순이다. 거주지별로 보면 서울 수도권 거주자가 전체 완주자의 50.8%다.

그런데 그렇게 걷기 시작한 사람들은 제주를 재발견하고 제주올레 걷기에 ‘중독’된다. 제주올레를 걷다 제주에 반해 아예 제주로 이주해오는 이도 적지 않다. 완주자 가운데 제주 이민자가 상당히 많은 이유다. 제주를 걷다 제주를 사랑하게 된 사람들이 제주에 이주해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제주를 사랑하는 만큼 제주를 더 아끼고 보듬어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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