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장 살기 좋은 도시 멜버른
특히 인상적인 것은 주차질서
‘도로는 공공의 것’ 인식
제주사회도 ‘공공의 것’ 돼야
그렇지 않으면 가진 자들이 독식
불법·무질서 근절 활동 기대
타임지(Time誌)가 선정한 가장 살기 좋은 도시, 호주 멜버른. 이 도시의 더 큰 매력은 공공의식에 있다. 한 겨울에 반팔 셔츠를 입든, 여름에 밍크코트를 입든 상관하지 않는다. 하지만 “레스토랑에서 내 돈 내고 먹는 데 무슨 상관이냐”며 자기 아이들이 제멋대로 뛰어다니게 하는 우리와는 다르다. 당국에서 절수를 위해 하루 1시간만 꽃밭에 물을 뿌리라면 모두가 따르는 곳이 멜버른이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주차질서이다. 그 곳 공공도로에는 1시간, 2시간, 4시간 유로 주차 구역이 있다. 모두 시간에 따라 동전을 넣어 주차한다. 그런데 시내 직장인들에게는 불편이 너무 크다. 내가 멜버른대학에 있을 때도 한 교수에게 불만을 토로한 적도 있다. 잠깐 시내에서 일을 볼 경우에 1시간, 2시간 주차는 문제 될 게 없다. 하지만 오전 9시에 학교 나와서 점심 후, 오후 1시 쯤 되면 마음이 바빠진다. 4시간 주차시간을 초과하면 벌금이 부과되기 때문이다. 이 때 서로 다른 곳으로 차를 이동시키기 위해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다. 운이 좋은 날은 금방 4시간 주차구역을 찾아 퇴근 때까지 버틸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연구실문을 들락날락해야 한다.
아닌 말로 8시간 주차구역을 만들면 될 걸 왜 이런 제도를 고집하는 걸까? 그 교수의 대답은 분명하다. 도로는 ‘개인의 것’이 아닌 ‘공공의 것’이기에 4시간까지만 허용해야 필요한 사람들이 골고루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내가 돈을 더 내어도 ‘공공의 것’을 독점할 수 없는 사회, 멜버른이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꼽히는 이유는 이 때문이 아닐까.
우리의 경우는 어떠한가. 가게나 집 앞 도로를 마치 제 땅인 양 폐타이어나, 물통 등으로 차지하는 사회, 이러한 모습을 보면서도 인력 탓, 예산 탓만 하며 책임을 회피하는 행정, 이러한 일들을 그러려니 하고 용납하는 우리들의 심성, 멜버른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공공의 것’을 지켜 나가려는 그들의 시민의식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원래 고대 로마의 정식 명칭을 보면 ‘레스 프불리카 로마나’, 즉 ‘로마는 공공의 것’이다. 이 선언은 그들 생활 속에 스며있다. 그들은 엄격히 공과 사를 구분한다.
그래서 나온 것이 ‘레스 프리비타’와 ‘레스 프불리카’이다. ‘개인의 것’이라는 뜻의 ‘레스 프리비타’는 아무도 간섭하거나 침범해서는 안 되는 개인의 고유 영역이다. 이에 비해 ‘공공의 것’이라는 ‘레스 프블리카’는 개인이 독점할 수 없고 양도할 수 없는 영역이다. 시저가 로마를 1인 독재체제로 만들려 했을 때 ‘레스 프불리카 로마나’의 원칙을 고수하는 브루투스에게 살해당한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레스 프블리카’의 출발점인 공공성을 지키기 위해 로마인들은 공무에 대해서도 엄격히 규정한다. 그것은 공익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이며, 그 운영은 공공의 목소리인 법과 규정의 소관이다. 따라서 공직자란 즉 공인으로서 인민의 이름으로 공동체의 권리를 운영하고, 수호할 책무를 떠맡은 사람이며, 로마시민들의 법 준수는 공익을 위한 미덕이다.
‘리퍼블릭 오브 코리아’, 우리는 대한민국을 ‘공공의 것’이라고 선언한다. 하지만 우리의 주차의식에서 볼 수 있듯이 다른 사람들에게 자랑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왜 우리는 ‘공공의 것’을 강조해야 하는 걸까? 우리 사회가 ‘공공의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결국에는 힘 있는 자, 가진 자가 독식하는 사회가 되고 만다. 결국 피해자는 우리들이다. 세계인들이 즐겨 찾는 가장 아름다운 섬이라는 제주사회가 지금처럼 무질서가 방치되고, 공공성이 훼손된다면, 결코 사람살기에 적합한 건강한 사회가 될 수 없다.
‘레스 프불리카 제주’, 즉 ‘제주는 공공의 것’이라는 이 당연한 명제를 지켜내기 위해서라도 최근 제주시가 불법?무질서 근절을 위해 100일간 강력한 계도 단속 활동을 해 나가겠다는 이야기가 결코 헛된 구호가 아니길 소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