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빌려 쓰는 문화 계속 확대
자동차·정수기 이어 묘지 터까지
‘협력적 소비’의 새바람도
천혜의 제주에 많은 점 시사
협력적 소비·공유도시로 나아가야
사회적 자원·지식·정보도 공유
제주 가는 길이 멀고 험해지고 있다. 몇 년 뒤 이주의 꿈도 요원하다. 하늘 길 넓어지고 오가는 이는 늘었지만, 그럴수록 꿈은 멀어진다. 9억평 제주땅에 이름 석 자 박힌 땅 한 평 없으니, 이런저런 궁리는 몽상에 가깝다.
이게 다 땅 때문이다. 아니, 천정부지 솟구치는 땅값이 문제다. 노름판처럼 판돈 키워가는 양상이니 끼어들기 어렵다. 지난해 제주의 땅값과 집값 오름세는 전국 최고. 게다가 집값 오름세는 전국 평균의 2배란다.
하긴, 사려는 사람이 많으니 당연하다. 2010년 제주 순유입인구가 437명이랬다. 5년 뒤인 지난해는 1만1111명. 그러니 시장 논리대로 값이 오르는 건 자연스런 일이다. 다만, 그 오름세가 가파르고, 단순 매매에서 투자, 투자에서 투기로 치닫는 양상을 보이니 걱정이다.
재외도민에서 ‘현지도민’으로의 변신을 도모하는 필자 또한 마찬가지다. 여럿이 함께 제주에서 벌일 일들을 계획하고 있는데, 정작 안정된 터를 장만하는 게 날로 멀어졌다. 해법은 의외로 쉽게 구해졌다. 땅 살 돈 없으면 빌려 쓰면 된다는 것. 그러니 소유하지 않고 사용할 수 있는 땅을 찾기로 했다.
집도 마찬가지다. 땅을 파헤치지 않고, 떠날 때 원형 그대로 돌려줄 수 있는 방안을 찾았다. 고민 끝에 얻은 답이 컨테이너하우스. 예술가들의 상상력을 담아 컨테이너 몇 개를 조합해 지은 집. 그런 예술작품 수준의 컨테이너하우스 사례는 부지기수다. 땅을 팔 필요도, 시멘트나 콘크리트 등을 사용할 필요도 없다. 더 이상 쓸 필요 없을 때 들어내면 되니 친환경적이다. 게다가 매우 싸다는 점도 매력이다.
이러한 ‘빌려 쓰기’는 별로 새로울 것 없는 이야기다. 땅이며 주택을 소유하지 않고 빌려 쓰는 일은 유럽이나 북미지역이라면 일반적인 일이다. 주거공간이 투기의 대상이 될 수 없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도 엄격하다. 공공부문이 적극 나서 임대주택 확대를 촉진하기도 한다. 주택문제를 거의 시장과 민간업자 손에 맡긴 우리와 크게 다르다.
시대적 추세랄까, 빌려 쓰는 문화가 날로 확산되고 있다. 자동차를 소유하지 않고 임대해 쓰는 사람들이 크게 늘었다. 비데나 정수기를 비롯한 생활 가전제품 위주의 ‘렌탈시장’도 성장 추세다. 심지어 장묘문화에서 일정 기간 묘지 터를 빌려 쓰는 게 일반화됐다. 묘지 터의 빌려 쓰기는 결과적으로 화장률의 증가로 이어졌다.
최근에는 빌려 쓰기 수준을 넘어 함께 쓰는 ‘협력적 소비’ 바람도 분다. 차량과 장난감·숙소·사무실을 비롯해 책과 가전제품·의류에서 반려동물 등에 이르기까지 영토를 넓혀가고 있다. 협력적 소비를 바탕으로 한 비즈니스 모델이 생겨나면서 ‘공유경제’라는 신조어도 등장했다. 서울시는 아예 ‘공유도시’를 정책의제 삼았다. 도시에 시민 중심의 협력적 소비시스템을 구축하겠다고 나섰다. 흥미로운 시도다.
제주도는 자연이 내린 빼어난 자연환경이 최대 자산이다. 하지만 그 천혜의 자산은 매우 취약해, 외부환경의 작은 변화와 충격에도 쉽게 훼손된다. 게다가 망가진 뒤 이를 되돌리거나 복구할 길은 전혀 없다.
천혜의 자연 환경을 지키고 제주를 제주답게 가꿔나가는 방안은 수도 없이 많을 것이다. 그 가운데 섬이라는 지역적 특성을 고려한다면 제주야말로 수준 높은 ‘협력적 소비도시’ ‘공유도시’로 나아가야 한다는 생각이다. 유형의 자연 유산 및 사회적 자원을 나누고 공유할 뿐 아니라 도민들 개개인의 지식과 경험·정보 등 무형의 자원까지 서로서로 나눌 수 있다면 그 효과는 더욱 클 것이다.
특히 이러한 프로그램을 통해 이주민의 사회적 기여를 통한 조기 정착을 돕는 한편 도민과의 화합을 촉진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협력적 소비 또는 공유도시는 단지 생태환경과 에너지 등 자원 수준의 의제일 뿐 아니라 제주 공동체를 풍요롭게 하는 디딤돌이기도 하다. 늦기 전에, 더 많은 자연과 자원들이 다치고 망가지기 전에, 소중한 것들을 아껴 쓰고 나눠 쓰고 지켜가는 문화가 활짝 꽃 피웠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