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중국인들의 축제 '춘지에'

설날이자 중국인들의 ‘춘지에(春節)’다. 관련한 보도가 국내에도 많아지면서 자연스럽게 중국식 발음까지도 귀에 익은, 중추절과는 비교도 되지 않게 중시되는 중국인들의 독보적인 최대 명절이다. 중국인들에게 있어, 춘지에는 긴 연휴가 주어지는 휴식이고, 성과급과 보너스가 있는 한해 결산이기도 하며 귀성의 재회와 함께 폭죽이 터지는 축제이다.
매 한 해 지내온 삶의 모습을 그대로 담아내는 아주 오래된 문화는 새롭게 시작한 중국의 사회 변천사 속에서 무엇을 그대로 담아 왔고 또 어떻게 달라졌을까? 같은 날이기도 한 이웃한 우리들의 설 축제와는 어떻게 닮아 있고 어떤 다름이 있을까? 중국인들의 춘지에는 섣달 그믐날 저녁 가족들과의 식사를 위해“집으로 가는 길”에서 시작된다.
해마다 떠나고 보내는 사람들로 소란스럽고, 이고 진 보따리가 번잡스러워지는 한달 이상의 춘지에 귀성 기간 중의 엄청난 운송 작전을 포괄하는 단어가 있다. ‘춘윈(春運)’은 단기간 내 수요가 폭증하는 각종 교통수단을 준비하고 차표를 질서 있게 예매하고 안전도 책임져야 하는 범국가적 프로젝트다. 도시에서 힘들게 일하고 있는 산업화 전사들인 농민공들의 년 중 거의 유일한 귀향이라, 중국 정부로서는 이들의 심신을 위로하고 민심도 챙겨야 하는 중요한 시간이기도 하다. 이
사회 활동의 공간 반경이 아주 넓은 대륙의 중국인들에게 있어 춘지에 귀향은 차편을 마련하는 일부터 시작해서 연휴 내내 많은 시간과 비용이 낭비된다는 현실적인 어려움도 커지면서 귀성이 걸러지는 분위기도 보이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20~30시간씩 기차를 타고 오가며 왕복 2~3일의 시간을 써 버려도 그믐날 저녁 가족들과의 소중한 저녁 한 끼 식사를 고대하며 고향으로 향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
섣달 그믐날 저녁, 가족들이 모인 식사 시간은 춘지에의 하이라이트로서 둥근 식탁 위에 죽 둘러 앉아 식사하는 남녀노소 중국인들의 모습이 연상된다. 한 해 중 가장 중요시하는 가족들과의 한 끼 식사이니만큼 니엔이에판(年夜飯)이라는 명칭도 따로 있다. 춘윈(春運)도 그렇듯 뜻 글자인 한자를 쓰는 민족이라 필요에 따라 의미를 담은 적절한 명사를 잘도 만들어낸다.
저녁 식사 분위기가 한참 무르익을 때쯤 시작되는 ‘춘지에완회이(春節晩會)’라는 TV 프로그램에 많은 중국인들의 시선이 고정된다. 중앙텔레비전(CCTV)이 생방송으로 전국에 방영한다. 중국 전역 방송국 200여개 채널이 중계하는데 재방송까지 모두 연 8억 명 가까이 시청한다니 놀랍다. 이미 가장 많은 사람들이 시청하는 단일 프로그램으로써 기네스북에도 기록이 올라 있다.
노래와 춤과 만담까지 모든 연예 장르를 망라한 그야말로 버라이어티 ‘쇼 쇼 쇼’다. 매년 진화해가며 살아가는 중국인들 삶의 모습을 그대로 투영해 주는 문화 자체로써 해마다 숱한 유행어를 만들어 내고 수많은 스타 연예인을 배출해 내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절대 다수의 중국인들에게 이 프로그램 없는 춘지에는 상상할 수 없다 할 정도로 영향력이 크다. 한 해 마지막 날 밤, 도시와 농촌의 차이나 저녁 식사 내용의 빈부 격차 없이 모두 똑 같이 누릴 수 있는 공평한 오락 시간이기도 하다. 그러나 30여 년 동안 섣달그믐날 저녁을 함께 해온 전설과도 같은 이 프로그램의 시청률이 최근 몇 년 간 조금씩 하락해 가고 있다. 중국인들에게 점점 할 것도, 볼 것도, 갈 곳도 많아지는 것이다.

춘지에가 축제임을 오감으로 제대로 느끼게 해 주는 것이 폭죽이다. 베이징에서 춘지에를 지내다 보면 섣달그믐날부터 시작되는 요란한 폭죽 소리에 며칠을 정신이 몽롱한 상태로 살게 된다. 시내가 완전히 폭죽의 세상으로 변하는 시간들은 중국에 상주하고 있는 많은 외국인들이 돌연 이방인이면서도 관광객과도 같은 분위기에 쌓이게 하고, 중국인들을 따라 밤하늘에 수놓는 형형색색의 폭죽을 바라보며 해외에서의 1년 수고를 위안 받기도 하고 다음 해 소원을 빌어보기도 한다.
이 동네 저 동네로 폭죽 구경을 다니다 보면 중국 아빠들이 가진 빈부 격차의 한 단면이 보이기도 한다. 수십만원 이상의 폭죽을 신나게 쏘아 올릴만큼 한 해를 잘 마무리한 자랑스런 표정의 부자 아빠가 있는가 하면, 남들의 폭죽을 구경만 하거나, 식구들 보기에 민망한 정도의 소리도 시원치 않고 불꽃도 흐릿한 싸구려 폭죽을 터뜨리는 가난한 아빠들도 있다. 이런 저런 사연의 중국인들이 꾸며내는 폭죽의 밤하늘은 해마다 더 화려해지고 소리는 자꾸만 커져 간다. 마치 중국의 변해 가는 모습을 그대로 닮아 가는 것 같다. 화약을 만들어 낸 중국인들답다.
엄청난 인구의 귀성과 유동,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하는 중국의 크기를 한 해마다 고스란히 영상으로 담아내는 가공할 시청률의 TV 프로그램, 부강해지는 중국의 빛나는 소리인 '폭죽', 그믐날 자정 무렵에만 100억개 이상이 발송되는 새해 인사 핸드폰 메시지……신중국의 춘지에가 가지는 문화들이다.
어찌 보면 한국인들 입장에서는 규모만 다를 뿐 별 새로울 것 없는 모두 비슷하게 경험했던 유사한 문화들일지도 모른다. 다른 한 가지 “사회주의 속의 중국인들은 명절 속 조상의 의미를 어떻게 지금까지 가져 왔을까?”하는 점이다.
세파를 겪어온 중국 노인들의 회고에서 그들 전통 문화의 변화를 엿본다. “늘 극진하게 치렀던 집안 제사는1940년을 전후로 해서 조촐해졌고, 1949년 신(新)중국이 시작되면서 제사라는 의식은 잊혀져갔다. 이제 세상도 변했고 형편도 나아졌지만 조상들의 정확한 기일은 기억하지도 못한 채 최소한의 형식을 차려 예의를 표할 뿐이다” 거친 세파와 사회 변천 속에서 노인들이 제대로 잇지 못한 전통들은 이제 희미한 기억들로만 남아 있고, 한 자녀만 허용하는 사회는 과거 전통을 쉽사리 잊게 만든다.
중국인들의 춘지에는 이런 변화와 함께 점점 더 명확하게 살아 있는 사람들만의 축제가 되어 온 것이다. 조상에 대한 예가 극진한 제주민들이 지내는 설날과 가장 다른 부분일 것이다.
경제적 여유가 더해진 중국의 도시민들에게 있어 춘지에 연휴는 자연스럽게 해외여행을 떠날 수 있는 연중 최적의 시간이 됐다. 제주에서 연휴를 즐기는 중국인들도 바로 그들이다. 올해는 2월18일부터 24일이 중국 춘지에 공식 연휴다. 해마다 날짜는 변해도 연례행사처럼 된 중국인들의 춘지에 연휴 제주 방문은 향후에도 계속 이어질 것이다.
늘 찾아올 손님들이라면 반갑게 새해 인사를 건네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제주에서 만나는 중국인들에게 새해 인사인 신니엔콰이러(新年快樂,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나 꽁시화차이(恭喜發財, 돈 많이 버십시오)로 인사를 나눠 볼 수 있다면 주인도 객도 서로 유쾌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