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떠나고 싶지 않다”
“우린 떠나고 싶지 않다”
  • 강성분
  • 승인 2015.02.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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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 마을에 레미콘공장 추진
교통사고·건강 등 벌써 걱정
반대해도 들어서면 어쩌나

입도민?학부모들 큰 걱정
‘청정제주’에도 맞지 않아
행정기관의 올바른 판단 기대


첫눈에 반했었다.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그래서 시집을 왔다, 제주도에게로. 제주도의 나른함에 36년 동안 얼어있던 몸과 마음이 풀리자 온전한 사랑이 내 품에 들어왔다. 꿈도 꾸지 않았던 결혼을 했고 아기를 낳아 드디어 온 가족이 제주도에 포옥 안겨 살게 되었다.

10년이 흐르자 권태기가 온 부부처럼 투닥거리기도 하고 또 그 시간만큼 나를 품어준 제주의 속살에 미운 생채기들이 보인다. 상처를 치유하고 흉터를 매만져 주어야하는데 자꾸만 청정환경을 건드리고 덧나게 하는 일들이 목격된다.

요즘 우리 이웃마을에 레미콘 공장이 들어선다고 한다. 19살 때까지 시멘트와 레미콘 공장들이 많았던 강원도 영월에서 차로 15분 거리에 살았던 나로서는 누구보다 그 피해를 잘 알고 직접 겪어 보았던 입장이라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당시 공장이 있던 마을은 말할 것도 없고 꽤 떨어진 곳에 있는 우리 마을까지도 교통사고 피해가 속출했다. 아이를 잃은 어느 아버지는 사고차량 회사의 든든한 보험 때문에 가해자가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은 것에 격분했고 자신의 힘으로 어쩔 수 없음을 깨닫자 술꾼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애를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며 부인을 때리기 시작했다.

교통사고야 원인이 확실했지만 늘어나는 폐질환들에 대해선 수군거릴 뿐 누구도 입증할 능력이 없으니 그냥 그렇게들 살아갔다. 그 후 학자들이 입증하여 보상을 받았단 얘기가 떠올라 자료를 찾아본 바 레미콘?시멘트 회사들이 그동안 얻었을 수익에 비하면 너무나 작은 금액이, 그것도 아주 아주 엄격하게 선별한 몇몇 폐암 등의 환자들에게만 할당됐다.

내 아버지도 폐암으로 돌아가셨지만 담배를 피셨기에 아예 공장 탓을 할 생각조차 안했다. 어머니도 관련 회사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나는 진심으로 깊은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는 트라우마를 지닌 셈이다. 남편은 나의 고민을 이해하였기에 “우리가 반대해도 진짜 생겨버리면 어떡하지?”라는 질문에 “이사 가는 거지 뭐”라며 탄식조의 안타까움을 내놓는다.

그러자 오며 가며 듣고 있던 아들이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나 이사 안가! 우리학교 좋단 말이야~!”한다. “그래. 어떻게 지킨 학교인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마을은 폐교 위기에 처했던 학교를 살려냈고 지금은 학생 수가 꾸준히 늘고 있어 학교가 없어졌으면 정말 어쩔 뻔했나 상상만 해도 식은땀이 난다.

남편과 나는 ‘나쁜 공장’ 절대 안 들어오게 할 거라며 아들을 안심시켰다. 청정 제주에 살며 작은 학교에서 아이를 교육시키고 싶었던 우리는 정말 삶의 터전을 고민해야하는 고민에 빠졌다. 그건 나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특히 제주가 좋아 이주해온 입도민들과 아이를 둔 부모들의 걱정이 컸다.

지역 이기주의인가 싶어 제주도의 레미콘공장 분포도를 보니 이미 레미콘 공장이 22개 아스콘 공장이 16개 등 전국 평균의 2배와 3배에 이르렀다. 게다가 분포도를 보니 우리 모두는 이미 시멘트가 뿜어주는 비산 먼지의 영향권 안에 살고 있었다.

청정제주가 우리의 트레이드마크인데 우리는 정말 떳떳할 수 있을까? 그래서 나는 요즘 제주의 생채기들을 언제까지 보고만 있어야 할까 고민이다. 이런 고민을 나 혼자 한다고 될 일도 아닌데 말이다.

그래서 높은 곳에 기대보려고 한다. 바로 대한민국 헌법 제 35조 1항이다. 대법원은 “모든 국민은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살 권리가 있으며 지자체는 지역적 특성을 고려하여 이를 시행할 책무를 지닌다. 고로 원심 판시와 같은 공해방지시설을 갖춘다고 하더라도 공장가동과 운송차량에 의한 소음과 분진, ?지하수오염 등으로 인근주민의 삶에 위해를 가할 우려가 충분하다고 판단된다”면서 한 차원 높은 삶의 가치가 더 중요하다며 주민들의 손을 들어 준 적이 있다. 행정기관은 헌법을 준수하기 바란다. 우리는 정말 떠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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