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행부 도의회 모두 ‘갑갑(甲甲)’
집행부 도의회 모두 ‘갑갑(甲甲)’
  • 김철웅
  • 승인 2015.02.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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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갈등 석달째 지속
원 지사 중앙언론 “의회 탓” 인터뷰
공 속에 못을 담아 넘긴 격

의회도 ‘명분 없는’ 핑계만
조기추경안 처리 전망 불투명
결국 두 기관 도민 대상 ‘갑질’

정말로 갑갑하다. 2015년도 예산안을 둘러싼 제주특별자치도와 도의회간의 실랑이가 그것이다. 지난해 12월 예산안 심의 과정에서 촉발된 ‘갈등’이 석달째 이어지고 있다. 타협점도 보이지 않는다. 평행선이다. 양측 모두 잘났다. 서로 “잘못하는 게 없다”는 모습이다.

도민들만 죽을 맛이다. 예산 대규모 삭감에 따른 후폭풍이다. 2015년 예산안 3조8194억원의 4.28%인 1636억원이 삭감되다보니 그냥 뒀어야할 예산까지 대거 잘려나갔다. 1차산업 분야와 4?3 관련 사업 등은 물론 노인·장애인·다문화·보훈단체 등도 ‘피해자’다. 당장 필요하고, 한 푼이 아쉬운 사회적 약자에겐 더 큰 고통으로 다가가고 있다.

그런데 ‘희망’이 생겼다. ‘조기추경’에 대한 기대감이다. 지난 10일 제주도가 1634억원 규모의 추경예산안을 편성, 도의회에 제출했다. 도는 “예산안 삭감으로 인한 도민생활 불편 등을 해소하는 차원에서 민생예산은 가급적 수용했다”고 밝혔다.

공은 이제 도의회로 넘어간 셈이다. 그리고 조기추경은 구성지 의장이 ‘공식적’으로 제출을 요구했던 일이다. 그래서 추경안 처리여부에 기대가 없지 않다. 구 의장은 지난달 9일 본회의 개회사에서 “예산논쟁의 후유증이 도민사회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면서 “도민을 위한 해법은 추경”이라고 원희룡 지사에게 제안한 바 있다.

하지만 ‘희망’이 희망적이지 못하다. 공을 넘긴 집행부나 받는 도의회나 모습들이 영 마뜩하지 않다. 먼저 집행부다. 공을 곱게 넘기지 못했다. 진짜로 ‘도민의 불편’이 걱정돼 제출한 조기추경안이라면 곱게 넘겼어야 했다.

원 지사의 발언이 문제다. 원 지사는 12일 보도된 중앙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예산 갈등의 원인으로 도의원들을 지목했다. “도의원들이 의원사업비를 충분히 편성해 주지 않자, 대규모 예산 삭감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이어 “도의원들의 지역 민원 예산에 공백이 있을 뿐이지 행정공백은 없다”고 덧붙였다.

이에 도의회는 발끈했다. 농수축경제위원회는 이날 오전 관련 실국의 업무보고를 중단해버렸다. 당연한 ‘반발’이라 여겨진다. 갈등과 충돌의 전제는 ‘쌍방’인데 일방의 책임으로, 그것도 전국적으로 공표해 버렸다.

원 지사의 생각을 모르겠다. 우선 공을 넘기면서 못을 담아 던진 격이다. 상대방은 손이 아프니 제대로 받을 리가 없다. 기분도 나쁠 것이다. ‘도민을 위해’ 추경안을 제출하는 시점에서 꼭 그랬어야 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크다.

그리고 제주도의 일을, 그것도 자랑스럽지 못한 일을 도외로 떠드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내용의 사실 여부를 떠나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아니다. 집안에서 풀 수 있으면 집안에서 조용히 풀어야 한다. 그리고 도의회는 앞으로 제주도라는 한 지붕 아래서 계속 마주보며 제주를 미래로 이끌어나갈 파트너다.

도의회도 문제다. 도민들은 설 전 처리를 요구하는데 조기처리에 유보적인 입장도 포착된다. “편성 예산이 너무 많아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는 신중론이다. “집행부가 제출한 추경안을 그대로 처리한다면 지난해 예산삭감이 의회의 잘못으로 비춰질 수 있다”는 명분론도 있다.

모두 명분 없는 핑계로 보인다. 편성 예산이 많다고 하지만 대부분이 지난해 12월15일 부결 당시 소관 상임위와 예결위 심의를 거쳐 상정됐던 예산안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한다. 그때 필요했던 사업이면 지금도 필요하다. 당시 전체 예산안 가운데 문제가 됐던 것은 400여억원이다. 그리고 대거삭감 사태 직전엔 그 400억원 가운데서도 상당 부분 의견이 접근, 이견은 200억원 내외였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것들만 심의하면 될 일이다. 두 기관 모두 입으로는 도민을 얘기하면서 도민들을 대상으로 갑(甲)질이다. 도민들을 실망시키는 모습에서 ‘어느 것이 위고 아래인지 분간(分揀)할 수 없다’는 막상막하(莫上莫下)가 아니라 ‘어느 것이 더 아래인지 분간(分揀)하기 힘든’ 막하막하(莫下莫下)의 양상이다. 그래서 집행부나 도의회 둘 다 갑갑(甲甲)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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