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에 있는 애들 눈에 밟혀 잠 못이뤄”
“북에 있는 애들 눈에 밟혀 잠 못이뤄”
  • 윤승빈 기자
  • 승인 2015.02.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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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이산상봉 신청…“생사만이라도 알았으면…”
▲ 대한적십자사 제주특별자치도지사가 설 명절을 앞두고 이산가족 위로 방문을 실시한 가운데 진용찬(사진 왼쪽 3번째)씨가 11일 자신을 방문한 제주적십자사 직원과 북에 있는 가족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명절이 가까우 질수록 북에 두고 온 내 아이들이 그리워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이제는 그저 생사만이라도 알고 싶습니다.”

제주시 외도1동에 사는 진용찬(85)씨는 명절이 다가올 때면 북에 두고 온 아들 진건성(68·추정)씨와 이름도 지어주지 못한 딸(65·추정)이 아른거린다.

경기도 개성이 고향인 진씨는 1950년 6·25전쟁 당시 북한군으로 복무했다. 당시 그의 나이 21살이었지만, 이른 나이에 결혼한 탓에 3살된 아들과 아내 뱃속에 있던 딸아이가 있었다.

그러나 그는 가족과 인사도 하지 못하고 생이별을 해야만 했다. 그가 입대한 그해, 6·25전쟁이 발발했기 때문이다.

진씨는 “입대할 때만 해도 전쟁은 상상도 못했다”며 “군복무 도중 갑자기 전쟁이 났다고 하니 두렵고, 가족생각부터 났다”고 말했다.

그는 전쟁이 터지자마자 바로 전장에 투입됐고, 이어지는 전투 속에서 가족들에게 연락조차 할 수 없었다.

진씨는 결국 전투 중 포로로 붙잡혀 부산, 제주 등을 오갔다. 포로수용소에서 만난 고향사람에게서 가족 소식을 접했다.

그는 “고향사람에게서 들은 소식 중 하나는 아내에게서 딸이 태어났다는 것과, 다른 하나는 폭격에 집이 불타 없어졌다는 것”이라며 “아쉽게도 아내와 자녀들의 생사는 들을 수 없었다”고 털어놨다.

전쟁이 끝나고 그는 고향에 돌아가려 했지만, 휴전선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결국 청주에 가서 허드렛일을 하며 하루하루를 보냈고, 지금의 아내인 임옥분(77)씨를 만나 결혼했다.

그는 서울에서 기술을 배우고, 아들 둘을 낳아 기르는 등 새 삶을 시작했다. 생활이 안정되자 1997년 자녀들과 함께 제주로 왔다. 이후 임씨의 권유로 1998년 이산가족 상봉 신청을 했다.

혹시나 얼굴조차 모르는 아이들을 만날 수 있을까 여의도 까지 찾아가는 등 갖은 노력을 다했지만 돌아온 거라곤 “조금만 더 기다려 봐라”는 말 뿐이었다.

진씨는 “추운 겨울이 오면, 특히 새해가 밝을때마다 고향에 두고온 아이들이 생각이 난다”며 “나도 나이가 많이 들었고, 아이들도 살아있다면 환갑이 넘었을텐데 지금은 그저 생사라도 알고싶은 심정”이라고 토로했다.

한편 통일부와 대한적십자사가 공동으로 운영하는 ‘이산가족정보통합시스템’에 따르면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 수는 지난해 11월 기준 모두 523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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