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지리의 대가’ 그가 거닐었을 고향 길
‘풍수지리의 대가’ 그가 거닐었을 고향 길
  • 박수진 기자
  • 승인 2015.02.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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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따라 이야기따라 ⑦
고홍진 생가 터 있던 곳 이호2동 ‘오도길’

각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인물을 ‘탐라삼절(耽羅三節)’또는 ‘탐라사절(耽羅四絶)’이라고 한다. 말 그대로 탐라삼절은 3명의 인물, 탐라사절은 4명의 사람을 뜻한다.

탐라사절에 해당하는 인물은 의술에 뛰어난 진국태(秦國泰), 출중한 풍모로 유명했던 양유성(梁有成), 풍수지리의 대명사 고홍진(高弘進), 복서(卜筮)를 잘해 사람들의 장례를 예측했던 문영후(文榮後)다. ‘탐라삼절’을 언급할 경우에는 양유성을 제외하고 얘기한다고 한다.

이들 중에서 본지는 제주 최고의 명의라 불리는 ‘진국태’를 지난 해 11월 보도한 바 있다. 이번에 소개할 인물은 ‘풍수지리’하면 떠오르는 고홍진(高弘進, 1602~1682)이다.

고홍진은 현재 제주시 이호2동에 있는 ‘오도길’과 관련이 있다. 제주시 이호동 가물개마을에서 고정순의 3남으로 태어난 고홍진의 본관은 제주(濟州)이며, 자는 퇴이(退而)다. ‘가물개 마을’은 이호2동의 옛 지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65세의 늦은 나이에 과거에 합격을 하고 성균관 전적(典籍, 정6품) 벼슬을 지낸 고홍진은 이 때문에 이호2동 주민들에게 ‘고전적’또는 ‘가물개 고선생’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고홍진의 가장 큰 업적은 이원진 목사가 제주의 현황을 기록한 ‘탐라지(耽羅志)’를 편찬할 때 많은 도움을 준 것이다. 일각에서는 고홍진이 탐라지를 직접 편찬했다는 얘기도 있다.

▲ 오도길은 제주시 이호2동 802-4번지에서 1040-1번지 사이 길을 말한다. 이호테우해변 반대편으로 오도마을 복지회관을 찾으면 쉽게 갈 수 있다. 인근에는 대림마트와 음식점 해락원 등이 들어서 있다. 사진은 오도9길로 오른편에 오도마을 복지회관이 있다.

■ 목사 이원진, 고홍진의 재주를 알아보다

고홍진은 본지가 보도했던 명도암 김진용 선생과 관련이 있다. 고홍진 역시 광해군의 실정을 비판하다 제주로 유배온 간옹(艮翁) 이익(李瀷)의 제자이기 때문이다. 효종 때 제주로 부임한 이원진 목사는 간옹 이익과 만났는데, 이 자리에서 고홍진을 보게 된 그는 반계 유형원에게 고홍진을 소개했다. 고홍진은 반계 밑에서 정주학(程朱學)과 사서(史書), 지리학 등을 배워 풍수지리라 불리는 ‘감여술(堪與術)’을 익혔다. 그 후 그는 늦은 나이인 65세에 문영후와 문징후와 함께 문과 병과에 급제했다.

■ 탐라지 간행에 핵심 인물

세종 17년인 1435년 제주목관아는 화재로 소실됐다. 이 때문에 조선이 건국한 후 제주에 관한 공문서와 관아에서 보관하고 있던 고려시대 탐라 관련 기록이 모두 사라졌다.

이에 따라 이원진 목사는 ‘탐라지’를 만들기로 했다. 효종 4년인 1653년 탐라지가 세상에 나올수 있었던 이유는 고홍진의 공이 컸기 때문이다. 탐라지는 제주도에 대한 최초의 읍지일 뿐만 아니라, 내용에 있어서도 상세하고 정확해 제주도의 제반사항을 자세히 파악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라고 한다. 요즘의 말을 빌리자면 발행인이 ‘이원진’목사이고, 집필은 ‘고홍진’이 맡았다고 보면 된다.

탐라지는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과 제주풍토록(濟州風土錄)을 참고해 만들어진 책으로, 제주현과 정의현, 대정현으로 나눠져 있으며 토지의 경계와 도로·풍속·토산품·경작지의 면적 등이 서술돼있다. 또한 창고·학교·향약·사원·과수원·효자·열녀 등에 대한 내용도 담겨있어 당시 지역 사정을 파악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한다.

고홍진의 업적 등이 잘 나와 있는 고전적지(高典籍誌)에는 “이원진은 지식이 뛰어난 학자이지만, 평소 이 방면의 자료를 가지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짧은 기간에 혼자서 많은 자료를 수잡해 탐라지를 편찬할 수 있었던 것은, 고홍진 선생이 있어서 가능하지 않았나 싶다”고 기술돼 있다.

■ 제주고씨-경주김씨-경주이씨는 ‘한 집안’

고홍진의 차남 고상흘은 ‘헌마공신’이라 불리는 김만일의 손녀와 결혼해 경주김씨가(家)와 사돈관계를 맺었다고 한다. 고홍진의 부인은 광산김씨로, 앞서 언급했던 김진용의 일가인 것으로 전해졌다. 고상흘의 아들 고원은 이익이 제주에서 낳은 아들 이인제의 사위로, 이로써 제주고씨와 경주김씨·경주이씨는 ‘한 집안’이 됐다.

■ “생가터 매입한 후 기념회관 지을 예정”

고용천 전적공계종친회 총무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매년 4월 18일마다 할아버지 묘제를 지낸다”며 “할아버지의 업적을 여러 언론사에서 다뤄주고 있어 후손으로써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고 총무는 이어 “종친회 차원에서 10여년전 고전적지를 발간한 바 있다”며 “앞으로 할아버지가 사셨던 생가터를 매입하고, 이 인근에 기념회관을 짓는 등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계획을 전했다.

이와 함께 “제주시 해안동에 있는 할아버지의 묘를 사적지로 지정해 줄 것을 요청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전적공계종친회는 고홍진의 후손들로만 구성됐으며, 고 총무는 현재 제주일고에서 행정실장을 맡고 있다.

종친회가 발간한 ‘고전적지'에는 탐라지 원문과 역문을 비롯해 조상의 뿌리를 후손에 알리기 위해 펴낸 ‘탐라세계록'등이 실렸다.

한편 오도길은 제주시 이호2동 802-4번지에서 1040-1번지에 해당하는 곳으로, 약 0.633km다. 이호테우해변 반대편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 곳을 쉽게 가기 위해서는 ‘오도마을 복지회관’을 찾으면 된다. 오도마을 복지회관은 고홍진의 생가터가 있던 곳으로 알려졌다. 2012년 건립된 오도마을 복지회관 인근에는 해석공예와 대림마트, 그린마트, 음식점 해락원,  등이 들어섰다. 고홍진과 그의 부인의 무덤은 제주시 해안동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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