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부터 시작된 제327회 제주도의회 임시회가 파행(跛行)을 겪고 있다. 이에 따라 설 이전에 추가경정예산 문제가 풀리지 않을까 하던 기대는 점점 멀어지게 됐다. 원인은 제주자치도가 제공했다. 도가 읍면동(자생단체 등)에 배부한 ‘응급민생 추경예산 관련 도민의견 수렴 계획’이 파행의 빌미가 됐다.
제주도는 관련 자료를 통해 “지난해 12월 29일 도의회가 삭감(削減)한 1636억원의 예산을 분석한 결과 국가 직접지원 사업과 법정 경비, 1차 산업 육성 등은 도의회의 삭감사유와 다른 삭감이었다”고 밝혔다. “특히 민생경제 위축 및 서민생활 안정화 사업 등도 대다수 포함되어 정상적인 행정업무 추진에 차질이 발생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일종의 대도민 여론전(戰)이다.
도의회가 발끈했음은 물론이다. 의원들은 “의회가 도민들의 통로 역할을 해주고 있는데 제주도는 의회의 증액을 ‘절대 악(惡)’으로 규정하며 의회의 잘못으로만 몰아가고 있다”고 성토했다. “방대한 공무원 조직을 활용해 여론을 호도(糊塗)하고 있다”고도 말했다.
의원들의 신경을 더욱 자극한 건 5일 열린 도민 토론회 주제(主題)에 ‘응급민생 추경예산 편성의 바람직한 방향 및 범위’와 함께 ‘예산편성?심의 제도의 개선 방향’까지 집어 넣었기 때문이다. 이를 접한 의원들은 “심의 제도 개선은 의회의 고유권한을 침범하겠다는 것”이라며 “이는 의회를 무력화(無力化) 시키겠다는 처사”라고 격앙했다.
예산 삭감의 잘잘못을 떠나 우리는 이와 같은 제주도의 방법에 ‘동의’하지 않는다. 설혹 토론회와 설문조사를 통해 의견을 수렴한다 하더라도 이를 ‘도민들의 집약된 의견’으로 내놓을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정치는 대화와 타협의 산물로, 지방정치도 예외는 아니다. 대의민주주의 원칙 하에서 제주도의 상대는 도의회일 수밖에 없다. 상대방이 마음에 안 든다고 도민들을 직접 설득하겠다는 것은 또 다른 형태의 ‘포퓰리즘’이라 할 수 있다. 지금처럼 ‘갈 데까지 가보자는 것’은 결코 도민들을 위한 길도 아니다. 도와 의회의 ‘정치력 부재(不在)’가 실로 한심하고 안타까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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