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는 세상에 태어날 때 두 손을 쥐고 태어난다. 누군가 말하길 그 불끈 쥔 손에 쥔 것이 외로움이라고 했다. 인간은 외로움을 평생 지니고 살아가다 결국 죽을 때 두 손을 펴며, 그 때 비로소 외로움을 놓게 되는 것이란다. 결국 인간은 평생 외로움을 지니고 살아가야 하는 숙명이다. 그러기에 사람들은 숙명적인 외로움을 극복하려고 사랑이라는 묘약을 찾는다. 사랑을 상대에 대한 하나의 지극한 관심이라고 할 때 외로움은 치유될 수 있다. 서로에게 주는 관심이 지나쳐 오히려 구속을 해도 ‘아름다운 구속’이라며 구속을 사랑의 농도를 재는 척도로 삼아 스스로 위안하기도 한다.
그러나 변덕이 심한 것이 사람이 아니던가. 아름다운 구속도 계속되다 보면 때론 그 사랑에 숨이 막혀 결국 자유를 갈망한다. 사랑과 자유 둘 중에서 하나를 택하려면 하나는 버려야 하는 안타까운 상황이 일어날 수 있다. 사랑을 택하면 자유가 구속되고 자유를 택하면 사랑은 멀어져 간다. 사랑의 농도가 짙을 때의 구속은 사랑에 동화되어 행복했다가, 사랑이 조금 느슨해지면 사소한 일에도 짜증이 나고 상대로부터 벗어나고 싶어하며, 자신의 자유를 속박한다고 느끼기 쉽다. 구속이 인간 본성의 외로움을 끌고 오기 때문인가.
이렇듯 사랑과 자유가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일이란 참으로 어렵다. 이 둘을 조화롭게 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찾을 수 있는 지주대로서 우리는 진리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진리를 발견하며 산다는 것은 사랑과 자유를 동시에 느끼는 탄력 있는 삶을 영위함을 의미한다.
‘사랑이 진리를 깨닫게 한다.’ 이 말은 초기 그리스도교의 교부인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이다. 그는 몰락하는 로마제국 시대에 새로운 ‘사랑이라는 문화’를 역설하며 사람들에게 희망을 불어넣었다. 그는 진리를 탐구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사랑의 대상으로 보았다. 참된 사랑을 깨달을 때에 비로소 진리를 깨닫게 된다는 말이다. 참된 사랑과 진리는 동등한 가치를 지닌 하나의 개념이라는 말로 해석할 수 있다. 1600년 전의 그 말이 지금 시대에도 우리 주변의 아주 사소한 곳에서도 그의 말은 어김없이 적용이 된다.
사랑하는 두 남녀가 있다. 그들이 서로 진정으로 사랑을 하기 전에는 세상이 그저 평범해 보였다. 하지만 서로 사랑을 느끼는 순간부터 기적이 일어난다. 지금까지 보아왔던 세상과는 또 다른 세상을 보게 된 것이다. 오늘의 햇살, 새소리, 나무도 새롭게 보이고, 주위의 사람들도 더 이상 어제까지 생각했던 사람들이 아니다. 모든 것이 아름답게 보이기 시작한다. 사랑의 힘이다. 구속 자체도 구속으로 느끼지 못한다.
그러다 어느 날 무슨 사소한 일로 말다툼이 있었다. 여자는 화가 난 상태로 나무 그늘 밑에 앉아서 생각을 가다듬는다. 흥분이 진정되고 나자 갑자기 외롭다는 생각이 든다. 서러운 마음에 나무에 기대고 앉아 위를 올려다보면 작은 나뭇잎들이 조그만 바람에 흔들거린다. 잎사귀 사이로 파란 하늘이 보인다. 순간 그 흔들리는 나무가 어쩌면 자신과 너무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이해심이 부족한 자신의 모습이 다시 보이고 자꾸 스스로에게 미안해진다.
한숨이 자신도 모르게 흘러나와 땅에 닿기도 전에 무엇인가를 깨닫게 된다. 지친 몸을 받쳐주는 나무기둥. 어떠한 바람에도 흔들림 없이 잎사귀를 받쳐주는 그러한 나무기둥이 바로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과 같다고 생각해본다. 태풍이 몰아쳐서 나무가 꺾이고 누군가가 나무기둥을 자른다고 하더라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한다. 땅 속에 박혀있는 사랑의 뿌리가 깊다면 또 다시 새순이 돋을 것이라는 진리를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다. 새삼 사랑의 의미를 깨달은 여자는 남자에 대한 더욱 깊은 사랑을 추스르게 되고 그 사랑의 뿌리는 더욱 탄탄해진다. 진정한 사랑이 없다면 진리는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으리라.
결국 참사랑이 자연의 진리를 바라볼 수 있게 하고 그로 인해 두 사람은 믿음이 굳어지고 서로에게 참 자유를 나눠준다. 진리를 깨닫기 전의 구속한다는 느낌은 더 이상 없다. 사랑과 자유 사이에서 문제가 생길 때마다 그 가운데에서 진리를 발견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면 삶은 생기가 있고 서로는 서로에게 매력이 있는 존재로서 사랑을 다져나갈 것이다. 참사랑으로 진리를 깨닫는 삶을 누릴 때 우리는 숙명적으로 갖고 태어난 외로움을 죽을 때가 아니라 삶의 가운데에서 마음대로 펴고 쥐는 자유를 느끼게 되지 않을까 싶다.
강 연 옥<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