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 마을에서의 ‘폭압(暴壓)’
강정 마을에서의 ‘폭압(暴壓)’
  • 김계춘
  • 승인 2015.02.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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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온크래드(Ironclad)’는 지난 2011년 개봉된 영화다. 영국 민주주의의 싹을 틔운 마그나 카르타(권리대장전) 발효 직후의 정치 상황을 그리고 있다.

 형인 사자왕(獅子王) 리처드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존(john)은 귀족들의 요구에 못이겨 마그나 카르타에 굴욕적인 서명을 한다. 다소 무능했던 데다 유명무실한 왕으로까지 전락한 존은 이를 무효화시켜 다시 왕권(王權)을 되찾고자 복수에 돌입한다.

 존 왕의 복수는 폭압과 폭정으로 이어졌다. 이에 맞서 자유와 인권을 찾으려고 로체스터 성을 중심으로 항거에 나선 영웅 기사단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게 바로 이 영화다.

 올해 1월의 마지막 날, 강정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태를 보면서 영화 ‘아이온크래드’가 불현듯 생각난 것은 왜일까? 강한 세력의 집단이 약한 세력의 집단을 폭력으로 억압하는 것을 ‘폭압(暴壓)’이라 할 때, 1월 31일 강정마을의 상황은 ‘폭압의 현장’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해군아파트 공사장 입구 앞에 설치된 농성 천막 등을 철거하기 위해 이날 국방부가 감행한 ‘행정대집행’에는 제주지역 및 육지부의 경찰병력 등 무려 1000여명이 투입됐다. 그 속엔 정체불명(正體不明)의 사설 용역 100여명도 끼어 있었다.

 오전 7시30분부터 시작된 대집행에서 이들은 주민과 활동가들을 무차별적으로 끌어냈다. 천주교 신부와 수녀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특히 육지부에서 동원된 사설 용역들은 마치 ‘깡패’ 같이 행동했다.

 아버지뻘 되는 사람에게 입에 담긴 힘든 욕설을 서슴지 않았는가 하면 경찰과 국가인권위원회 관계자들이 보는 앞에서도 마구 폭력을 휘둘렀다. 연좌농성을 하던 양윤모 영화감독도 이들에게 멱살을 잡힌 채 끌려나갔다. 그야말로 ‘무법천지(無法天地)’가 따로 없었다.

 이 과정에서 부상자 및 연행자가 속출했다. 그럼에도 저지 투쟁은 강한 찬바람과 영하권의 체감온도를 보인 밤까지 이어졌다. 급기야 조경철 마을회장과 천주교 신부 등 8명이 온몸에 쇠사슬을 묶고 7m 높이의 망루에서 ‘고공 농성’을 벌이는 극한 상황까지 치달았다.

 무려 14시간 동안이나 계속된 강정 사람들의 저항은 결국 천주교 제주교구 강우일 주교가 중재에 나섬으로써 가까스로 최악(最惡)의 국면은 막았다. 하지만 매우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겼다.

 울분과 통곡, 악몽(惡夢)으로 점철된 이날 하루 ‘강정의 사람들’은 아주 외로웠다. 깡패 같은 용역들이 들이닥쳐 격렬한 몸싸움을 벌이다 부상자가 속출하던 순간에도, 7m 높이의 망루에서 쇠파이프에 의지해 아슬아슬한 농성을 이어갈 때도 그들은 ‘혼자’였다. 걸핏하면 도민대통합을 부르짖고 지역사회의 대변자임을 자인하던 원희룡 지사나 구성지 도의장, 지역 출신 국회의원이나 도의원들의 모습은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우는 사람의 울음을 그치게 하는 것은 같이 울어주는 것이다. 그게 비록 해결책은 아니더라도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마음으로 그들의 처지를 이해해줄 때, 비로소 그들의 응어리도 다소나마 풀리게 되는 법이다. 그러나 겨울바다 칼바람 속 ‘구원의 손길’을 내민 것은 오직 한 사람, 강우일 주교 뿐이었다.

 우리가 해군기지와 관련해서 간과(看過)하지 말아야 할 것은 ‘강정의 저항’이 ‘절차상의 하자’에서 비롯됐다는 점이다. 이번 해군아파트(군 관사) 건만 봐도 그렇다. 원희룡 지사가 세계평화의 섬 10주년을 맞아 ‘평화의 메시지’를 발표하던 날, 불통(不通)의 군 당국은 행정대집행 계고장 발송으로 뒷통수를 치며 찬물을 끼얹었다. 그리고 이를 강행함으로써 그간의 모든 노력들을 물거품으로 돌려버렸다.

  군 당국이 행정대집행을 통해 철거한 것은 단순히 농성 천막만이 아니다. 이로 인해 강정마을 공동체와 미래 제주에 대한 약속, 군과 정부에 대한 믿음이 모두 깨졌다. ‘폭압은 더욱 거센 저항만 키운다’는 것은 역사의 교훈임을 정녕 박근혜 정부만 모른다는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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