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가구', 그 거리의 품위
'거리가구', 그 거리의 품위
  • 김원민 논설위원
  • 승인 2005.05.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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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공게시판, 가로등, 버스정류장, 공중화장실, 공중전화부스, 우체통, 쓰레기통, 식수대, 화분대, 벤치, 보도 블럭, 맨홀 뚜껑…….
 우리가 도시에서 자주 보거나 사용하면서도 무관심하게 지나쳐왔던 거리가구(스트리트 퍼니처, Street Furniture)들이다. 최근 들어 이처럼 사소해 보이는 거리가구(家具)의 디자인이 도시의 아름다움을 결정하는 주요 요소로 등장하고 있다. 거리가구는 도시환경 디자인의 한 요소로서 도시문화를 특색 있게 연출하기도 하고 도시의 활력을 불어넣기도 하는 것이다.

도시의 아름다운 결정

본란에서는 앞서 ‘디자인 도시’의 조건을 제시한 바 있거니와, 도시 속의 거리가구는 디자인 도시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필수적인 요소라 하겠다. 도시의 얼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거리가구 디자인은 도시의 얼굴을 특색 있게 가꾸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 많이 개선되기는 했지만, 이들 거리가구에 대해 실용성만 강조하는 나머지 주변 건물이나 거리와의 조화 등을 이루는 디자인적 특성을 살리려는 시도는 미약하지 않은가 생각된다. 

거리가구의 디자인에 조금 더 신경을 쓰고 조금만 더 투자해도 황량하고 삭막한 콘크리트 정글을 풍요롭고 우아한 환경으로 바꿀 수 있을 터인데 이것이 관심의 적(的)이 되지 못하고 디자인 도시에서 한 발 물러서 있는 듯이 보인다.
연전(年前) 한 조사 결과를 보면 서울시의 경우 거리가구가 시민 편의를 도와주기는커녕 오히려 보행을 방해하거나, 현란한 모양과 색깔로 정보를 알아보기 힘들게 하고, 무질서하게 나열돼 미관을 해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었다. 제주시내 거리가구에 대해서는 이 같은 조사를 한 적이 없어 잘은 모르겠지만, 서울에서의 이런 분석이 제주시내에도 보편적으로 적용될 것으로 본다. 거리가구 디자인이 지역적 특색이 살아나기보다는 어딜 가나 서로 닮은꼴이기 때문이다.

지역 설계사이자 건축가인 알프레드 A. 우드라는 사람은 ‘스트리트 퍼니처의 선택과 설캄라는 저서를 통해 도시 공간의 설비에 있어서 뒷전으로 미뤄졌던 거리가구의 선택과 설치에 대한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거리가구는 집안의 가구와 마찬가지로 선택과 설치방식에 따라 주변 경관과 도시 미관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여백을 많이 주는 현대 건축의 주된 경향도 거리가구의 세심한 선택과 배치를 통해 시각적 아름다움을 이끌어낼 수 있는 방법에 초점을 두고 있다.


사실 거리가구를 선택하는 데는 공감대를 바탕으로 하는 원칙과 기준이 필요한데, 우드는 거리가구의 선정과정에 견고성, 스케일, 재료, 설비, 선별 등 최소한 다섯 가지의 기준을 들고 있다.
 특히 제품의 소재 및 소재가 주는 심리적 영향은 거리가구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예를 들어 같은 크기라도 콘크리트 벤치는 목재 벤치보다 무거워 보이는 데, 이처럼 소재 선정과 크기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소재 및 심리적 영향도 중요  

거리가구 재료와 관련해서는, 언제부터인가 우리 주변에는 통나무 무늬의 콘크리트로 만든 거리가구가 많이 등장하고 있다. 벤치나 정자 등이 그것으로, 이 같은 통나무 무늬 콘크리트는 한낱 눈속임에 불과하며 궁극적으로는 시민을 상대로 한 사기라 할 수밖에 없다.
 거리가구의 품위를 높이려면 그런 ‘가짜’를 추방하고 진짜 통나무를 가지고 디자인해야 하리라 본다. 재료의 특징을 솔직하게 보여주고 그것을 살리는 것이 더 세련된 디자인이란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럴 때 도시도 살아 숨쉬게 되는 것이다. 일본의 경우 통나무 무늬의 콘크리트를 추방하는 운동이 디자인계를 중심으로 펼쳐져 지금은 거리가구에서 이런 재료가 상당 부분 없어졌다고 한다.

이 재료 문제는 하나의 예에 지나지 않다. 이제 제주시도 제주시다운 도시의 특성을 살리는 거리가구 디자인을 창출해야 할 때다.
예컨대, 교량에 돌하르방 조각이나 붙이고 정낭 모양을 따 버스정류장을 디자인했다고 해서 다 훌륭한 제주 적인 거리가구라 할 수는 없을 터이다.
 강조하거니와, 거리가구가 바로 거리의 품위이고 미관이라 할 때 도시환경 디자인에서 거리가구가 차지하는 비중은 결코 가볍지 않다. 삶에 활력소를 주는 도시건설을 위하여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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