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제주사회 급격히 변모
새로운 건물들 도민조차 낯설어
변화 속 ‘제주다움’ 지켜야
‘삼무’ 바탕은 정직?근면?신뢰
강인한 제주여성 투영된 ‘삼다’
지키는 일에 지혜 모을 때
제주사회가 급격하게 변모하고 있다. 최근 1~2년 새 일이다. 시즌과 비시즌의 구분 없이 연중 관광객이 끊이질 않는 것은 물론이고 거주 인구도 토박이보다 이주민 비중이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중국인과 외지인의 부동산 투자 열풍도 거세다. 카페와 고급 레스토랑, 특급 호텔부터 값싼 게스트하우스까지 날마다 새롭게 생겨나는 것들로 여기에 사는 주민들에게조차 제주가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다.
‘제주인’으로서 이런 변화에 휩쓸려 살아도 좋은지 하는 불안과 염려가 가슴을 무겁게 짓누른다. 하지만 변화는 감내해야할 것 같다. 인류의 전 역사를 돌이켜봐도 변화의 흐름을 막을 수 없었다.
그렇다면 무작정 두려워하고 거부하기보다는 ‘제주다움’을 잃지 않는 정체성 지키기가 중요하다. 그리고 그 제주의 정체성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정신과 문화는 ‘삼무’와 ‘삼다’가 아닐까 한다.
도둑?거지?대문이 없다는 ‘삼무의 정신’의 바탕은 정직?근면과 신뢰다. 돌?바람?여자가 많다는 ‘삼다의 문화’는 자연이 내놓은 바람과 돌을 거스르지 않고 도리어 기대어, 자연과 더불어 살아온 제주의 여인네, 그들 중에서도 특히 해녀들이 일구어온 삶의 모습 속에 가장 극명하게 투영되는 것 같다.
제주의 여인들은 바다로 간 남자들과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려 희생당한 남자들을 대신하여 가족과 제주 사회를 지켜온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바다에서의 자맥질도 모자라 돌만 가득한 척박한 땅을 일구어 돌집과 돌담이라는 풍경을 만들고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왔다. 한편으론 마을의 존립과 번영을 위해 사당과 학교를 짓고 미래를 준비하는 등 ‘조냥 정신’과 ‘수눌음 문화’를 진취적으로 만들어왔다.
비록 직접 겪었던 삶은 아니었을지라도 가끔씩 만나는 해녀들과 나이 많은 할머니들을 통해 듣고 알게 된 조냥 정신은 물질적이건 정신적이건 허투루 살지 않으리란 삶에의 외경과도 일맥상통한다. 수눌음 문화는 단순한 품앗이를 넘어 고단하고 쓸쓸한 삶의 무게를 함께 나누어지고 공동의 희망을 키우던 삶의 방식이 아니었을까.
정직?근면과 신뢰를 토대로 한 삼무정신 역시 그동안 제주인의 생활 속에 그대로 녹아든 일상이었건만 어느 샌가부터 슬며시 사라지고 있는 것 같아 너무 안타깝다.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를 아파트는 여기저기 단지가 계속 생겨나도 프리미엄까지 붙어 거래되고 있다. 단독주택들은 저마다 높은 담장과 단단한 철제대문, CCTV로 무장한 채 생겨나는 풍경을 보면서 오히려 도둑을 부르는 것만 같다는 안타까움과 불안감이 들 정도다.
불과 5~6년 전까지만 해도 이러지 않았다. 뜨내기들이 많을 수밖에 없는 오일장 장터가게에서조차 어떡하다 돈이 부족해 고른 물건을 슬며시 내려놓을라치면 이름도 연락처도 묻지 않고 다음에 와서 갚으라며 외상을 주곤 했다. 제주시내 구도심 지하상가에서도 처음 보는 사람이었건만 믿고 외상으로 덥석 쥐어주던 물건을 받았던 경험도 있다. 물론 거기서도 “어디 사는 누구냐”고 묻지 않았다.
그만큼 제주사회가 든든한 신뢰와 정직성을 기초로 세워진 곳이었다는 생각을 새삼 하면서 아직도 그런 믿음이 남아있을까 스스로 묻곤 한다. 친지도 친구도 하나 없는 ‘낯선 땅’에 와서 살게 된 필자에게 신뢰에 바탕을 둔 제주인들의 따뜻함과 소박함은 너무나 큰 감동이자 제주를 사랑하고, 나그네가 아닌 주인으로 살 수 있게 해준 원동력이었다.
제주에선 ‘한 사람만 건너면 사돈에 팔촌’이라는 사실이 때론 관계성 때문에 부담스럽고 답답하다고 여긴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런 ‘투명성’이 오랫동안 제주사회를 지키고 유지해온 저력이자 문화의 축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근래에 와서 빠르게 망가지고 망각돼가고 있는 제주만 가진 독특하고 유일한 정신과 문화 유산인 ‘삼다’와 ‘삼무’를 더 늦기 전에 지키고 다시 세우는 일에 제주인의 지혜와 힘을 모아야 할 때가 아닌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