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희룡 지사가 또 구설(口舌)에 올랐다. 이번엔 ‘제주 4·3’과 관련된 발언 때문이다.
원 지사는 지난 23일 MBC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4·3희생자 문제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날 원 지사는 “헌법재판소 기준에서도 4·3희생자에 들어갈 수 없는 일부 사람들의 위패(位牌)가 봉안돼 있는 게 아니냐는 문제가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대통령께 이들에 대한 추념(追念)을 강요하는 상황은 바람직스럽지 않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최근 행정자치부 정종섭 장관과 정재근 차관의 발언과 같은 맥락(脈絡)이다. 정 장관은 이달 15일 안중근 기념관을 방문한 자리에서 “4·3희생자로 지정된 일부 인사가 ‘무장대 수괴(首魁)급’이라는 논란이 해소되지 않고는 대통령의 위령제 참석이 어렵다”고 말한 바 있다.
원 지사의 발언을 접한 새정치민주연합 제주도당이 발끈하고 나섰음은 물론이다. 이들은 논평을 통해 “4·3희생자 결정은 과거 김대중·노무현 정부뿐만 아니라 이명박 정권하에서도 이뤄진 국가차원의 결정”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사안에 도지사가 나서서 재심사 필요성을 언급한 것은 그 자체로 매우 부적절하고 잘못된 것”이라며 강하게 성토했다.
소방수를 자처한 것은 역시 제주자치도였다. 도는 보도자료를 내고 “원 지사의 발언 중에는 ‘4·3 재심사’라는 단어가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오히려 “새정치연합이 갈등 재연을 유도하는 논평을 내는 저의가 의심스럽다”며 “원 지사 발언의 강조점은 논란을 빨리 종식시키고 갈등을 마무리 짓자는 것이었다”고 해명했다.
기실 원희룡 지사의 ‘발언 파문’은 한 두번이 아니다. 이달 9일 “환경을 파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국제적인 수준의 카지노 2~3개 정도는 있어야 한다”는 북경(北京) 발언도 논란의 대상이었다. 당시 새정치연합은 “원 지사의 발언은 그동안의 신규 카지노 불허 입장이 허언(虛言)에 불과 했음을 보여준다”며 ‘도민을 우롱한 말바꾸기’로 규정했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지난해 연말엔 원 지사의 ‘도의원 폄하 발언’(KBS 라디오)으로 제주도의회와 극한 대립 상황까지 치달았다. “일부 지나친 표현으로 말미암아 본의 아니게 도의원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렸다”는 원 지사의 공식 사과로 일단 불은 껐지만 그 파장(波長)은 너무 컸다. 결국 이 사안은 2015년도 예산안 심사에까지 영향을 미쳐 사상 최대 규모의 예산 삭감이라는 결과로 이어지며 집행부와 도의회의 발목을 잡는 ‘대형 악재’로 변질돼 있는 상태다.
앞서 열거한 사례들은 양측의 주장이 엇갈리고 정치쟁점화 된 부분도 많아 정확한 판단은 잠시 뒤로 미룬다. 하지만 원 지사가 지난해 12월 중순 일본의 3대(大) 일간지 중 하나인 마이니치신문(每日新聞)과 가진 인터뷰는 사정이 다르다.
원 지사는 인터뷰에서 제주신화역사공원에 홍콩 란딩그룹과 싱가포르 겐팅그룹이 추진중인 카지노 복합리조트사업인 ‘리조트월드 제주’를 구체적으로 언급하며, “향후 제주의 모델케이스가 될 것”이라고 추켜세웠다. 경제효과와 직접 고용 수치까지도 구체적으로 거론했다.
문제는 제주신화역사공원의 경우 정작 ‘신화’와 ‘역사’가 빠져 정체성(正體性) 논란이 일고 있는데다, 아직 허가는 커녕 관련 계획에도 포함되지 않은 카지노 사업을 ‘기정사실화’ 하고 있다는 점이다. 카지노 정책과 관련 원 지사의 ‘복심(腹心)’이 매우 궁금한 이유다.
이같은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면 논란의 대상이 된 원희룡 지사의 발언은 단순한 말 실수로 보기 어렵다. 어느 정도 의도된 것으로 일종의 ‘언론 플레이’라 할 수 있다.
언론 플레이도 때론 필요하다. 그러나 이게 반복되거나 갈등을 조장하는 요인으로 작용하면 독(毒)이 될 뿐이다. 지금 도민들은 가죽신을 신고 발바닥을 긁는 ‘격화소양(隔靴搔癢)’이 아니라 진정성을 갖고 매사에 임하는 일꾼을 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