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갑(甲)질이 사람들 입에 많이 오르내린다. 을(乙)을 타박하는 우월한 상대방의 횡포를 일컫는 말이다. 상하관계가 뚜렷할수록 갑질의 강도도 세다.
군대의 예다. 모두가 평등한 군대란 상상할 수 없다. 처음부터 계급으로 갑과 을의 관계를 설정해 놓고 출발하는 곳이다. 갑질하는 갑은 리더십 없는 자기는 돌아보지 않고 졸병인 을들을 타박하면서 목표를 달성해 내라고 야단친다. 그리고 실패하면 을들만 달달 볶는다. 여기서 을들은 좌절하며 갑질하는 사회를 원망하게 된다.
그런데 문제가 단순하지 않다. 갑질하는 상관을 원망하던 을들도 시간이 지나 갑의 위치에 올라가면 예전의 갑을 능가하는 갑질을 하는 경우가 많다. 군대를 다녀 온 사람들은 안다. 졸병 때 갑질에 서러움을 당한 탓에 고참이 되면 절대로 갑질하지 않겠다고 했던 그 을이, 갑이 되자마자 ‘악랄한’ 갑질을 해댔다.
필자는 ‘갑질’ 얘기를 들을 때마다 현진건의 소설 ‘술 권하는 사회’를 떠올린다. 소설에서 남편이 지목한 술을 권하게 하는 주체는 답답한 사회 현실이지만 아내는 남편과 술을 같이 먹는 동료들이 주체라고 보았다.
구체적 개인의 차원에서 볼 때 술 권하는 주체는 어울려 술을 먹는 동료들이지만, 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술을 안 먹을 수 없도록 만드는 사회 그 자체가 술 권하는 주체이다. 갑질도 구체적 개인의 차원에서 보면, 갑질을 당한 을에게 좌절감을 안겨주는 갑의 개인적 행동이지만, 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그런 갑질 자체가 사회적으로 만연하여 대다수가 을인 일반 국민들을 절망하게 만드는 그런 구조적인 문제가 아닐까 한다.
갑질하는 사람 개인보다 사회 그 자체의 문제가 심각하다는 얘기다. 사회 전반에 고착화된 행동방식, 합리적 의사소통보다는 개인들의 사고와 행동을 지배하는 이미 만들어진 틀들이 갑질의 근원이라고 생각한다. 술 권하는 사회는 우리들 자신 밖에 떨어져 존재하는 외계가 아니라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남이 고쳐야 할 문제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고쳐야 할 자신의 문제다.
갑질 논란을 볼 때마다 최근 제주 사회에 많은 이슈들을 몰고 온 중국자본․카지노․외국의료기관 등 외국인 투자 논란을 떠올린다. 우리들 의식 속에는 외국 자본의 침략, 문화정체성 훼손, 개발은 환경파괴, 도박천국 등이 이미 구조화 되어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터줏대감이고 외국인들은 우리 터를 빼앗는 침략자로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이 구조화된 의식이 제주 사회 전반을 지배하면서 중국자본을 비롯한 투자자들을 을의 위치에서 타박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구체적으로 사업의 내용과 제주에 돌아오는 이익을 분석하고 상생협력 방안을 찾아보는 합리적이고 실사구시적인 태도보다는 상대를 막아야 할 무서운 적으로 여기는 틀이 지워져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점들이다. 고착화된 의식틀, 선입견이 자리 잡는 곳에는 합리적 의사소통이 설 자리가 없고, 불합리한 갑질이 자리 잡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곤 한다.
역지사지가 해결의 출발점이다. 서로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한다는 말인데, 갑을관계로 인해 갈등이 발생하는 곳에 이 구절은 언제나 훌륭한 지침이 된다. 처지를 바꿔도 모두 다 그렇다는 것인데, 나든 누구든 지금 그 처지에서 똑같은 행동이 나온다면 그 행동은 갑질이 아니고 합리적 이성에 기초한 보편적 준칙에 들어맞는 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여러 가지 이슈, 문제, 논란, 갑론을박에 대해 선입견으로 다가가지 말고, 합리적 사고와 실사구시적인 태도로 접근해야만 우리 스스로 갑질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제주인의 입장에서만 제주를 바라보지 말고, 글로벌 스탠다드의 관점에서 제주를 바라보고 객관화하는 것도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