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집행부-도의회 대립 여전
먼저 양보하면 지는 ‘치킨게임’
고생하는 것은 결국 도민들
추경 합의 발표가 바람직
“아기를 둘로 나눌 수는 없다”
‘친모’ 마음 가진 행동 있어야
상상 그 이상이다. 대규모 삭감으로 빚어진 제주특별자치도와 제주도의회간의 ‘예산 전쟁’ 후폭풍이다. 1636억3900만원에 달하는 삭감 규모 때문이다. 2015년 제주도 예산안 3조8194억원의 4.28%나 된다. 전국 광역단체 평균 감액비율 0.37%의 11.5배를 넘는다.
이러다보니 자르지 말아야할 예산까지 대거 잘려나갔다. 노인·장애인·다문화·보훈단체 등 사회복지 예산 등이 ‘희생양’이다. 1차산업분야도 예외가 아니다. “집행부도 아파봐라”며 자른 예산으로 인한 아픔이 도민·서민, 그리고 사회적 약자에게 더 크게 다가오고 있다.
사회복지·농민단체와 4·3단체 등이 예산사태를 규탄하고 있다. 의회 내부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높다. 위성곤·강경식 의원은 “사태를 초래한 도의회 구성원의 한사람으로 죄송하다”며 ‘공식적인 반성문’을 발표했다. 이외에도 다수 의원들이 도의회 예산결산위원회를 무시하고 주도적인 소수에 의해 이뤄진 이번 사태를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심지어 원희룡 도지사와 구성지 도의장의 ‘친정’인 새누리당 제주도당까지 나섰다. 새누리당 도당은 12일 “도와 도의회의 이전투구 양상에 고개를 들 수 없다”며 도민생활과 직결된 민생예산에 대한 집행부의 추경제출과 도의회의 조건 없는 수용을 촉구했다.
사태의 발단은 ‘눈에는 눈’이라는 식으로 맞받아친 아주 비이성적인 대응이다. ‘예산심의 과정에서의 임의증액 금지’ 등 원칙으로 버티는 집행부에 막혀 도의회가 ‘임의로’ 증액한 408억원을 확보할 수 없게 된 데 따른 일종의 복수였다. 한마디로 못 먹는 감 찌른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집행부도 ‘50보 100보’라는 점이다. 이번 사태와 관련, ‘제주도 50보, 도의회 100보’라며 그래도 도의회의 잘못이 조금 더 함을 지적했었지만 집행부도 비슷해져버렸다. 도의회가 ‘눈에는 눈’ 하니 ‘이에는 이’ 한 격이다. 원 지사의 예산안 심의결과 수용 방침이 그것이다. 의회가 의결한 것인 만큼 존중한다는 ‘원칙론’ 뒤로 민생예산 삭감에 따른 도민들의 아픔이 강요됐다.
고래 싸움에 끼여 등 터지는 새우, 서민·사회적 약자들의 아픔이 간과되고 있음은 개탄할 일이다. 그리고 공무원들은 예산 없어 일을 덜해도 월급은 나올 것이고, 의원들도 의정활동비를 받는 데 큰 지장이 없다. 싸우는 사람들은 아쉬울 게 없고 지켜보는 도민들만 죽을 맛이다.
집행부나 도의회도 도민들의 어려움을 모를 리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먼저 자세를 낮추지는 않고 있다. 상대방에 대한 손가락질뿐이다. 결국 두 기관이 마주보고 달리는 자동차처럼 ‘치킨게임(game of chicken)’을 하는 셈이다.
누구도 핸들을 돌리지 않으면 정면충돌, 둘 다 죽는다. 그래서 누군가는 핸들을 돌려야 하는 ‘절대성’을 인식하면서도 상대방 탓만 하고 있다. 먼저 핸들을 돌려 충돌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막았더라도 패자가 되기 때문이다. 결국 가장 바람직한 일은 둘 다 동시에 핸들을 돌리는 일이다.
그렇다면 예산사태를 두고 마주 달리는 집행부와 도의회에 대한 해법도 나온다. 도민사회는 물론 정치권에서도 요구하는 조기추경을 동시에 입을 맞춰 추진하는 것이다. “우리는 직진했어”라고 내세울 수는 없지만 핸들을 먼저 돌린 ‘겁쟁이’도 되지 않기에 ‘훌륭한’ 차선이다. 둘 다 살고, 서로 겁쟁이라 비난하지 못하니 ‘상생’ 차원에서 보면 최선일 수도 있다.
만일 ‘상생의 최선’이 힘들다면 도의회나 집행부 가운데 누구든 ‘겁쟁이’가 될 것을 주문한다. 이스라엘 왕 솔로몬의 지혜에 정답이 있다. 법정에서 아기를 놓고 자기가 엄마임을 주장하는 두 여인 가운데 “아기를 반으로 잘라 나누라”는 판결에 울면서 아기를 포기한 ‘진짜’ 친모의 마음이면 된다.
이것이다. 아기를 포기해서 아기를 얻은 친모처럼 핸들을 먼저 돌린 쪽, 결국은 그 쪽이 승자다. 도민들의 어려움을 풀기 위해 기관의 자존심을 버리고 먼저 추경을 제의하면 도민들의 마음을 얻을 것이다. 예산안에 대한 재의와 추경 등 설이 많이 오가는 제주의 상황에서, ‘솔로몬’은 친모의 마음을 가진 행동을 원하고 있음을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