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에 생각나는 것들
5월에 생각나는 것들
  • 제주타임스
  • 승인 2005.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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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은 참으로 신명나는 달이다. 어느 시인은 5월을 ‘푸른 하늘만 우러러 보아도 가슴이 울렁거리는 희망의 계절’이라고 노래했다. 그렇다. 신록이 펼쳐지는 5월은 분명히 계절의 여왕이다. 맑은 공기와 싱그러운 숲은 우리를 마냥 즐겁게 해준다.
 그래서인지 5월엔 기념하는 날도 많다. 1일 ‘근로자의 날’을 시작으로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성년의 날’에 이르기까지 모두 좋은 날들이다. 하지만 5월은 우리를 슬프게 하기도 한다. ‘5.16’ ‘5.17’ ‘5.18’로 이어지는 암울한 역사도 함께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5.16은 한때 ‘군사혁명’이라는 이름 아래 온갖 미사여구로 칭송되기도 하였지만, 지금은 단순히 ‘쿠데타’로 낙인(烙印)된 채 초라하게 불리 우고 있다. 여기에는 ‘합헌(合憲)정권을 물리적인 힘으로 탈취하였을 뿐만 아니라, 철권 강압에 의한 영구집권을 획책하다 끝내는 유신독재통치로 종말을 맞았다’는 이유가 들어있다. 이런 점에서 터무니없는 내란음모죄를 적용하여 수많은 민주인사를 검거한 5.17이나, 민주화 운동을 무력으로 진압한 5.18은 5.16과 그 맥락을 같이한다고 볼 수 있을 터이다.

 5.18의 아픔. 그 광주의 고통도 이제 벌써 25주년, 4반세기가 되었다. 광주 민주항쟁이 오늘날 민주화의 밑거름이 됐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아직도 미움과 한(恨)의 앙금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단 하나밖에 없는 고귀한 생명을 잃은 슬픔이 쉽게 가실 수 있으랴만, 보다 더 비참함을 금치 못하는 것은 ‘상처는 있으되 가해자는 없다’는 데 있다. 과오를 저지른 자들, 누구하나 사죄를 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구차한 변명만을 늘어놓고 있을 뿐이다.

당시 실권을 장악하고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력을 휘두르던 자들이 나서서 속 시원히 용서를 구해야 한다. 더욱이 과거사를 규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요즘 아닌가.
 차제에 우리 제주도에서 끈질기게 계속 사용되고 있는 ‘5.16도로’라는 명칭도 과감히 바꾸어야 한다. 중·고등학교 국사교재를 비롯한 각종 교과서와 자료에 5.16을 ‘쿠데타’로 표기한지도 10년이 되고 있다. 현재 전국적으로 5.16이라는 용어를 쓰고 있는 예(例)는 ‘5.16 민족상’ 뿐이다. 유독 우리 제주도에서만, 그것도 절경(絶景)을 뽐내는 도로에 쿠데타라는 불명예스러운 명칭을 붙여놓고 있다.

 제주도 당국은 15년 전인 1990년에 들어서 도내 주요 도로의 이름을 한차례 바꾸거나 새로 명명한바 있다. 이때 한라산 ‘제2횡단도로’는 ‘1100고지 도로’로 변경되었다. 그럼에도 제1횡단도로였던 ‘5.16도로’는 왜 그대로 두었는지 도무지 모를 노릇이다.
 혹자는 ‘역사성’ 운운하지만, 제주도와 5.16은 전혀 관계가 없다. 5.16후에 건설된 도로여서 상징적으로 붙였다는 설도 있으나, 이것 역시 잘못된 것이다. 이 도로는 광복되기 훨씬 이전인 1934년에 이미 임도(林道)로 개설돼 이용하여 왔다.


 봄의 신록(新綠), 여름의 녹음(綠陰), 가을의 단풍(丹楓), 겨울의 설경(雪景), 4계절 어느 때를 막론하고 항상 아름다움으로 우리를 반겨 주는 이 도로를, 대자연에 부끄럽지 않을 명칭으로 바꾸어 주어야 한다. 그렇다고 5.16을 부정만 하려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현대사에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어쨌든 5.16의 공과(功過)는 후세 사가의 평가에 맡기기로 하고, 신비감 마저 풍기는 이 도로를 하루속히 ‘쿠데타’의 멍에에서 벗겨주었으면 한다.


 영국에서는 도로의 이름을 붙일 때도 문화재처럼 신중하게 작명한다고 한다. 제주도가 할 일이 너무 많아 이런데 까지 관심을 기울일 여유는 충분치 못하겠지만, 그러나 한라산 기슭의 자랑스러운 이 길을 명예로운 도로로 회복시켜주는 일도 언젠가는 해야할 일이 아니겠는가.

이 용 길<제주산업정보대학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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