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의 땅을 온 육신으로 일구어 흙과 하나된 저 제주의 할머니, 저분이 스러지면 누가 이 대지를 어루만질 것인가?”라고 절규한 것은 강요배 화백이다. 그는 이어 “빈 밭에 마른 짚이 다 타고 날 즈음, 갈 하늬바람 맞은 저녁하늘이 서천 꽃구름을 피워 올리면 저 황야에 지천으로 솟아나 어둠을 휘젓는 하얀 억새꽃 무리”라며 바람 부는 고향을 읊조렸다. 그리고 북한을 다녀와서는 “금강산의 인상은 그 안에 피운 금강초롱꽃의 얼굴처럼 풋풋하고 순수했다. 신선과 선녀들이 노닐고, 일만 이천의 나한과 보살들이 금강계를 펼친다는 그곳은 어쩌면 마음의 경지인 듯도 하다”며 격한 감정을 토로하였다.
미술평론가 유홍준은 “강요배의 풍경화는 인간과 마찬가지의 삶과 역사가 담겨 있는 실체이며, 그것을 계기로 해서 일어나는 은은한 관조, 철학적 명상을 지향한다고 말할 수 있다”고 후한 평을 하였다. 제주 역사에 뜨거운 사랑을 보여주며, 4.3 연작‘동백꽃 지다’로 유명한 강요배의 ‘설송도’가 청와대에 걸렸다는 소식이 들리더니, 최근에는 국회에서도 그의‘금강전도’‘한라산 물매화’등을 구매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특히 ‘설송도’는 작가가 탐라계곡 소나무를 보고 난 뒤 느낌을 그린 작품이며, 작가는 모진 세파를 당당하게 이겨내고 꿋꿋한 생명력을 간직한다는 강인함이 베어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우리는 여기에서, 저 유명한 파블로 피카소의 최대 걸작 ‘게르니카’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작품은 1937년 4월 26일 스페인의 소도시 게르니카가 독일 공군기에 의해 무차별 폭격을 받아 폐허가 된 현장을 담고 있는 그림이다. 당시 프랑스에 있던 피카소는 조국에서 벌어진 학살행위에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껴 한 달 반만에 거작 ‘게르니카’를 완성하였다.
강요백도 그 시절, 해방공간에서 고향에서 자행된 폭력과 만행을 작품화하고 있다.
우리는 또, 콜롬비아 화가 페르난도 보테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최근 이라크 아부 그라이브 수용소의 미군의 포로 학대를 생생하게 고발하는 이라크판 ‘게르니카’를 완성하여 세인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의 작품에는, 벌거벗은 포로들이 눈을 가리운 채, 차가운 바닥에 쓰레기더미처럼 쌓아올려지고 있었으며, 상처에서 흐르는 피가 몸을 타고 흘러 화면 가득 핏빛으로 토해내는 장면으로 가득하다. 작품 속 포로들은 미군 병사가 휘두르는 곤봉에 얻어맞아 신음하고, 여자 속옷 차림으로 감당하기 힘든 성적 굴욕을 당하는 장면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현재 그의 작품 전시회가 세계곳곳에서 계획되고 있으며, 로마에서 6월 16일부터, 올해 말에는 독일에서, 내년에는 미국에서도 열릴 예정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그는 분명, 전 세계가 폭력과 만행이 무참하게 짓밟고 지나간 현장을 잊지 말자는 뜻에서 그림을 그렸다고 고백하고 있다. 강요배 역시 국가의 폭력과 만행을 향하여, 그림으로 발언하고 있다.
피카소가 없었더라면 누가 게르니카의 학살을 기억하고 있겠는가? 보테르가 없었더라면 누가 이라크판 ‘게르니카’를 완성할 것인가? 강요배의 4·3연작이야말로 제주도판 ‘게르니카’가 분명하다.
민중미술 장르에 연작 역사화라는 새로운 갈래를 창출한 독보적 작품을 그려내고 있는 그는 “마치 큰 나무가 속살 속에 시간과 내력이 응축된 나이테를 품고 자라듯 우린 역사로부터 벗어날 수도 또 그것을 망각 할 수도 없는 중심적으로 내포해야 하는 것으로 근원적으로 자기의 정체성 정립에 필수적인 일로 4·3을 그림으로 탐구했다”고 고백하였다. 이제 그의 풍경화들은 웬만한 역사책의 서술을 훌쩍 뛰어 넘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역사의 무게와 깊이를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
김 관 후<북제주군문화원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