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상 초유의 예산 삭감 사태로 각종 민생 예산들이 묶여 있지만 제주특별자치도는 원칙만을 내세우며 ‘예산 개혁’만을 주장하고 있어 도민사회의 전반적인 피해가 우려된다.
박정하 제주도 정무부지사는 5일 제주도청 기자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뼈를 깎는 노력으로 예산 개혁에 앞장서 비정상화의 정상화를 실천하겠다”며 “올해를 예산 개혁 원년으로 선포한다”고 밝혔다.
박정하 부지사는 이날 “(제주도의회의) 행정경비 예산에 대한 유래 없는 삭감은 기존 지출 관행을 개선하라는 도민의 명령으로 받아들여 고강도 예산절감을 추진하겠다”며 “보조금은 성과 평가와 책임소재를 확실히 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조금 지원 원칙을 만들어 효율을 높이겠다”고 말했다.
제주도는 그러나 민생 사업 추진을 위한 ‘추가경정예산’(추경) 논의에 대해서는 검토하지 않고 있어 도의회와의 예산 전쟁의 피해가 도민들에게 돌아가는 상황을 초래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실제, 농가에서 가공용 감귤을 팔아 받는 1kg당 160원 중 50원을 보존해주는 ‘가공용 감귤수매보전사업’ 예산 50억원 중 49억원이 삭감돼 가공용 감귤 수매사업이 중단될 위기에 놓였다. 감귤 간벌 사업(2억원) 역시 이달부터 작업에 들어가야 하지만 전액 삭감됐다.
또 장애인·노인 단체 등에 대한 운영비 지원도 일괄 50% 삭감된 데다 감귤출하연합회를 비롯해 육아종합지원센터, 장애아동통합보육지원센터 운영비와 출산육아용품 대여사업 등에 대한 지원도 전액 또는 일부 삭감되면서 인건비조차 내치기 어려운 상태다.
제주의료원의 경우 출연금 15억원 중 8억5000만원이 감액돼 약품대 등을 우선 외상으로 구매해야할 판이고, 올해 추진되는 광어 생산이력제 지원 사업과 노후 소방차량 성능개선 해체장비 지원도 전액 깎여 사업 추진이 불가능한 형편이다.
이와 함께 버스와 택시 등을 대상으로 한 유류세 연동 보조금의 경우도 국고에서 지방비로 전입돼 지급하는 것이지만, 전체 예산의 절반이 감액돼 정상적인 집행을 위해서는 추경이 시급한 상황이다.
제주도 공무원들 사이에서도 예산 삭감 사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추경’이 시급하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제주도는 현재 삭감된 법정필수경비(24건·197억원)와 국비 보조사업의 지방비 부담 분(50건·269억원) 중에서도 법률적 근거가 있고 재의요구가 가능한 부분에 대해서만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강호진 제주주민자치연대 집행위원장은 이와 관련 “제주도와 도의회의 예산 싸움으로 인해 도민들만 피해를 보고 있다”며 “급한 불을 꺼야 하는 것은 집행부(제주도)인 만큼 추경을 빨리 편성해 시급한 사업을 해결해 놓은 뒤 예산 개혁을 이야기하는 것이 순서상으로 맞다”고 강조했다.
강 집행위원장은 이어 “또 다시 예산 삭감에 대한 도의회 책임론을 이야기하며 물고 늘어지는 느낌으로 간다면 원희룡 도정을 바라보는 도민들의 기대치는 더 떨어지기만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