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시장 ‘12척 리더십’ 필요하다
행정시장 ‘12척 리더십’ 필요하다
  • 제주매일
  • 승인 2015.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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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경훈 편집부국장

“행정시장은 도청 과장급보다도 못한 자리다.” 김영훈 전 제주시장이 8년 전 한 말이다. 행정시장의 한계를 토로한 것이다. 그는 특별자치도 출범 직전 민선 시장에 이어 첫 행정시장에 올랐다. 그의 푸념은 행정시(장) 위상과 관련해 지금까지도 회자된다.

그의 말처럼 현실이 과연 그럴까. 행정시 위상이 시․군 통합 이전보다 떨어진 건 사실이다. 자치권이 없으니 당연지사다. 임명직 시장의 파워가 선출직과 같을 수는 없다.

그러나 시장직을 도청 과장(課長)과 비교한 것은 그야말로 과장(誇張)이다. 당시 김 시장의 속내도 그게 아니었을 거다.

행정시장은 막강한 자리다. 제주시만 해도 지난해 예산규모가 1조원을 넘었다. 시장 의지대로 운용할 수 있는 재원도 100억원 가까이 된다고 한다.

지난 연말 도의원 1인당 재량사업비(의원공약사업비+의원사업비) 20억원 문제로 제주사회가 시끄러웠다. 도의원 41명이 똘똘 뭉쳤어도 결국은 관철시키지 못했다. 단순 비교에 무리가 있지만 행정시장의 위상이 간단치 않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행정시장은 허수아비가 아니다. 예산․인사권에 제약이 있지만 의지만 있다면 자신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직책이다.

문제는 그런 행정시장이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느냐이다. 시·군 통합 이후 행정시에 대해 “조직이 활력을 잃었다” “일에 대한 열정이 식었다”는 지적이 많다. 창의적 시책 개발능력을 상실한 것이 이를 반증한다. 기초자치단체 시절 제주시는 시책 개발에서 발군의 실적을 거뒀다. ‘클린하우스제’ ‘차고지증명제’ 등이 대표적이다. 전국에서 처음 시행된 클린우스제는 도내 쓰레기수거 시스템으로 자리를 잡았다. 역시 전국 최초인 차고지증명제는 주차난을 예상한 적절한 정책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행정시 체제에선 이렇다 할 시책 개발이 없었다. 시책 개발능력이 시들해져 버렸다. 예산권 등 행정시 권한 및 기능 약화가 그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일견 맞는 분석이다.

그러나 자치권․예산권이 없다고 시책 개발을 못하는 것은 아니다. 의지만 있다면 가능하다. 근본적으로는 행정시장의 역할이 미흡했기 때문이다. “신(臣)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 있사옵니다”며 몸을 던진 이순신 장군과 같은 긍정과 도전의 리더십을 보인 행정시장이 없었었던 것이다. 자치권․예산권이 없는 것을 방패삼아 현실에 안주하는 ‘관리형’ 시장이 대부분이었다고 본다. 시장의 처신이 이러하면 행정시 기능과 권한을 강화해도 허사다.

 

행정시장의 위상은 스스로 높여야 한다. 남이 밥상 차려주길 기다리기만 해선 안 된다. 도에 요구할 것은 과감히 요구해야 한다. 때론 쓴소리도 해야 한다. 행정시장은 일반 공무원과 다르다. 자신만의 분명한 정치철학과 자기 색깔이 필요하다.

“용장(勇壯) 밑에 약졸(弱卒)은 없다”고 했다. 2002월드컵 스페인전 때 히딩크 감독이 심판 판정에 웃옷을 벗어던지며 불만을 표출했던 장면이 아직도 선하다. 이는 선수들을 분발시키기 위한 고도의 전략이었다.

시장이 소신을 가지고 강한 모습을 보여야 직원들이 믿고 따른다. 김영훈 시장은 ‘과장보다 못한 행정시장’이란 말 한마디로 존재감을 과시했다.

김병립 제주시장은 3년 만에 다시 시장직을 수행하고 있다. 특별차지도 출범 이후 재임(再任) 행정시장은 그가 처음이다. 시의원․도의원(2선)까지 지낸 그다. 흔치 않은 관운(官運)이다. 그는 취임 기자회견에서 “시대에 적합하지 않은 인물이라는 지적이 있는 것을 안다”며 “더 잘하라는 채찍으로 알고 역할을 제대로 하겠다”고 밝혔다. 그 각오처럼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 ‘구관이 명관’임을 증명해야 한다. 시정의 적폐와 부조리를 해소해야 한다. 제주시를 보다 역동적인 조직으로 탈바꿈시켜야 한다. 을미년 새해 제주시정이 기대해 볼만 하다는 희망을 주기를 기대한다. 그것은 김 시장이 하기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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