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해가 가고…, 한 해가 오고…” 그 문턱에 섰다. 출근 길 떠오르는 태양이 오늘 따라 유난히 붉게 보인다. 모처럼 따스한 햇살을 받고 있는 차창 밖 전경들이 다정하게 다가온다. 철따라 제 색을 내는 대학로의 벚나무 가로수, 광장, 그 너머 동쪽으로 난 길에 나무 한 그루, 차 한 대 또 나무. 영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식물과 기계의 조화가 멀리서 보니 그림이다.
한기로 시린 듯 채 떨구지 못하고 공기방울처럼 매달고 있는 감나무 앞을 지나 동백길로 들어선다. 그 동안 많은 꽃을 피웠을 동백 몇 그루에는 봉오리들이 안 보인다. 열흘 남짓 남은 마지막 근무처에서의 단상을 추억의 상자에다 꼭꼭 담아볼 요량이다.
개인적으로 직장생활 30여년. 종점에 도착하고 보니 참으로 감사함이 녹아난 길이었다. 그 길로 아이 셋 키우며 이 자리까지 무사히 왔다. 일터에서 좋은 사람들과 많은 인연을 맺었다. 대학원도 다녔다. 아직은 많이 모자라지만 글·사진 공부도 한다. 그 가운데서 세상을 배우고 자연을 배우며 나도 알아갔다. 걸어온 길에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니 아쉬움은 덜하다. 오직 다가오는 시간은 그동안 하고 싶었던 책 쓰는 일에 바람만난 알바트로스의 날개처럼 그 바람을 타고 날고 싶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틈날 때마다 후배들에게 말한다. “세상 밖으로 전진하라. 시간은 누구에게나 꼭 같이 주어지는 것. 직장일로 가사일로 바쁘다는 것은 핑계일 뿐. 길 다면 아주 긴 24시간을 균형 있게 잘 쓰면 그 시간은 자신의 것이 되더라고.” 일주일에 최소 2번은 무언가 배우러 다녔다. 주말 하루는 꽃집과 도서관 가는 날로 정해 흐트러진 마음을 정리했다.
또한 나는 말한다. 어떠한 환경에서도 ‘되겠지’하는 긍정적인 삶을 살자. 우리의 고전에서 “허허 웃으니 수가 보인다”는 말이 있다. 정도전의 ‘삼봉집’ 중 ‘무열산인 극복루기 후설’ 편 내용이다.
조선의 개국공신 정도전에게 나주 지역에 사는 조생박이라는 손님이 찾아와 ‘극복루(克復樓)’라고 쓰인 표제의 기문을 꺼내 보인다. “보통사람들이 누각을 귀하게 여기는 까닭이 무엇입니까” “높은 곳에 오르면 먼 데를 바라볼 수가 있기 때문이지요. 이는 눈과 마음을 쉬게 하며 유람의 즐거움을 돕습니다” “하온데 어째서 이 누각을 ‘극복’이라 명명한 것일까요? 누에서 대관절 무엇을 취하란 말인가요?”
정도전은 입을 뗐다. “모름지기 사람은 근심과 즐거움은 마음에 달려있다네. 마음이 근심이 매여 있으면 아무리 산수풍월을 만난다 해도 슬프게만 느껴지는 법, 진귀하고 멋진 경관을 가진 누각위에 있으면 무엇 하겠나. 부정은 눈을 어둡게 하고 긍정은 눈을 맑게 하기에 부정적인 상황일수록 긍정적이어야 하네. 눈이 어두우면 길을 잃은 것은 당연지사. 따라서 우리는 눈이 빛을 잃지 않도록 언제나 낙관해야 하는 것일세”
인생은 숱한 고비와 극복이 연속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 벽을 스스로 뚫어야만 생이 평온해진다. 그 힘은 ‘열린 마음’에 있음을 고전을 통해 배운다.
그러고 보니 그동안 잘난 사람 흉내는 좀 내며 살아온 것 같다. 장애아이 키우기, 일 하며 아이 키우는 슈퍼우먼, 글쓰기, 사진 등 좋아하는 일 하기, 금융점포 경영자, NGO활동 등 어설프지만 나름 최선을 다했다.
이제 훌훌 버리는 흉내를 시작해볼까 한다. 내면 깊숙이 낀 때를 벗기려 자연공부를 더 해야겠다. 못 읽은 책읽기와 버리지 못했던 삶의 누더기를 싹 버리는 일로 시작을 해야겠다. 찰나의 순간들을 기록해보는 알뜰한 여정을 준비한다. 그 여정의 가방에 아픈 아이가 오래오래 살아도 사람답게 잘 살 수 있도록 하는 선물은 꼭 준비해야 된다. 식구들 세끼 밥은 꼭 챙겨야겠다는 마음도 빼뜨리지 말아야지. 올해 해넘이는 어디 가서 볼까. 참 그동안 지금의 나를 있게 해 준 ‘직장에 대한 경례’는 하고나가야지.